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5회

▲ 사진=pixabay 사이트

 

시인에게도 아름다움이 있었을까. 고고하게 아름다운 것, 또는 그 아름다움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의 향기. 이상에게 그런 것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시인이었지만 그것이 제 본연의 모습은 아닌 것처럼 꾸미곤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애착이 강하고 자존감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시를 보자면 그렇다. 시 속에서 이상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또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 그의 시는 아름다움 속에서도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 들어찬다.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내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 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 ‘이런 시’, 이상
 

▲ 시인 이상

수많은 이별과 수많은 만남 속에 시인 이상과 어떤 맺음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루에도 수십수백명의 사람과 스쳐지나가고 마주치면서 이상이 지었다는 시구를 읽는다. 그 짤막한 시구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헌정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는 찢어버리고 싶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내면을 보라. 그는 그것이 어색한 것인 마냥 분노하지만, 원체 자신의 모습은 그런 것이다. 시인 이상은 그 어떤 시인보다도 따뜻할 수도 있었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고통과 시련, 질환들이 그를 약하게 만들고 차갑게 굳히더라도 그의 원래 모습은 그렇다. 그는 자신의 본연을 부정한다.

어여쁜 것을 어여쁘다고 말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마치 자신에게 아름다운 것을 허용하면 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 마냥 우리는 부드러운 우리의 본체를 두려워한다. 차갑고 냉철해야만 어떤 것을 보더라도 더 철저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새다. 그것은 위악이다. 스스로를 악한 구덩이에 밀어 넣고 그것을 냉철한 것, 누구보다 객관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마는 것이다. 시인 이상은 그렇게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를 겪기엔 시인은 너무 아름다움을 사모한다. 하나의 시를 더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1
달빛속에있는네얼굴앞에서내얼굴은한장얇은피부가되어너를칭찬하는내말씀이발음하지아니하고미닫이를간지르는한숨처럼동백꽃밭 내음새지니고있는네머리털속으로기어들면서모심드키내설움을하나하나심어가네나

2
진흙밭헤매일적에네구두뒤축이눌러놓은자죽에비내려가득고였으니이는온갖네거짓네농담에한없이고단한이설움을곡으로울기전에따에놓아하늘에부어놓는내억울한술잔네발자국이진흙밭을헤매이며헤뜨려놓음이냐

3
달빛이내등에묻은거적자죽에앉으면내그림자에는실고추같은피가아물거리고대신혈관에는달빛에놀래인냉수가방울방울젖기로니너는내벽돌을씹어삼킨원통하게배고파이지러진헝겊심장을들여다보면서어항이라하느냐

- ‘소영위제’, 이상
 

시인의 정식 아내였던 변동림씨를 떠올렸을지, 아니면 시인의 애인 금홍을 떠올리며 이 시를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시인 이상의 아름다움에 깊이 심취한 모습이다. 그것은 사랑일지도 모르고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 우러러봄 따위일지도 모른다. 머리에서도 동백꽃밭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애인은 어디에 있는가. 시인은 무슨 사랑을 찾고 그것에 가득 취해 있는가. 이런 사랑이 영원할 것만 같고 내 설움이란 설움은 다 가져갈 것만 같다.

▲ 사진=pixabay

그럴 것 같던 아름다움에도 2연부터 바로 분위기가 바뀐다. 내 억울한 술잔이 진흙밭을 헤매이고 있다. 나는 마냥 억울하고 괴롭고 이런 마음을 어디에다 풀만한 곳도 없다. 아름다움은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것이다. 매일 떠오르는 달빛이 매일 같지 않듯이 술잔이 헤매는 진흙밭도 매한가지다. 진흙밭에는 진흙들 나름의 힘이 있고 그 힘은 우리의 걸음을 집어 삼킨다. 우리는 점점 깊이 내려가 허우적거리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모양이 바뀐 달빛이 거적자죽에 와 고요히 앉듯이, 모든 변한 것은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이상은 무언가를 동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동경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치졸한 자신의 내면에 있다. 더 이상의 아름다움은 모조리 제거하고 싶은 욕망.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자신의 안에 두고 싶은 욕구. 우리는 수도 없이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산다. 그리고 어떤 벽에 부딪치는 것처럼 그 가운데에서 강력한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렇다. 한없이 무기력한 것이다. 무기력하게 세상을 이해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시인의 삶은 그토록 피폐하고 황폐화되어 있다.

우리라고 다를 것이 무얼까.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따위의 조언은 뭉개놓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시인의 시를 보자. 그 깊이에서 얼마나 많은 분노와 무기력함이 오고가는 것임을 우리는 느껴볼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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