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살든 저리 살든 우리 인생에 ‘GO BACK’은 없어”
“이리 살든 저리 살든 우리 인생에 ‘GO BACK’은 없어”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7.11.21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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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최근 종영된 KBS 드라마 ‘고백(GO BACK) 부부’. 소재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원수같이 지내던 부부가 현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20년 전 대학생 때로 돌아간다는 설정인데,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던 상상을 드라마를 통해 현실화시켰다.

처음 1, 2화를 남편과 같이 보게 되었다. “자기는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나랑 다시 만나 결혼을 할 거야?”

남편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아주 신이 나 떠들어 댄다. 자기 앞에 얼씬대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등 훠이훠이~ 자기 앞에서 비키라는 등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생쇼를 한다. 허허. 누가 할 소릴! 나도 놓쳐서 아까운 남자가 한 둘이 아니거등?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자기는 쳐다도 안 볼 꺼거등! 우리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겠냐는 질문도 서로에게 해 본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화를 만들겠단다. 그것도 최근 20년 간 흥행이 되었던 영화들을 떠올리며 모조리 자기가 먼저 만들어내겠단다. 이런 도둑심보 같으니라고.

나는 스무 살로 돌아가면 부모님에게 혼수자금을 미리 앞당겨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 돈으로 모조리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10년 뒤 팔아 목돈을 만들어 둘 테다. 그리고 이번엔 사랑타령 등을 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리라. 열심히 공부해 제 때에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국에 취업할 계획도 세운다.

단지 상상해 보는 것뿐인데도 기분은 참 좋다. 지금과 다를 수도 있었던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그러다 아이들에 생각이 미친다.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면 지금 아이들도 만나지 못해.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나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답을 내린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게 하자.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의 가장 큰 사랑이야.

인간으로서의 생은 누구에게든 고난이 너무나 커서 ‘인간으로 살래? 하늘나라에서 아기 천사로 계속 남아있을래?’라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그리움이란 죄를 받을지언정 그것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의 최선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장애인이란 명찰을 달고 살아야 할 아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한바탕 요란을 떨고 나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의 우리는 만나 버렸고 결혼을 해 버렸고 쌍둥이를 낳아 지지고 볶으며 사는데 그 중 한 놈이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이번 생에서 감내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일단 부부가 되어버린 이상 서로에게 업이 남아 다음 생에 또 만나지 않도록 이번 생에서 충분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기천사로 하늘나라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버린 이상 우리 부부는 이 아이들을 지키고 잘 키워야 한다.

드라마를 볼 때는 기분 좋게 떠들었는데 현실로 돌아오니 기분이 좀 거시기하다. 꿈 꾼 적도 없으면서 깨기 싫은 꿈에서 깬 기분이랄까.

그러다 생각한다.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을 바꿔보자. 2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면, 20년 후의 미래에서 지금의 삶으로 되돌아온 거라고 생각을 해 보자. 그러면 지금의 현실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시계를 빠르게 돌려본다. 20년 후의 나는 61세다. 부부 모두 올해 환갑잔치를 했다. 우리는 여전히 다투고 삐걱대면서도 어쨌든 함께 인생을 일궈내고 있다. 아이들은 29살의 성인이 되어 있다. 딸은 직장생활에 능숙한 사회인.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 늦게 잠깐 얼굴 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주말에도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러 집을 비워서 지금처럼 옆에서 끊임없이 쫑알댈 틈도 없겠지.

아들은 아마 오전이면 장애인 주간시설에 나가 일을 하지 않을까? 내가 아침에 시설에 데려다주면 오후엔 활동보조인이 아들을 데리러 가겠지. 활동보조인과 함께 성인 발달장애인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취미생활을 하다 집으로 와서 저녁밥을 함께 먹을 것이다. 그 때는 말을 할 수 있을까?

20년 후의 내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미래의 그 시간에서 20년 전인 지금으로 ‘GO BACK’ 할 수 있다면, 나는 현재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어 할까?

생각을 바꿔서 바라보니 지금의 내 삶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송송 나 있다. 바꾸고 고치고 메워야 할 것들 투성이다. 20년 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

일단 남편 먼저. 만약 지금 상태로 시간이 계속 흐르게 되면 우리는 다음 생에 또 부부로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현 생에서 원수가 다음 생에서 부부로 만난다 하지 않던가! 아니 된다. 그것만은 아니 된다.

사실 난 남편에게 늘 불만이 하나 있다. 나는 남편이 스스로 컸으면 좋겠는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게 불만이다. 왜 성인인 남편마저도 내 손길을 필요로 할까? 나는 애들을 보는 것만도 벅차단 말이다. 남편은 다 큰 어른이니 혼자 알아서 척척했으면 좋겠다.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날씨에 맞는 옷차림도 스스로 코디해서 입고 나가면 안 되나? 내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는 둘인데 나는 왜 자식을 셋이나 키워야 하지?

늘 이런 불만에 쌓여 있는 나인데 만약 20년 후의 미래에서 현재로 날아온 거라고 하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이젠 늙어서 얼굴은 물론 손과 몸에도 주름이 잡혀 있는 남편을 상상해 본다. 서른 한 살에 결혼해서 30년 동안 성질 못된 내 옆을 지킨 전우다. 평범한 자식도 키우기 힘든 세상에서 장애 아이까지 낳아 볼 꼴 못 볼 꼴 다 겪으며 함께 의지해 왔다.

혼자서 밥 좀 못 차려 먹으면 어떤가? 차려주면 되지. 영하의 날씨에 간절기 잠바를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떤가? 두꺼운 잠바로 내가 바꿔주면 되지.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그 정도의 수고조차 아끼려 하는가. 중요한 건 둘이 함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젊은 날의 현재를 즐기는 거다. 이래도 저래도 똑같이 흘러갈 시간이라면 불평불만에 휩싸여 있는 게 아니라 기꺼이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보내야 할 터다. 그것이 진정한 전우애일 것이다. 힘들 때만 찾는 게 아니라 즐거울 때도 함께여야 진정한 부부라는 얘기다.

그래. 결심했어! 최근 이상하게 미운 감정이 들어서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웃으며 “어서 와~”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부턴 다시 현관에서 맞이해야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은 가장 먼저 아내의 웃는 얼굴과 “어서 와”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호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젠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에 돌아왔다는 신호탄 같은 것. 그리고 하루 한 끼 집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충실히 챙겨줄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지. 나도 정 힘든 날은 반찬가게 힘을 빌려야겠지만 그래도 외식은 주말로 미루고 평일에는 되도록 남편 입맛에 맞는 것으로다가 준비를 해야지.

그것은 남편을 위한 일만이 아니다. 그래야 20년 후의 내가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다.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야 20년 후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결정하든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자식들. 우선 딸에게 해줘야 할 것은, 내가 바꿔야 할 것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딸의 이야기를 더 많이 경청해서 듣는 것이다. 내가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딸이 하고 싶은 얘기의 반도 못 들어주고 살고 있는 요즘. 20년 후의 난 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그 때는 딸이 바쁘고 힘들어서 쫑알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많이 들어두어야 한다. 딸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라는 존재에게. 그래야 딸은 마음속에 앙금이 남지 않고, 세상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20년 후 미래에서 과거인 현재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 때문일 테다. 딸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라고. 그것을 위해 난 기꺼이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아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 한 단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바로 ‘계모로 살기’를 실천해야 한다. 아들의 자립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현재를 바꿔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는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라 아들에게 모든 것을 시키는 ‘계모’같은 태도로 아들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 이 때 말하는 '계모'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는 계모를 콕 짚은 말이다. 자식을 부려먹는 그런 태도가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일 지금처럼 20년을 살게 되면 환갑의 난 그 때까지도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럼 호호 할머니가 된 나는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계모로 키웠어야 했어. 내가 하녀로 사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을 바꾸면 된다.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현재가 20년 후의 미래에서 되돌아온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면 된다. 생각을 바꾸면 현실도 달리 보인다. 할 일이 달라진다. 생을 대하는,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오늘의 나는 20년 후의 내가 보낸 선물 같은 나 자신이다. 이 선물을, 이 기회를 헛되이 사용하지 말자.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이리 살든 저리 살든 우리 인생에 ‘GO BACK’은 없으니까.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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