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쉰다’ 170만명 시대

대한민국의 실업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도 없지 않지만 ‘신종병’이라 불릴 만큼 총체적인 사안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선 ‘그냥 쉰다’는 이들만 17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업자 아닌 실업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계절적 요인이 없지 않지만 10월 증가폭은 지난 2년 반만에 최고였다. 일할 능력이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이들이 정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상황은 쉽사리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우울한 그림자를 대변하는 ‘실업 문제’를 살펴봤다.

 

 

잠재적 실업 인구가 2년 반만에 다시 정점을 찍었다.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잠재적 실업자인 이들 인구의 급증은 여러 요인이 복합돼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종 한국병’이라고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으로 분류된 이는 모두 169만 3천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5.5% 늘어났다. 10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10월 '쉬었음' 인구 증가율 역시 월별 기준으로 2015년 4월(16.7%) 이후 2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실업 통계에서 ‘쉬었음’은 일할 능력이 있고 큰 병을 앓는 것도 아니지만, ‘막연히’ 쉬고 싶어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아예 구직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은 대상으로 분석된다.
 

‘고용 시장’ 여전히 냉랭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령층 인구가 증가하고 청년층의 실업이 악화되고 있는게 일차적인 요인이다.

경기 회복 신호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고용 시장이 여전히 얼어붙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지난 10월 ‘쉬었음’ 인구는 전 연령대에서 증가했다. 특히 60세 이상(21.4%) 고령층과 15∼29세(18.4%) 청년층 증가율이 높았다. 50대 쉬었음 인구 증가율은 11.6%로 나타났다. 반면 30대는 8.7%, 40대는 5.6%로 고령층이나 청년층 증가율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10월 청년층 실업률은 8.6%로 전년 동월 대비 0.1%, 청년 체감실업률인 고용보조지표 3은 21.7%로 0.6% 각각 상승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령화로 인해 60대 이상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쉬었음 인구도 증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청년층의 경우 고용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복권방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J씨는 “하루종일 스포츠 중계만 보며 스포츠토토를 하는 청년층이 적지 않다”며 “이들 대부분은 일할 의욕보다는 쉽게 돈을 벌어 한탕 쓰려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5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30대 초반 K씨는 “기업에 들어가는 것도 이젠 쉽지 않고 공부는 해야 하는데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것도 사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장기실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6개월 이상 실직 상태인 장기실업자 수는 월 평균 14만 4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실업자에서 장기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장기실업자 10명중 4명 가량이 청년층에 몰려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OECD 회원국의 장기실업자 비중 비교’에 따르면 올해 1∼9월 평균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는 14만 4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만 4000명이 증가했다.
 

장기실업 ‘청년층 집중’

장기실업자 상당수가 청년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더했다. 전체 장기실업자 중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46.7%에 달했으나, 점차 줄어들다가 2011년 이후 다시 증가로 돌아섰다. 지난해 기준 청년층 장기실업자 비중은 43.6%였다.

실업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는 전체 실업자(107만 2000명)의 13.4%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장기실업자 비중인 42.6%(2016년)와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달리 장기실업자 비중이 증가하고 있었다. OECD 평균 장기실업자 비중은 전년대비 4.3% 감소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3.2%포인트 늘었다.

이는 룩셈부르크(12.6%), 노르웨이(6.1%)와 함께 상위 그룹에 속하는 수치다. 이에 반해 미국(-8%포인트), 체코(-5%) 등 상당수 국가들은 장기실업자 비중이 낮아졌다.

청년층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OECD 회원국 15∼24세 청년층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중은 평균 29.5%로, 전년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청년층 장기실업자 비중이 전년대비 2.4% 늘었다.

세계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보다 조금 심화된 13.1%로 나타났고, 내년엔 더욱 악화되리라 전망됐다.

전세계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달 발표한 ‘세계 청년 고용 동향 2017’ 보고서에서, 2017년 지구촌 15∼24살 청년 실업률이 13.1%로 지난해 13.0%보다 0.1%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실업자들 가운데 35%는 청년이었다. 세계 청년 실업자 수는 7090만명으로, 2009년 세계 경제위기 당시의 7670만명보다는 나아졌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경기 회복세를 생각한다면 청년 실업률은 완화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는 선진국 무역·투자 확대에 따른 경제 성장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자가 20만명 더 늘어날 것이라고 ILO는 예상됐다.

기구는 “국제통화기금의 세계 경제성장률을 보면, 2016년 3.2%, 2017년 3.6%, 2018년엔 3.7%로 전망된다”면서도 “전반적인 경제 성장과 고용의 연결이 끊기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고, 경제적 불안정성이 청년 고용 개선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자리의 양도 문제지만 질도 문제인 것으로 지적받았다. 성인 노동자 5명 중 3명이 비공식 고용인 데 비해 청년 노동자는 4명 중 3명이 비공식 고용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층 중 여성은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조사됐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여성 청년 노동자 20명 중 19명이 비공식 고용 상태였다.

중동·남아시아·아프리카에서는 청년 빈곤율이 노인 빈곤율을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ILO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고 협조를 당부했다. 전환기에 놓인 대한민국호가 실업문제에 보다 효율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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