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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친구 정일우'를 보았습니다

<가톨릭일꾼> 유형선 칼럼 가톨릭일꾼 유형선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1.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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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울기를 한두 시간 반복하면 깨달아요. 웃는 거랑 우는 건 같은 거에요.”

연기수업을 받던 후배가 했던 말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친구 정일우'를 보았습니다. 정일우 신부님은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공동체를 꾸립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서울 강제 철거지역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지속합니다. 그 후에는 충북 괴산에서 농민들과 어울려 농사 짓고 삽니다. 정일우 신부님은 끊임없이 웃고 또 울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웃고 또 울었습니다. 후배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했습니다.

사실 정일우 신부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정일우 신부님이 청계천 판자촌 야학 교장을 하던 제정구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게 1973년입니다. 목동과 상계동에서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을 한 게 1980년대입니다. 저는 1974년에 태어났고 1980년대에는 대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정일우 신부님을 모르는 게 너무도 당연합니다. 

 

▲ 정일우 신부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며 제 가슴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던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습니다. 언제 들어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부르는 잔치판 풍물소리가 영화 내내 흘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풍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서울 달동네 철거지역이든 제가 어릴 적 살던 대전 변두리 성당이든 대한민국 80년대 공동체에는 풍물소리가 늘 함께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성당에서 잔치가 벌어지면 어르신들은 막걸리를 드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풍물을 쳤습니다. 그 사이 저희 같은 꼬맹이들은 천막 아래 모여 양념간장 넉넉히 끼얹은 잔치국수를 양껏 먹었습니다. 

또 한가지 잊고 살던 기억이 철거지역 풍경입니다. 저는 1996년도에 서울 종로구 무악동 철거지역에 잠시 인연이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 가톨릭학생회를 함께 하던 친구가 야학을 꾸린다며 철거지역에 아예 들어가 살았습니다. 친구 일을 도와준다고 무악동 철거지역을 몇 달 드나들었습니다. 밤이면 가로등도 없는 좁은 오르막길을 손전등을 켜고 돌아다니며 혹시나 청소년들이 버려진 철거가옥에서 못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제는 사십 대가 되어 두 딸의 아빠가 된 제가 이십 년 전 철거지역을 드나들던 저를 만났습니다. ‘나는 학생이기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곳이 삶의 터전인 분들은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정일우 신부님의 다큐멘터리는 이십 대의 제 고민을 기억시켜 주었습니다. 그때 저를 무악동 철거지역 야학으로 끌어들인 친구도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일로 브라질에 가 있는데 얼마 전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니 살도 찌고 배도 나왔더군요. 어서 돌아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습니다. 독립문역 영천시장 자판에서 막걸리가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아내에게 이 영화 이야기만 했습니다. 아내와 두 딸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1만원을 내고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받았습니다. 영화를 본 두 딸과 아내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철거지역 사람들이) 하늘이 지붕이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초등학교 2학년 작은 딸)

“신부님으로 사는 게 꼭 근엄할 필요는 없구나 싶어요.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는 원효대사가 생각났어요.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춤 추는 게 비슷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큰 딸)

“어린이 책 <내 동생이 수상하다>(성완 글/방현일 그림, 사계절)가 생각나요. 철거지역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에요. 아홉 살 동생이 버려진 집에서 몰래 키우던 고양이 세 마리를 살리려다가 고양이는 살리고 자신은 죽어요. 동화책 읽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정일우 신부님이 꼭 그 동생 같네요.” (아내)

저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면서 ‘진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정일우 신부님의 대사가 자꾸만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답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일우 신부님 모습에서 찾은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도 잘 듣는다.
- 함께 웃고 함께 운다.
-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 덕에 교회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있다.
- 사람을 대할 때 힘을 빼고 대한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영화로라도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일우 신부님! 저도 사람 되고 싶습니다.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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