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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이 결혼을 한다면?

<오래된 영화 다시 보기> ‘블루 발렌타인’(2012년 개봉) 정다은 기자lpanda157@weeklyseoul.netl승인2017.12.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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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루 발렌타인’ 포스터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을 왜곡시킨다. 관객들이 공감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너무 현실적이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걸 어떻게 작품으로 잘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2012년 개봉했던 한국영화 ‘연애의 온도’는 로맨스 영화 중 ‘참 현실적이다’라고 느낀 작품이다. 오래 사귄 연인의 모습, 다툼, 변해가는 과정까지 전부 현실적이다. 특히 그들이 싸울 때 오가는 감정선과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자신들의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가 또 있다. 미국 영화 ‘블루 발렌타인(2012년 개봉)’이다. 감독은 데릭 시엔프랜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4살에 처음 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12년 동안 틈틈이 시나리오를 고쳤다.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이야기를 단순하게 고치고 기교를 빼는데 힘을 쏟았다.” 한창 청춘일 때 쓰기 시작해 중년의 나이까지 수정을 거듭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감독의 말만 들어도 영화의 순수 담백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감독은 과거 장면과 현재 장면을 영화 속에서와 똑같이 실제로도 6년의 간격을 두고 촬영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비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꿈이었다. 그래서 제작자를 설득해 대신 한 달의 브레이크 타임을 얻어냈고, 배우들에게 한 달 안에 6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변화를 요구했다. 일단 두 배우에게 몸무게를 최대한 늘려달라고 부탁했다. 실제 누드 신까지 찍어야 했던 미셸 윌리엄스는 8kg이나 몸무게를 불리며 적극적으로 감독의 요구에 따랐다.

또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 그리고 그들의 딸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 페이스까지 한 달 간 한 집에서 지냈다. 캐릭터에 동화되기 위해서다. 실제 페인트공과 간호사의 수입으로 그 안에서 생활비를 쪼개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실제 가족처럼 생활했다. 자신들의 생활을 홈무비로 만들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의 효과는 영화 속 실제 가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그대로 묻어난다.

 

▲ 영화 ‘블루 발렌타인’ 스틸컷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의대생 신디(미쉘 윌리엄스). 그녀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빠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자다. 겉으로는 공부도 곧잘 하고 인기도 많은 그녀. 하지만 사랑을 잘 믿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 앞에 솔직하고 다정한 남자 딘(라이언 고슬링)이 나타난다. 자신의 모든 걸 받아주고 안아주는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딘과의 결혼을 선택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이삿짐센터 직원인 딘. 그는 운명적 사랑을 믿는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신디에게 반해버린 그는 그녀에게 안식처 같은 남자가 돼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로 점점 지쳐하는 신디. 딘은 그녀의 사랑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한다.

신디는 현실적이고 냉담하다. 반면에 딘은 비현실적이고 감성적이다. 관객들도 대부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대화를 해서 계획을 세우고 싶은 신디에 비해 흥청망청 술을 즐기고 끌리는 대로 사는 딘이 오히려 답답해 보일 것이다. 필자는 달랐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디는 모범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13살부터 시작해 20명도 넘는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지만 사랑받고 싶어 한다. 영화에는 회상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결혼한 현재에서 연애하던 과거로. 그건 전부 신디에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결혼 생활을 직시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딘은 다르다. 수긍한다. 남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키우기로, 결혼하기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 만족하는 삶을 산다. 이런 부분에선 딘이 신디보다 더 현실적이다. 영화가 끝난 뒤 ‘신디 저 나쁜…’ 이란 말이 맴돈 이유다.

영화는 이렇듯 결말도 관객에게 온전히 맡긴다. 관객들은 둘 중 누군가에게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결말을 상상할 것이다. 해피엔딩이 될지 새드엔딩이 될지는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함께 호흡한다. 그렇게 영화에 온전히 몰입시키는 것이다.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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