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평생이웃 구담마을 할매들

▲ 구담마을 모정 옆의 나무. 뿌리로 땅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온갖 풍상 헤쳐 나온 할매들과 한 모습

“시계가 죽어 불었구만.”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이건만 시계바늘은 11시20분이다. 덕분에,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가 오늘은 점심 준비가 늦어져 버렸다. 누구는 밥 안치고 누구는 콩나물 무치고 누구는 고추를 씻고, 별다른 역할 배분 없이도 일이 착착 진행된다.

구담마을 모정. 여름내 이곳에서 마을 할매들은 한지붕 아래 한솥밥 식구다.

“같이 묵으문 맛나지. 시한에는 회관에서 해묵고 여름에는 여그서 해묵고.”

따로 정해진 밥당번도 없다.

“당번은 안 정해놓고 몬야 온 사람이 해.”

장 보러 갈 일도 없다.

“우리 마트는 저그여. 까지 꼬치 호박 별별 것이 저그 다 있어. 장에 한 번도 안가. 다 저 밭에서 난 것으로 해묵어.”

모정 옆의 마을 공동밭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 밥상 앞에 한데 둘러앉으면 식구
▲ “마트가 여그 있는디 뭐더러 장에 가.” 모정 옆의 공동밭에서 함께 일하는 할매들

 

콩나물국에 밥 말아 먹는 단촐한 점심. 삼시세끼 무수히 많은 밥상을 차려 올려 왔을 당신들의 식사엔 밥상도 없다.

“우리는 버릇이 돼갖고 요러고 묵는 것이 편해.”

한데 둘러앉은 오늘의 식구는 엄용순(90), 전판례(88), 김연임(82), 강순이(81), 박인순(78), 김양금(77), 하정자(77) 할매.

“영감은 깨 폴러가서 안 오고 콩 폴러가서 안 오고. 난중에 인자 차에다 돈을 겁나게 실꼬 올 티제, 하하.”

영감들 모두 깨 폴러 가고 콩 폴러 가서 혼자인 할매들의 공동식사. 각자 집에서 ‘혼밥’ 하지 않아도 된다.

 

▲ “부녀회장이 이러고 맨들았어. 운동도 되고 좋다고. 오재미(오지미)를 많이 받아야 존 거여. 가만히 밟아도 안되고 너무 씨게 밟아도 안되고.”
▲ 오재미와 널뛰기를 결합시켰달까. 구담마을 모정에서 만난 신종 운동기구이자 놀이도구

 

밥숟가락 내려놓자마자 함께 향하는 곳은 모정 옆 공동밭.

“동네것이여. 참꽤 들꽤 갈고 까지 호박 물외도 숨고 고로고로 다 있어.”

‘왕언니’인 엄용순(90) 할매도 울력에 빠지지 않는다.

“인자 일 못혀. 그래도 호미라도 한번 넣어줄라고. 동네것인께 같이 해야제.”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구담마을의 할매들.

“묵고살라고 다 고상하고 살았제. 요 꼴착으로 시집온게 하늘만 비어. 꿈속같은 한세상을 살아왔어.”

밤에는 삼품앗이하고 낮에는 다 호맹이 들고 콩품앗이 해서 콩밭 매던 일 동지들. 폭폭했을 그 삶의 내력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주는 평생 이웃들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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