<삶 &> 류승연

“목표를 글로 쓰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지만, 그 10%의 90%는 목표를 이룬다”. 토씨 하나까지 정확한 말은 아닌데 어쨌든 이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문장 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힌다.

아마도 ‘버킷리스트 작성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애기한 것이렷다. 그래. 나도 한 번 작성해 보자꾸나! 까짓 것. 버킷리스트.
 

- 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 가기
- 2년에 한 권씩 책 출간하기
- 인생 시나리오 딱 1편 목숨 걸고 쓰기
- 55kg 찍어보기 (암 걸려서 빠지는 거 말고)
- 스위스 알프스 혼자서 1주일 간 여행하기
- 살아생전 사회인식이 변화되는 거 보기 (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나도 한 몫 하기)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이렇게 6개 문항이 나온다. 하고자 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않은 것에 우선 안도감부터 든다.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는 이미 충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첫 번째 문항. 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 가기부터. 사실 심리학은 그 학문이 정확히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도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공부하고 싶어 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관심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크게 끌렸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스스로 지닌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나도 그래서였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난 순수한 지적유희를 누릴 수 있는 대학원엘 가고 싶고, 가서는 심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다. 누군가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내가 굳이 대학원을 가려면 특수 교육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노노. 이것은 나의 목표이고 나의 버킷리스트다. 엄마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나는 분리돼 있고 분리돼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아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양육자인 부모로서 전문가 집단에게 부모이해교육을 받아 아이를 잘 키우면 되는 것이다. 굳이 내가 전문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부모는 그것이 자신의 목표인 사람만 그리하면 된다. 내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이 대학원이라는 구체적 형태까지 갖추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의무감도 생길뿐더러 만족감도 클 것 같아서다.

다음으로 책 출간. 이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한 매체에 장애아이 키우는 일상을 연재하던 중 어느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책 출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말 쯤 책이 나오고 나면 그 다음 책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한다.

더 기쁜 소식은 지금 작업 중인 출판사가 아닌, 누구나 알만한 대형 출판사에서 연락이 또 왔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미리 계약한 곳이 있어 이번 책을 함께 작업하진 못하지만 다음 책은 꼭 같이 해보고 싶다고.

아무래도 믿을만한 곳이 두 곳이나 생기다 보니 나는 이제 제법 욕심도 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꿈꿔오던 나만의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전부터 쓰고 싶던 이야기가 세 가지 정도 있었는데 이번 책 작업이 끝나는 대로 스토리를 정리해 놔야지 싶다.

사실 소설에 대한 내 경험은 미천하기 그지없다. 20대 후반에 4명의 친구와 이어받기 식 공동 소설을 연재해 본 적이 있고, 30대 중반에 장편소설의 도입부까지 쓰다가 중단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막연하게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다. 내 할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덧 길이 열렸고, 이제 난 스스로 노력해 얻은 그 기회들을 잡으면 된다. 게으름으로 기회를 날리는 멍청한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인생 시나리오 작업은 아들과 관계가 있다. 내 아들이 지적장애인이 된 후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시선’이라고 대답하겠다. 한없이 어리기만 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건 몸이 힘든 일이지만, 그 힘든 일도 일상이 되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마주하는 일은 일상이 돼도 여전히 상처를 받는다.

우연히 내게 온 책이 한 권 있다. 주인공은 장애인이다. 난 그 책을 원작으로 해서 시나리오를 쓰려 한다. 그 시나리오는 내가 써야만 한다.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지만 그건 밝힐 수 없는 비밀.

장애인의 고된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다큐 식의 영화로는 일반인들의 장애 인식 개선에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흥행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들도 A급으로. 사심 좀 보태자면 배우 강동원이 제격인데 이미 비슷한 이미지의 역할을 다른 영화에서 소모해버린 터라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박보검, 송중기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명단을 늘어놓고 ‘누구를 섭외할까?’라며 나 혼자 실실 웃곤 한다. 정작 그 배우들은 아무 관심도 안 보일 가능성이 큰 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를 보고 나서 일반 관객들의 시각이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무의식에 그 영화가 하나의 씨앗을 심게 되길 바란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게 해 줄 작은 씨앗 하나. 그 하나의 씨앗이 무의식에서 자라고 자라다 보면 어느덧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왔을 땐 자신도 모르는 새 달라져 있는 시각을 느끼게 되리라. 장애인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깨닫게 되리라.

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피를 토하는 각오로, 인생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편. 나는 일생에 걸쳐 단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겠다. 내 아들을 위한 단 한편의 시나리오를.

55kg 찍어보기에 대한 목표는 이젠 창피해서 말하기도 좀 그렇다. 그동안 수없이 살을 빼겠다 해놓고선 오히려 더 돼지가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니 내 의지력이란 것에 대해서 실망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냥 돼지로 살겠다고 포기하는 것보단 어찌됐든 한 번은 예쁘게 샤랄라 원피스를 입어보고 싶으므로 버킷리스트 한 칸에 당당히 입성!

여태까지 나온 것들은 내 의지 여하에 따라 능히 이룰 수 있는 목표들인데 이제 나올 ‘스위스로 혼자 여행하기’는 내 의지가 아닌 남편 의지에 달려 있는 일이라 조금 불안하다. 스위스. 나에게 스위스 알프스는 하나의 판타지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왜 이렇게 나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가고 싶은 것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찾다보니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온다. 내 감성에 큰 울림을 준 두 개의 글을 읽고 나서다. 그 뒤부터 알프스에서 바라볼 밤하늘을…. 나는 언제나 동경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다. 주인공 소녀가 바라본 알프스의 밤하늘은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대목만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며, 그 소녀가 바라보고 있을 밤하늘을 상상 속에서 함께 바라보곤 했다.

알프스 밤하늘에 대한 동경에 더욱 확고한 도장을 찍어버린 건 전혜린이다. 그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어느 날 문득 독일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알프스로 향한다. 미처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해 덜덜 떨면서 찾아간 알프스였지만 그 곳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알퐁스 도데가 본 것이 별이었다면 전혜린이 본 것은 달이었다. 지상에서보다 훨씬 크고 빛나는 그 날의 그 달. 나는 또 그 대목에서 감정이입이 되어 전혜린과 함께 그 날의 그 달을 함께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이런 연유로 나는 스위스를, 알프스를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알프스의 그 모든 별과 달을 온전히 내 것으로 누리기 위해선 혼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여행으로 알프스를 가게 되면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랴, 남편과 수다 떨랴 바빠서 그 모든 감상을 온전히 누릴 수 없으리라.

내 평생은 가족들을 위한 삶이 될 게다. 아내로서의 삶도 충실할 거고, 엄마로서의 역할은 더더욱 열심히 해낼 거다. 그렇다면 한 번쯤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만. 내가 나로서 나만의 판타지를 찾아 떠나는 단 일주일의 시간. 난 그거 하나면 충분하단 말이다. 부디 남편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고 나를 좀 놔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 사회인식 변화 부분은 앞으로 내가 책 작업이나 시나리오 작업들을 열심히 해 나가다보면 자연스레 뒤따라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버킷리스트는 작성됐고 남은 건 나의 의지뿐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리 사나 저리 사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시간동안 꿈꾸던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며 살고 싶다. 그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 충만한 삶이 될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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