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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 잡아 저축한 120원

<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천담마을 박주식씨의 국민학교 시절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1.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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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시절 강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이었다. 순창 용궐산 앞 섬진강 줄기.

 

“사탕 6개가 있습니다. 이 사탕을 은경이과 정현이가 똑같이 나누어 먹는다면 은경이와 정현이는 각각 몇 개씩 먹을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이 푸는 수학 문제가 이런 것이라면, 아래 세 문제는 ‘1948년 9월10일 문교부 발행’의 《초급셈본 6-1》에서 발췌한 문제들이다.

“형과 동생이 가마니를 짜는데, 형은 7장을 2일 동안에, 동생은 10장을 3일 동안에 짠다. 형제가 12일 동안에 몇 장이나 짜겠느냐?”

“복남이와 길순이는 메뚜기잡기를 하였는데, 복남이는 여덟 마리 잡고, 길순이는 세 마리 잡았으니, 두 사람이 잡은 것은 모두 몇 마리 되겠느냐?”

“복길이는 밭에서 무를 뽑았다. 이 두둑에서 아홉 개, 저 두둑에서 여덟 개 뽑았다. 모두 몇 개냐?”

그 시절의 아이들이 풀었을 산수 문제에는 그 아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마니 짜고, 메뚜기 잡고, 이 두둑 저 두둑 넘어다니며 밭에서 흙 묻은 무 뽑던 복남이 길순이 복길이들이 그렇게 고단한 세월을 살며 이 땅을 지켜 냈다.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가 나방 잡아가기

천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박주식(60)씨. 전주 살다 다시 고향 마을로 들어온 지 3년째다.

“나 다니던 덕치면 사곡국민학교는 없어졌어요. 폐교되고 그 자리에 요양병원이 생겼어요.”

국민학교 시절이라면 공부하던 기억보다 일하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오전수업 세 시간 허고 밥 먹고 와서 보리이삭 주스러 댕기고, 모 심을 때면 모 심으러 댕기고 그랬어요. 못자리를 해노문 벼 나방을 잡으러 다녀요.”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가 나방을 잡아가는 것이었다.

“저녁이 되문 관솔을 갖고 못자리 해논 디로 가요. 모판에 씨를 뿌려서 요만썩 커지문 모를 쪄가지고 심잖아요. 모가 막 클 때 약이 없으니까 나방을 잡아야 돼요. 날이 어두워 지문 관솔불을 못자리 옆에다 피워요. 그러문 나방이 불빛을 보고 막 날라들거든요.”

몇 명씩 짝꿍을 해갖고 횃불을 갖고 나방을 잡았다.

“누나들 엄마들 쓰던 동동구리무곽 그놈 빈 통을 갖고 가서 막 달라드는 나방을 잡아갖고 담아요. 그것을 학교에 갖고 가면 일일이 시어서 열 마리에 1원인가를 줬어요.”

졸업식날 천담국민학교 6학년 박주식 어린이의 우체국 통장에는 120원이 들어 있었다. 나방뿐만 아니라 쥐 잡아서 학교에 제출한 쥐꼬리 값 1원, 2원씩에 학교에서 함께 나간 보리 베기, 모내기, 나락 베기 같은 노력봉사의 수고비가 포함된 것이었다.

“쌀 한 되에 100원인가 했을 거예요. 그 120원이 엄청 큰 돈이었죠. 그 당시 어린아이한테는 구경도 못해 본 돈이었어요.”

박정희 시절엔 퇴비증산을 한다고 오후에는 풀을 비어다 네모지게 쌓는 것이 일이었고 겨울이 되면 마대 자루를 가지고 난로에 피울 솔방울을 따러 다녔다.
 

“비온 날 결석은 결석으로 안 잽혀요”

돌아보면 공부보다 일과 가까웠던 시절. 책가방이란 것도 없이 책보 짊어지고 뛰어다니던 그 시절엔 멀기도 먼 등굣길에 벤또 속 꽁보리밥을 절반도 넘게 먹어버리고 오던 애들도 많았다.

학교 가는 길은 수월치 않았다. 천담 아이들은 강을 건너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물이 많으문 평소에도 배를 타고 다녀요. 장대로 강바닥을 짚어갖고 건네는 배인디 큰물이 지문 배가 떠날라가불어요. 비가 많이 오문 학교를 못 가요. 비온 날 결석은 결석으로 안 잽혀요. 학교 갔다가 저 건네로 왔는디 그 사이에 배가 없어지문 집에를 못와요.”

강을 건너지 않고 집에 닿을 수 있는 먼 길을 그 째깐한 발들로 돌고 돌아서 오기도 했다.

천담마을 건너편에 막걸리집이 한 집 있었다. ‘간조양반’이라고 기억되는 이가 그 집 쥔장이었다.

“어른들은 술 먹고 노름 허는디 애기들은 한피짝에서 자는 거에요. 못 건너오니까.”

물을 건너야 길이 닿는 강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은 그토록 멀고 험한 길이었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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