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유키,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7.11.23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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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 ‘일본 오사카 여행기’-8회 / 구혜리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직 어른들이 지어주는 집밥을 먹고 애완동물은 햄스터보다 큰 생물일 수 없던 때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란 존재가 너무 애탔을 때. 그 때는 내가 동물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길고양이나 친구 집의 강아지 또 어느 숍의 인간이 아닌 존재는 나를 맞아주지 않았었다. 도리어 다가가면 도망가거나 피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내가 선천적으로 동물과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이고부터 그런 태생적인 악관계란 없단 것을 알게 됐다. 동물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기분을 헤아리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디를 만져줘야 좋아하는지 등을 배우게 되면서 점차 다른 고양이, 강아지들과도 쉽게 친해지게 되었다. 때때로 낯선 생명에게 살갑게 친밀감을 나누는 내게 부럽다는 눈빛을 보이는 누군가로부터 과거의 내 모습을 투영해보기도 한다.

알고 만난다는 건 큰 차이를 부른다. 예컨대 첫 만남에는 냄새를 맡게 해 존재를 인식하게끔 하고 아주 서서히 다가가야 한다든지, 머리와 등 사이 접힌 목 뒤를 가볍게 긁어주고 등은 쓰다듬고 꼬리 위 엉덩이는 가볍게 팡팡해주는 것을 좋아한다든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서로가 낯선 상태에서는 때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고 아주 느리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배려의 시작이고 관계의 종착역이 된다. 하물며 여행에서라고 다를 것 있을까.


 

호스트 그녀

요새 홈스테이와 게스트하우스에 푹 빠져서 세 번째 머무른 숙소 역시 게스트 하우스가 되었다. 이름도 쏙 맘에 드는 ‘백배커스 남바 호스텔(bagpacker's namba hostel)’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산책을 시작으로 숙소를 옮겼다. 아침 등굣길에 오른 노란 병아리 모자 어린이들을 보며 ‘참 맑다’ 잠시 생각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평소에 자주 쓰던 볼펜을 꽤 저렴한 가격에 찾아 보물찾기 마냥 으쓱해지기도 하고. 호스텔에 도착했을 땐 어느 누구와도 대화가 잘 될 것 같은 개운한 마음이었다.

호스텔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1층엔 10인용의 테이블과 그 위에 150엔이라는 문구가 붙은 과자 상자가 있었다. 기다림 끝에 호스트를 만났다. 관리가 잘 된 것 같은, 윤기 나는 단발머리와 깊고 큰 눈을 가진, 그리고 배가 만삭으로 불러 있는 임산부였다. 뒤따라 나온 다른 남성호스트는 그녀를 본인의 와이프이자, ‘유키’라고 소개했다. 젊은 부부의 낭만적인 호스트 신혼생활에 속 한 곁이 촉촉해졌지만 유키는 어쩐지 날이 서 있었다. 첫인상으로 보나 다른 게스트에 대한 태도로 보나, 그녀는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임에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우리 일행에게만 가시가 돋친 느낌이 들었다. 유독 영어권 외국인 손님에게만 넉살 좋은 대화를 잇는 것을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말문을 트려 주변을 맴돌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흘깃 눈인사를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국인을 좋아하지 않는 건가?’ 싶어 슬그머니 벽이 생겼다.

 

 

호스텔 밖 남바 시내에서 하루를 돌아 만족스러운 걸음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다른 게스트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있는 눈치였다. 불 꺼진 복도 끝에는 화장실 불만 들어와 있었다.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은 마음에 칫솔부터 입에 물고 거품질을 하며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엔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있었고, 내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유키가 내려왔다. 똑같이 입에 칫솔을 물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가벼운 소재들로 대화가 시작됐다. 다른 것은 무슨 얘길 나눴던지 기억나지 않지만, 유키는 남편과 함께 위층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유키의 호스텔은 총 4층짜리 건물로 세월이 느껴지는 목재들로 만들어졌다. 이 중 4층이 유키네 부부가 살고 있는 개인 공간이라는 건데, 만삭의 임산부가 오르내리기엔 계단 폭이 좁고 높았다. 한창인 내가 오르내리기에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꽤 위협적이었다.

내가 힘들지는 않냐 묻자, 유키는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난 칫솔을 물은 채로 “아니~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있어!” 라고 답했다. 단순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을 넘어 호스트가 해야 할 잔일들은 여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때 잠시 마음속은 동요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찰나에 나는 그녀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게스트로, 또 그녀의 생애를 곁에서 지켜본 엄마나 여동생의, 그녀의 하소연을 받아주거나 멋진 하루담을 터놓고 들어줄 소꿉친구의,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나누어 받았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멋지다” 라든지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전에 화장실에 있던 사람이 나왔다. 우리도 눈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마쳤다.
 

 

다시 낯섦 속으로

호스텔을 떠나는 날 남자 호스트의 배웅을 받았다. 유키는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자 그가 “유키는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어제까진 서먹하더니 오늘은 왜 이리 유키를 찾아?” 일행 중 한 사람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농담을 던졌다. 이곳에 발을 내딛은 첫날 유키의 첫인상을 안 좋게 본 것이 생각나 금세 머쓱해졌다.

그녀의 직업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옆에 있는 남편에게도 동일하나, 앞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그녀의 역할은 그보다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그래도 유키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다.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유키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부터 조금 깊은 이야기까지. 언젠가 내가 짊어질 수도 있는 삶의 무게를, 지금 그녀가 지고 있는 생명의 무게를 포함하여.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갖겠다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한 일조차 스스로 원해서, 행복을 좇아 결정한 선택지일 것 같았다. 유키의 아기가 자랐을 무렵 다시 이 호스텔에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더 낡아진 나무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보다, ‘우다다다’ 씩씩하게 뛰어 노는 한 아이에게 점령당할 그 곳은 아마도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 울릴 것 같다.

새로운 유키를 기대하며, 새로운 유키가 되어 호스텔을 나섰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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