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늘, 숙명처럼 따라붙는, 슬픈 일!

<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6회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7.12.05 14:5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사진=pixabay.com

 

슬픈 일이다. 시인에게는 늘 숙명처럼 슬픈 일이 따라붙는다. 그것은 시인에게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움이 닥쳐왔을 때. 그리고 그 외로움은 지나친 집착과 수많은 생각들로 비롯된 것일 때. 이 모든 습관들은 너무나도 슬픈 전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늘 사랑에 있어서 외로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고 수없이 많은 변명들로 무장해버린 인간이기도 했지만 그가 외로워했다는 것만큼은 철저한 사실이다. 여기 그의 변명들로 가득한 시가 있다.
 

지비1

안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남자를 속이려가는것이다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한남자이상은 대우하지않는다고 안해는 말한다 오늘이야말로 정말돌아오지않으려나보다하고 내가 완전히 절망하고나면 화장은있고 인상은없는얼굴로 안해는 형용처럼 간단히돌아온다 나는 물어보면 안해는 모두솔직히 이야기한다 나는 안해의일기에 만일 안해가나를 속이려들었을 때 함직한속기를 남편된자격밖에서 민첩하게대서한다

지비2

안해는 정말 조류였던가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거벼워졌는데도 날으지못한 것은 그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을바를때 벽한겹걸러서 나는 조롱을 느낀다 얼마안가서 없어질때까지 그 파르스레한주둥이로 한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열고 창공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않았다 안해는 날을줄과 죽을줄이나 알았지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않았다 비밀한발은 늘버선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방안에 조분내음새가 풍기고 날개퍼덕이던 상처가 도배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스러기를 쓸어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것을얻었다 산탄 아아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닫과같은쇠를삼켰더라그리고 주저앉았었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내음새도 나고 천근무게더라 아아

지비3

이방에는 문패가없다 개는이번에는 저쪽을 향하여짖는다 조소와같이 안해의벗어놓은 버선이 나같은공복을표정하면서 곧걸어갈것같다 나는 이방을 첩첩이닫치고 출타한다 그제야 개는 이쪽을향하여 마지막으로 슬프게 짖는다

- ‘지비-어디갔는지모르는안해’, 이상
 

▲ 시인 이상

아내의 외출을 바라보는 이상의 시선을 보라. 그 시선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다. 그녀는 떠나려하지만 시인은 붙잡을 기력조차 없다. 그렇다고 그녀의 외출을 바라볼 용기는 없다. 이미 이상은 그녀의 외출이 갖는 의미를 완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외출을 내버려두는 이유는 시인 이상에게도 있다. 아내의 가출이 새장에서 탈출한 한 마리의 새라면 그는 남겨져버린 새다. 새는 날개가 있다. 그러나 그는 날개를 쓸 줄 모르는 새가 되었고 아내는 그런 그와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얼마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가. 개가 짖을 곳도 모르고 짖는 저 모양새를 보라. 시인이 얼마나 애타는 눈빛으로 그의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라. 그것은 추잡한 행태이면서도 연정이 가는 것일 테다. 그는 그렇게 추잡한 얼굴로 아내와 살을 부비며 살아왔다. 아내에게 일말의 동정을 늘 바라왔을 것이고 살아가는 내내 그러했을 것이다. 수많은 부질없음과 그의 추잡한 행태 속에서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억지로 우겨가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외출하는 아내는 또 다른 남자와 만나 사랑 아닌 사랑을 품을 것이다. 시인은 너무나도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시인의 아내에 관한 또 다른 시를 살펴보자. 이 시에서 그의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추잡한 행태로 이어져 왔는지가 거울처럼 선명하다.
 

안해를즐겁게할조건들이틈입하지못하도록나는창호를닫고밤낮으로꿈자리가사나워서나는가위를눌린다어둠속에서무슨내음새의꼬리를체포하여단서로내집내미답의흔적을추구한다. 안해는외출에서돌아오면방에들어서기전에세수를한다. 닮아온여러벌표정을벗어버리는추행이다. 나는드디어한조각독한비누를발견하고그것을내허위뒤에다살짝감춰버렸다. 그리고이번꿈자리를예기한다.

- ‘추구’, 이상
 

그의 시는 늘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무뚝뚝한 듯 추잡하고 집착하는 성격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아내의 행실을 이 시에서 철저하게 의심하고 있다. 무슨 내음새의 꼬리인지 시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외롭게 외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어쩌라고 그는 시를 썼는가. 가위에서 풀려나기 위해 단서를 찾는 그는 얼마나 외롭고도 한스러운 존재란 말인가. 그리고 그 역시도 또 다른 여자와 잠을 자고 사랑 아닌 사랑을 나눌 것임에도 그의 아내는 여자라는 하나의 프레임 때문에 의심할 자격이라도 있다는 듯이 그는 쏘아붙이고 있다.

이렇게 그의 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던져대는 말 속에서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마저도 이 자체가 그에게 한없이 괴롭고 두려운 일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는 시인 이상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그의 손을 붙잡아 주어야 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를 버린 사람들은 무리지어 그를 원망하고 그를 이유삼아 논하고 그를 결국 죽인다. 가슴 속에서 죽여 버린다.

시인 이상은 괴로워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에게 얽힌 수많은 집착들을 그의 생애 안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도 그럴 자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 절망스러운 순간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의 시를 읽는다. 아무도 주인이 아닌 시. 시를 지은 사람조차도 주인이 아닌 시. 우리는 모두 자격 없는 인생을 살고, 그립고 외로우면서도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산다. 시인은 그런 본질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사람, 더 잔인한 이상이다. <대학생>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광고국장 : 황석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