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을 열었고, 그저 즐거웠다
나는 문을 열었고, 그저 즐거웠다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7.11.22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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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구혜리의 ‘호스트로 살아보기’-2회

에어비앤비는 정식 숙박업소와 비정식 숙박업소가 함께 운영되는 숙박공유 서비스를 관리하는 업체다.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즉 일반인이 쉽게 자신의 생활공간을 공유하여 호스트가 되고 게스트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일정의 비용을 지불받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일상을 공유하고, 낯선 새로움을 일상 속으로 환기하는 것. 그래서 이 호스팅은 초대, 환대의 의미와 가깝다.

"방이 아늑해서 너무 잘잤어요:) 촬영하느라 문자를 못봤네요.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안부를 묻는 것으로 호스트의 아침은 밝아졌다. 규리는 공모전을 목적으로 우리집에서 한창 촬영 중이었다. 예약확정 전에 소개한 바로는 봉사활동을 나선 상경소녀의 하룻밤일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친구 하나를 더 데려왔고 오늘은 불시에 6명의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기대에서 벗어난 게스트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여러가지 고민들, 예컨대 추가 인원에 대한 추가 요금이나 촬영 대관비 등을 덮어두기로 했다. 첫 게스트니까.

퇴실 시간인 12시에 맞춰 집에 도착하기까지 온갖 답답한 기분이 다 들었다. ‘무리였어, 이건 아니었어. 일상공간을 내주다니 말이 돼?!’ 속이 꽉 막혀서, 꽉 막힌 도로를 느리게 미끄러지는 버스에 괜히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12시 이전에 도착해 정리 상태를 확인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체크하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얼굴을 보며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규리는 이미 체크아웃을 마친 상태였다. 정체된 버스에서 문자를 받았다.

“체크아웃했습니당! 아침으로 해먹으려고 계란이랑 케첩을 사왔는데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어용…! 그리고 냉장고 안에 아주 아주 작은 선물을 넣어두었어용…! 하루 동안 잘 머물다 갑니다. :)”

귀여운 문자를 보니 안심이 된 건지 속도 뚫리고 그제야 도로도 뚫렸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오히려 놀랐다. 내가 청소를 하고 게스트를 맞이하던 첫 모습보다 훨씬 깨끗한 상태였다. 냉장고엔 두 장의 장문의 쪽지가 붙은 ‘마가렛트’ 쿠키상자가 놓여있었다. 하나는 규리의 것, 하나는 그녀의 친구가 쓴 쪽지였다.

“(깨뜨린) 컵 대신 이거라도 ^^.. 잘 쉬다 갑니다! 후기도 잘 남길게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보아요.♡ -첫 번째 게스트-”

“친구따라 잠시 왔다가 잘 쉬다 갑니다~♡ 저도 너무 자고가고 싶네요. 가끔 집 떠나고 싶을 때 올게요!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길 바랄게요~ 파이팅!”

집에 남은 다정한 이들의 흔적에 (흔적이랄 것도 없이 너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지만) 좀 전까지 품었던 온갖 걱정과 불신이 미안해졌다. 곧 이어 안도와, 어떤 잔잔한 쾌감이 몰려왔다.

잠시 휴식을 취할 새도 없이 두 번째 게스트 맞이에 나섰다. 청소가 잘 되어 있어 특별히 더 힘을 들일 필요는 없었고, 쓰레기 정리와 수건, 베개 커버 등을 바꾸는 정도였다. 두 번째 손님의 이름은 한스(Hans)였다.

한스는 에스토니아, 탈린 출신의 스물두 살 유학생이었다. 수원의 한 학교로 교환학생을 왔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를 전공했으며, 요리와 E-스포츠를 즐긴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약 두 달 전 8월 25일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수원에 살고 있지만 종종 서울에 놀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2박 3일간의 숙박을 예약한 걸 보니 아마도 주말을 통으로 잡아 단단히 놀 계획을 짰나보다.

그와는 체크인 전부터 채팅을 주고받으며 숙박에 대한 안내를 도왔다. 그는 말문 앞에 ‘Heya’ 라고 운을 띄우는 습관이 있었고, 꽤나 젠틀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타입이었다. 사전 대화를 통해 들은 바로는 홍대와 이태원을 다녀오거나 주말에 열리는 ‘서울코믹월드’ 또는 ‘비건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 했다. 오랜만에 서울 곳곳의 관광지를 들으니, 특히 페스티벌에 대한 그의 빠삭한 정보를 듣고 덩달아 놀고 싶은 마음이 터져버렸다. 마침 최근에는 차도 생겼겠다, 해외에서 내가 다른 호스트들에게 받았던 선의처럼 흔쾌히 픽업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를 전했다.

“괜찮다면 서울코믹월드나 비건 페스티벌에 태워다줄까?”

“아냐, 괜찮아. 그건 너무 과도한 친절이야. 하하!”

그렇다. ‘혼여족(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인 줄 알았던 그는 사실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파티족’이었다. 또 엄청나게 부지런한 여행객이었다. 우선 각 관광지를 담당할 친구들이 따로 있었다. 예컨대 첫째 날에는 종묘와 경복궁을, 둘째 날에는 서울 코믹월드와 홍대를, 셋째 날에는 비건 페스티벌과 이태원을 이미 친구들과 완벽하게 계획해두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채팅으로는 완벽한 그의 모습이 체크인 시간이 지나도록 보이지가 않았다. 저녁 6시 예정이던 만남 시간이 7시로, 7시가 8시로 늦춰졌다. 첫 외국인 손님이라 혹여 불쾌하진 않을지 여러 면에서 긴장도 되고 기대도 있던 터라 걱정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서울역에서 길을 헤매고 있고 결국 택시를 타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택시를 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걱정이 들었다. 결국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혜리 ~ 도착했는데 주소가 어딘지 모르겠어! 밖으로 데리러 와줄래?”

우여곡절 끝에 한스와 만날 수 있었고, 종종 미드와 영화를 보며 따라하고 싶었던 인사법, 악수를 하며 장황한 인사 대신 가볍게 웃으며 서로의 이름을 던지는, 예컨대 “혜리!” “한스!” ^.^로 인사를 나눴다. 그는 한참 길을 잃고 헤매다 돌아온 어린 아이 같은, 땀과 피곤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또 등에는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었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그는 종묘와 경복궁 인근의 관광지를 다니며 줄곧 “Beautiful”이라고 감탄사를 내뱉다가 저녁에 겪은 멘붕으로 모든 것이 “퓨슉!!” 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나고 나서 즐거운 건지 땀과 피로 속에 줄곧 밝은 표정이었다. 또 그는 약간 수다쟁이 타입이라 영어 공부에 대한 열의를 다시금 일깨우는 게스트였다.

밤 10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에게 인근의 맛집을 소개해주고 집을 넘겨주었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나서도 짧은 영어로 부족했던 안내사항을 채팅으로 알려주기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이 중에 귀여운 해프닝이 있었다.

“오, 나 짧은 질문 하나만 할게! 요리를 할 건데 가스레인지는 어떻게 켜는 거야?”

집 앞에 마트가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외식 대신 요리 재료를 사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가스밸브’를 찾지 못했으리라 직감하고 가스밸브 사진을 검색해서 보내주었다. 하지만 도리어 한스는 ‘가스레인지’ 스위치를 찍어 보내왔다.

“이거 말야?”

“꾹 눌러서 천천히 돌려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

“혹시 ‘가스밸브’는 확인했어?”

“흠…찾아볼게, 잠깐…앗! 찾았다!”

“오, 축하해!”

다음날 아침, 나는 언제쯤 연락을 할까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밤 한스가 힘겨운 상경을 마친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푹 자길 바랐다. 또 이날 토요일은 한스가 얘기했던 서울 코믹월드가 개최되는 날이기도 해서 내심 같이 가길 바라기도 했다.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길 바라며 오전 10시 넘어 안부를 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밤에 문제는 없었어? 오늘도 즐거움이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라.”

“안녕, 좋은 아침이야! 모든 게 좋았어, 문제없음~! 컴플레인도 없음! 지금은 코믹 월드 축제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어. 7시 30분에 친구랑 홍대에서 만났거든~.”

“뭐라고? 엄청 부지런하구나! 사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즐거운 사진이 있다면 내게도 보내줘, 하하.”

“그럼, 당연하지! 이곳은 기대했던 것보다 멋지고 신기한 것들도 많아.”

“너도 코스프레를 한 거야?”

“아니, 하지만 내 친구는 했어. :P”

“오 무엇에 관해서?”

“그는 Bioshock game에 나오는 Booker Dewitt로 변했어.”

한참 신이 나서 메시지를 보내오는 한스의 대화는 그 자체로 즐거웠다. 마침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것 같아 서울의 다른 축제와 놀거리를 알려주었다. 특히 주말에 이태원에서 열리는 세계음식문화축제에 대해 듣고는, “오! 한 번도 이태원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좋은 구실이 되겠다”며 고마워했다. 부지런한 한스는 내일도 친구들과 빠듯한 놀 계획을 완성한 듯 보였다.

“그럼, 내일 나가있는 동안 잠시 들려서 청소를 할게:)”

다음날, 마찬가지로 그는 오전에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사전에 얘기한 바로는 오후 1시에 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1시가 넘어 문을 직접 열었을 때, 당연히 밖에 나가 있을 줄 알았던 한스가 젖은 머리로 헐레벌떡 나와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오히려 미안해하며 후다닥 나가버렸다. 나 역시 당황해서 전화를 했다.

“미안해! 내가 꼭 내쫓은 것 같네….”

“아니야!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그 시간에 합의했던 거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 이제 버스타고 놀러 간다!”

그는 가방도, 맥북 제품의 노트북도 집에 놓아둔 상태였다. 냉장고 안에는 전날 직접 해먹은 듯한 엄청난 ‘요리’가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관광이 늦어지거나 하여 늦게까지 놀다 아침에는 푹 잠을 잔 모양이다. 또 흐트러진 소지품 한쪽에는 전날 서울코믹월드에서 사온 굿즈, 기념품들이 몇 가지 포장되어 있었다. 한 번 더 놀란 것은 첫 번째 게스트만큼이나 이 게스트 또한 무척 깔끔하고, 주의 깊게 집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호스트로서 게스트가 밖으로 나가 본인들의 이야기를 쌓은 시간까지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집에 머물며 나눈 작은 담소와 흔적만큼은 우리의 삶을 공유하고 잠시 영혼을 들여다보는데 충분한 여유를 주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한스의 체크아웃을 마친 우리집에는 또 다른 쪽지가 놓여있었다. “인사를 하고 가고 싶었는데, 수원에서 아침 9시에 수업이 있어서 일찍 나왔어. 나를 환영해줘서 고마워,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여긴 정말 좋은 곳이야.” 게스트가 떠난 빈 공간은 게스트를 처음 맞던 때처럼 정갈했다. 이불은 구김 없이 가지런하게 펼쳐있고 바닥을 한 번 쓸었던 건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다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내가 아닌 누군가 머물다 간 흔적이었다.

-나는 타자에게 나의 자리를 내주며 타자를 대접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타자를 돕는 것이지만, 반대로 타자는 내가 그러한 행위를 통해 나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나를 나의 경계 밖으로 이끌어 준다.-

살아가며 우리는 늘 ‘닫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이자 이방인으로 살아가지 않나. 함께 있으나 늘 혼자인 것 같고 자본은 점점 ‘혼자’가 익숙하도록 부추기며 소비로써 외로움을 분출하도록 유도한다. ‘외롭다’는 감정을 떨쳐낼 수 없는 건 어쩌면 스스로의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환대의 개념을 빌리자면, 우리는 “무조건적이고 유보 없는 ‘환대’로써 이 ‘닫혀 있음’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어떠한 상호적 방식의 제약도 부과하지 않는 비대칭성”에 기반하며, 나와 공통된 것만을 받아들이고 타자를 자기화하려는 동일화의 지배 논리와는 거리가 있다. 즉 환대란 이방인을 이방인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나의 공간을 개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초대가, 그로 인한 만남과 인연이 ‘환대(hospitality)’이길 바랐다. 부족한 것을 내어주었지만,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나눌 수 있게, 우리가 ‘함께’인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물론 불완전했고, 때때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10월의 어느 날 나는 문을 열었고, 그것이 그저 즐거웠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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