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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시대의 아버지가 있다

<오래된 영화 다시보기> ‘우아한 세계(2007년 개봉)’ 정다은 기자lpanda157@naver.coml승인2017.11.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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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아한 세계' 포스터

아버지. 단어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지며 머릿속에 자연스레 얼굴이 그려지는 사람. 한국에서 아버지의 대표적 이미지는 ‘가장’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 부담을 갖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그들도 한 번 쯤은 꿈꿔 봤을 것이다. ‘우아하게’ 사는 삶을.

이 이야기를 색다른 소재로 그려낸 영화가 있다. 이 시대가 사랑하는 배우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2007년 개봉)’다.

익숙한 포스터. 이미 본 영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포스터에선 조직폭력배가 떠올랐다.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단순한 조직폭력배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빠져들 수 있는 영화다. 평범한 이 시대의 한 가족 이야기에 조직폭력배란 소재를 접목한 것이다.

‘과장’, ‘부장’이라는 직급 대신, ‘형님’ 소리를 듣는 남다른 직업을 가진 강인구(송강호). 하지만 그 역시 가족 사랑만은 남다르지 않은 이 시대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서 가족들과 우아하게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조직의 일도, 아버지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두 가지를 채우는 일은 참 힘이 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조직 일을 그만두라는 가족들. 조직의 2인자 노상무와의 껄끄러운 관계. 그의 인생은 소망과 달리 전혀 우아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우아한 세계’는 독특하게 ‘생활 느와르’라는 타이틀을 내밀었다. 한국형 느와르의 탄생을 알리는 함축적 단어다. 한국에서 느와르라… 생소하고 어색할 것 같았다. 알다시피 느와르는 범죄와 파멸, 암흑가를 그린 영화의 한 장르다. 관객들과 마주했던 대부분의 느와르 영화들은 조직폭력배인 주인공들이 한 방 인생을 꿈꾸다 스러져 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우아한 세계’는 다르다. 기존의 느와르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남자들의 세계를 그렸다면 ‘우아한 세계’는 가족에 살고 가족에 죽는 대한민국 가장의 애처로움을 담아냈다.

강인구는 우아한 생활을 꿈꾸지만 현실은 늙은 조직폭력배에 불과하다. 나이 들어 힘도 잘 쓰지 못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가족들이 반겨주지도 않는다. 허구한 날 사고를 저지르는 남편 때문에 부인은 진저리를 친다. 첫째 아들은 유학을 보내고, 사춘기의 딸은 아버지를 무시한다. 참 와닿는 스토리다. 가장인 아버지는 그저 돈벌어다주는 기계에 불과한 작금의 현실. 가족의 화목을 위해,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줄여가며 돈을 번다. 정작 본인들은 가족이, 가정이 주는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 영화 ‘우아한 세계' 스틸컷

 

‘연애의 목적’에 이은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이번 영화 역시 그만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연애의 목적’에서도 그랬듯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치열하고 건조한 삶은 짜증나고 우둔해 보이기까지 하다. 멋있는 조폭도 없다. 각목 몇 번 휘두르다가 한 대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뿐. 처음과 끝 모든 게 위태한 상황에서도 피식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우아한 세계’의 매력이다. 감독은 이 매력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줬다.

송강호가 강인구를 맡은 건 탁월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흡수해냈다. 얼굴은 촌스럽다 할 정도로 평범하다. 목소리 톤 또한 투박하다. 그게 그의 매력이다. 자연스러움. 어떤 캐릭터여도 튀지 않게, 인간미 넘치게, 현실적인 느낌을 살리는 그의 연기력이 이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직장(조직)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 가족들로부터는 왕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버지들, 딱 그 모습이다.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사서 집에 들어가지만 무시하고 나가버리는 딸. 텅 빈 집안에서 홀로 라면을 먹는 아버지의 모습. 대사 한마디 흐르지 않지만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한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란, 잘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게 되고 힘이 돼드리고 싶어도 힘이 든다고 투정부리고 싶은 존재인가보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울컥 하는 존재인가 보다.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개봉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폭력배 이야기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접붙인 것일 뿐 특별히 재밌지도,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는 내내 지루하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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