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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건너는 법

<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맨몸 징검다리 섶다리 나룻배 농선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1.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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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 구담마을에서 순창 회룡마을로 건너는 길. 건너편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두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추수 끝내고 날을 받아 각자의 마을에서 출발해 ‘절반썩’ 섶다리를 놓았다. 그리하여 가운데서 딱 만나 다리를 완성하는 기쁨을 맛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클 적에는 강 건네 사람들허고 양쪽에서 서로 독을 땡김서 놀았어. 더 멀리 던지는 것이 이기는 거여. 우리 동네가 더 잘헌다고 애기고 어른이고 서로 이길라고 애를 썼어.”

구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박주상(84) 할아버지가 꺼내놓는 옛이야기.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구담마을과 회룡마을(순창 동계면 어치리) 사람들의 지난 시절 풍속도다.
 

“양쪽 마을서 절반썩 갈라서 다리를 놔”

예전에 두 마을을 잇는 것은 섶다리였다. 섶다리는 여름 장마에 큰물이 지면 떠내려가기 일쑤였다.

구담마을 이승재(84) 할아버지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섶다리 제작과정을 소상히 설명하신다.

“일 년에 한 번썩 놔야 혀. 가실 끝내고 어느어느날 허자 정해갖고 허는 거여. 양쪽 동네서 놔. 여그서는 저 동네서 농사를 짓고, 저 건네사람은 이 동네로 와서 농사를 지어가. 근게 절반썩 갈라서 다리를 놔. 단체심이 좋아갖고 너나없이 합동해갖고 잘 힜어. 놓아가다보문 가운데서 이서져. 가운데서 딱 만나문 오지제. 저짝 동네는 동네가 짝은게 칸수가 작아. 이짝은 칸수가 더 많고. 형편 맞촤 공평허게 해야제.”

기둥이 될 가쟁이진 나무, 양 기둥에 걸 써끌 나무, 길다랗게 강을 가로질러 기둥을 이어줄 나무를 장만해 두고 미리 다리를 덮을 섶을 지어서 차질이 없도록 장만해 두었다.

“다리 모냥이 맨들아지문 솔가지를 영그고 독을 채와, 바람 불문 날라가분게 묵신하니 있으라고. 안 글문 바람에 휘떡 날아가불어 .”

그 위로 띠를 떼어다가 마람 같이 올렸다.

“아래로 물이 안 비게 올려. 열 짐이나 스무 짐이나 되까. 그때는 동네에 청년들이 많한게 금방 해불어.”

그 다리로 소도 건너다녔다.

“무너지게 놓가니. 부실공사한 적 없어. 안 무너져. 비와서 떠낼라만 안가문 언제까지고 써묵어.”

천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사람들도 해마다 마을 앞에 섶다리를 세웠다.

“추석 돌아오문 세와. 먼저 각자 역할을 맡아. 너는 까래 목을 비어라 너는 뭣을 해라 그래갖고 다 만들고 나문 남자어른 중에 아들 많고 부자고 팔자 좋은 사람이 몬야 건네갔다 와. 그것이 지금으로 허문 개통식이여.”

박대순(80)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시는 섶다리 세우던 날의 풍경이다. 동네 아이들이 30여 명씩 사곡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섶다리는 요긴하였다. 하지만 비라도 많이 오면 다리는 무용하였다.
 

“물이 돼아지 바우를 넘어불문 못 건네”

“다리가 잠기면 배를 타고 건네. 남자어른들은 다 건넬 줄 알았어.”

김오순(77·임실 덕치면 천담리 천담마을) 할매는 간짓대로 짚고 댕기던 배의 운항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물 속에 ‘돼아지바우’라고 바우가 있었다.

“돼아지 바우에 물이 차서 꼭대기가 삿갓만 허게 보이문 배를 잘 건네는 사람이나 배를 건넸어. 물이 그 바우 꼭대기를 넘어불문 아예 못 건네고.”

배를 지키는 것은 마을의 큰 일이었다.

“밤에 큰비가 오문 나가기 싫은게로 배를 그냥 놔두문 물살이 씬게 저 밑으로 떠날라가버리는 일이 많앴어. 정자나무에 배를 지대로 못 매노문 배가 어디까지 떠날라가불어. 계군들 몇 사람이 배를 찾다가 못 찾게 되문 그 사람들이 책음(책임)을 지고 배를 새로 짜야 힜어. 배를 새로 무어. 배 맨 목수들이 있었어.”

비가 와도 배가 안 떠내려 가도록 단속을 철저히 하려고 다섯 집씩 당번조를 짰다.

“재수 있는 사람은 당번일 때 큰 비가 안 오고 재수 없는 사람은 큰비가 오고.”

동네 배에 시간표라는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왔다 갔다 활동할 만한 시간에 맞추어 물가에 가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승선 시각이었다.

“만약 사정이 급헌디 배가 저 건네에 있으문 지금맹기로 전화도 없고 아무 소식이 깜깜허니까 고함을 질러서 사람을 나오게 해.”

배를 짓는 돈은 여러 통로로 모았다. 천담마을 박대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한 방편은 이렇다. “정월 대보름 같은 때 여그서 삼계면까지 걸립을 나가서 뱃돈을 벌어왔어. 삼계사람이 요리 갈라문 배를 건네야 한게. 다음에 배 무는 (만드는)데 돈을 보탤라고 걸립을 하는디 부잣집은 곡식을 한 말도 내놓고 없는 사람은 두 되도 내놓고 그랬어.”

건널 만한 물에는 옷을 딸딸 걷고 건너 다녔다.

“그도 못가게 생겼으면 빤스만 입고 옷을 호딱 벗어서 머리에다 옷을 이고 다녔어.”

농선(農船)이라고, 조금 큰 배가 생기면서 건넛마을에 농사 지으러 다니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배삯은 안 받아. 딴디사람들이 저 건네를 갈라문 배 건넨 사람헌티 사정을 해서 건너가. 전문 사공이 아닌게 돈안 받아.”

순창 동계면 어치리 회룡마을 박복님 할매는 사람은 농선을 타고 소는 물로 건너다니던 시절을 기억한다.

“우리 아부지가 소를 큰 놈 한 마리 키워갖고 아주 질을 잘 갈쳐서 안담울(구담)까지 품을 댕였어. 오늘 하래 소가건네 가서 품앗이 하문 그 양반들이 와서 품앗이를 해주고 그랬어. 우리 소는 말로 허문 다 알아들어. 물이 야찰(얕을) 때는 소가 일없이 잘 건네.”

소는 주인 가는 데라면 두려움 없이 함께 다녔다.

“한나도 무섬 안타. 고개 들고 헤염(수영)쳐서 잘 건너가. 주인이 없으문 버투고 안 가. 금을 줘도 안 따라가. 소가 사람을 알아본단게.”

소랑 사람이 함께 강을 건너던 이야기가 아스라하다. 이 스마트한 세상에도, 마음을 내고 마음으로 통하지 않으면 결코 건널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단절의 지점은 도처에 있으니.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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