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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도 멋진 스웨덴 젊은이들이 싸구려 브랜드만 찾는 이유는?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1.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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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내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거리를 꼽으라면 단연 드로트닝가탄(Drottninggatan)이다. ‘여왕의 길’이라는 뜻이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 뒤쪽에서 시작해 ‘왕의 길’인 쿵스가탄(Kungsgatan)을 가로질러 젊은이들의 공간인 세리엘 광장(Sergels torg) 옆을 통과해 구시가인 감라스탄 국회의사당 앞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도로. 한 여름 관광 시즌에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보통 때는 스톡홀름의 젊은 피들이 들끓는 곳이다. 평균 190cm에 이르는 북유럽의 미남들, 직업이 모델일 것 같은 미녀들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노르말름 광장(Norrmalmstorg)과 비블리오텍스가탄(Biblioteksgatan)은 스웨덴 최대 백화점인 NK 부근이고, 이른바 명품 브랜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탓에 스톡홀름 패션의 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인, 서울로 치면 청담동 쯤 되는 외스테르말름(Östermalm) 부근 지역. 고급 승용차도 자주 지나다니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다니는 스톡홀름 패피들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볼 있는 곳이다.

 

▲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H&M 매장. 저렴하고 빠른 회전을 자랑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유럽의 그 어떤 옷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H&M은 스웨덴의 실용주의 패션의 상징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남쪽, 감라스탄에서 멀지 않은 쇠데르말름(Södermalm) 지역 폴쿵야가탄(Folkungagatan)의 소포(SOFO) 지구는 ‘스톡홀름의 연남동’이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펍, 그리고 독특한 창의력이 드러난 술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로 특색 있는 소품 가게와 오래된 LP 전문점에는 개성과 멋이 어우러진 자유로운 스톡홀름의 청년들로 가득하다.

설령 그 청년들에 속하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 걸어보고 싶은 길들이다. 간혹 그들의 타고난 우월한 신체적 조건이며, 금발의 푸른 눈빛이며, 북유럽의 차가운 눈처럼 빛나는 새하얀 피부에 남다른 패션 감각에서 오는 멋들어짐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잘 생긴 남녀의 집합소처럼 여겨지는 스웨덴의 젊은이들이 가장 흔하게 입고 다니는 옷은 정해져 있다. H&M이다. 스웨덴이 자랑하고,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세계적으로 SPA의 선풍을 몰고 온 바로 그 브랜드다.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의 약자로, 원래는 자기 회사 브랜드의 제조는 물론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을 의미한다.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해 제조 원가를 낮추고, 유통 단계를 축소시켜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서 빠른 상품 회전을 특징으로 한다. 패스트푸드 음식과 비교해 ‘패스트패션’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구류 유통업자였던 얼링 페르손(Erling Persson)은 미국 여행 중 미국 시민들의 빠르고 간편한 소비문화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스웨덴으로 돌아온 그는 1948년 스톡홀름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베스테로스(Västerås)에 여성 의류 전문 회사인 ‘헤네스’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본 빠르고 간편한 소비 심리를 비즈니스에 적용한다. 이게 H&M의 시작이다.

 

▲ 스톡홀름 시내에서 이른바 명품 거리로 통하는 비블리오텍스가탄. 사실 서울에 비해 대단히 소박하지만, 스톡홀름의 멋쟁이 남녀들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

 

값싸고 간편하면서도 빠르게 신상품이 회전하는 ‘헤네스’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후 1968년 페르손은 이번에는 남성 의상이 주를 이루는 ‘마우리츠 위드포르스’라는 회사를 인수한다. 그리고 회사 이름을 ‘헤네스 & 마우리츠’로 바꾸는데, 나중에 회사 이름을 더 간단하게 하기 위해 머리글자만 따 ‘H&M’이 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 스테판 페르손은 H&M을 스웨덴 비즈니스에 국한하지 않고, 시장을 외국으로 넓히기 시작한다. 영국 런던에 처음 H&M의 해외 매장이 생겼고, 2009년 얼링 페르손의 손자인 칼 요한 페르손이 경영을 맡은 이후 현재 전 세계에 H&M 매장은 50여 개 나라에 4000개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매년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세계 글로벌 브랜드 100의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H&M은 이케아나 스카니아, 볼보나 에릭손 등 보다 순위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H&M의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해서 출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단 3주에서 최장 5개월이다. 한 마디로 ‘막 찍어낸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H&M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스페인의 ‘자라’나 일본의 ‘유니클로’보다도 빠르다. 200여명으로 구성된 스웨덴 본사의 디자인팀이 새로운 제품 디자인을 만들면 아시아 등에 있는 800여개의 공장에서 최고의 속도로 제품들을 생산한다. H&M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속도인 셈이다.

 

▲ 시내 중심 왕립 연극 극장(Dramaten) 앞에 모여 있는 스웨덴 젊은이들.

 

저렴한 제품이라고는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는 스웨덴의 실용주의를 담은 북유럽 스타일이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 과장해서 ‘모든 스웨덴 사람들은 H&M을 입는다’는 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스톡홀름 거리를 누비는 멋쟁이 북유럽 남녀들은 H&M 남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용주의 이면에는 의외의 웃지못할 이유도 있다. 스웨덴은 전반적으로 세탁소 비용이 비싸다. 특히 스웨덴어로는 셈트뱃(Kemtvätt)이라고 부르는 ‘드라이 크리닝’ 비용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어지간한 겨울 코트 한 번 세탁하려면 최소 400크로나(한국 돈 약 5만 2000원) 수준이다. 좀 고급 소재인 경우는 600크로나(한국 돈 7만 8000원)가 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스웨덴의 많은 사람들은 드라이 크리닝을 해야 하는 옷의 경우 한 시즌 입고 버린다. 그러니 고급스럽고 비싼 옷이 그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인 셈이다.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제대로 활용한 것이 H&M의 마케팅이고, 그런 마케팅은 현재 세계 패션 시장에서도 제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니 H&M은 시쳇말로 ‘싸구려 옷’ 팔아서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이다. 한국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패션 상가에서 우수하면서도 값싼 옷들을 만들어 파는 한국의 ‘옷 장사’들 속이 쓰릴 이야기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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