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몇 년 동안 내 사무실이 되어 주었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하바나(HAVANA)’.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는데 이렇게 사라지다니…. 내가 느끼는 상실감은 흡사 연인과 이별한 직후에 느끼는 그것과도 같다.

프리랜서로 이 곳 저 곳에 글을 쓰는 나는 ‘글이 잘 써지는 카페’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규모가 커야했다. 카페가 작으면 다른 테이블의 떠드는 소리가 귀에 와서 곧바로 꽂혔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웅성웅성하게 느껴질 것.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리고 푹신한 소파여야 했다. 6시간 넘게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많은데 딱딱한 의자에 오래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에 종기도 났다.

아는 사람도 없어야 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자주 모이는 몇 몇 카페에 가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해야 했고, 몇 마디 말이라도 주고받아야 했고, 옆 테이블에서 아는 사람 얘기라도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곤 했다.

다행히 ‘하바나’엔 동네 아줌마들의 출입이 거의 없었다. 흡연실이 마련된 카페였기 때문인데 아줌마들 중에서도 흡연하는 사람은 있었기에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서로 마주쳐 민망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통의 아줌마들은 자연스럽게 ‘하바나’ 출입을 하지 않았다. 흡연하는 아줌마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물론 나는 ‘하바나’에 하루 종일 있다 보니 담배 좀 피운다 하는 동네 아줌마들은 이곳에서 한 번씩 다 스치곤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2층에 앉아 있는 나와는 인사만 주고받은 뒤 3층에 자리를 잡았다. 규모가 큰 카페였기에 서로가 민망하지 않게 각자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곳이 좋았다. 모던하게 꾸며진 카페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더할 나위 없었다. 동네에서 ‘라디오헤드(RadioHead)’와 ‘콜드플레이(Coldplay)’의 음악을 틀어주는 곳은 이곳 말곤 없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사무실에 가면 언제나 같은 시간에 출근해 있는 직장 동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앞 테이블에는 나보다 서너 살 적어보이는 예쁜 언니가 먼저 와서 있었다. 1년 넘게 매일 만나다보니 서로가 궁금했다. 나중에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녀도 내가 궁금했나 보다. 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고. 뭐하는 사람인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그 흔한 눈인사 한 번 건네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 오른쪽 옆으로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줌마 둘이 있었다. 친구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떨었다. 특별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노트북을 들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전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 외에도 삐쩍 말라서 가끔 내 테이블을 차지하곤 했던 아줌마, 덩치 큰 복학생 분위기의 청년, 영업하는 듯한 40대 후반의 중년 아줌마 무리 등 이 곳을 사무실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이제 회사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 그들은 직장 동료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서로 얼굴은 알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 사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함께’라는 소속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카페 직원으로부터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라는 말을 갑작스럽게 전해들은 나는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가요?”가 아닌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라고 물었을 정도.

“그러게요. 다른 분들도 이제 어디로 가냐고 모두 걱정 하세요.”

그랬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사무실에서 쫓겨난 세입자 처지가 되었다. 당장 내일부터 새로운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이곳만큼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곳을 찾아야 했다.

다음 날,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매고서 나는 늘 가던 하바나를 지나쳐 H카페로 향했다. 프렌차이즈 카페인 이 곳도 3층까지 마련돼 있는 등 규모가 컸기에 가볼 만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에 동네 아줌마들과 몇 번 와서 수다를 떨 때는 1층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노트북을 맨 나는 2층으로 향한다. 2층은 나처럼 ‘노트북족’을 위해 마련된, 특화된 공간이다. 마치 독서실 공부방처럼 일인용 책상과 의자가 한 줄로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콘센트가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1인용 책상은 이미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나는 긴 테이블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다른 사람과 테이블을 나눠 쓴다는 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서로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도 귀에 거슬렸고, 바로 앞 사람, 옆 사람의 몸짓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무엇보다 의자가 딱딱했다. 엉덩이에 알이 배기기 시작했고 허리가 아파온다. 결국 3시간도 못 앉아 있다 항복 선언. 이곳은 아니다. 다른 데를 찾아야 한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내가 원하는 사무실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만한 카페 두 곳을 추천한다. 계약을 하기에 앞서 먼저 매물을 보는 건 당연한 일. 집으로 가는 길에 분위기 파악을 하러 들렀더니 세상에! 두 곳 모두 얼마 전에 망해 없어졌단다. 한 곳은 바로 며칠 전에 망했는지 일꾼들이 카페에서 짐을 빼고 있다.

써야 할 원고가 밀려 있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은 또 다른 프렌차이즈인 S카페로 갔다. 여기에서도 ‘노트북족’을 위한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엉덩이에 종기 날 것 같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일을 했다.

그립다. 하바나. 그립다. 내 사무실. 궁금하다. 동료들. 다들 어디로 가 있는 걸까?

남편에게서 연락이 온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하바나와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가 동네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바나 맞은편 건물에. 2층에 자리 잡고 있어 몰랐던 것이다. 1층에 있는 양푼갈비찜 건물로만 기억을 하다가 눈을 들어 2층을 보니 카페의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정오에 오픈한다는 것.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무엇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글 쓸 공간이 필요했던 난 정오까지 기다렸다 새로운 카페를 찾았다.

단층 카페인데도 제법 큰 규모. 게다가 도란도란 수다를 떨 일반 테이블과 노트북족을 위한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은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는 구조. 아늑한 조명에 푹신한 의자, 무엇보다 맛있는 커피. 특히 시나몬 모카라떼의 맛은 훌륭했다. 늦게 출근해야 하는 단점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하다.

어디 글은 잘 써질까? 오오~ 아늑한 조명이 집중력을 높여 글쓰기에 안성맞춤이다. 음악 선곡도 마음에 든다. 너무 크지 않은 볼륨으로 조용조용한 곡들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그래. 너로 정했다. 앞으로는 여기가 내 새로운 사무실이다.

정오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내 스케줄도 다시 짠다. 앞으로는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다시 에어로빅을 해야겠다. 에어로빅을 잠시 중단하면서 살이 또 와르르 붙어버렸다. 이젠 아침에 에어로빅을 갔다 오고 집에 와서 대강대강 청소를 한 뒤 정오가 되면 사무실로 출근해 바짝 일하고 와야지.

앞으로 몇 년 간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몇 시간씩 죽치고 있을 예정이라 첫 날은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피만 시키는 게 아닌 ‘크로크무슈’도 함께 시켰다. ‘크로크무슈’란 식빵 안에 햄과 치즈를 넣고 위에는 피자치즈까지 올려 구워낸 빵을 말한다.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가격이 저렴한데도 이곳의 ‘크로크무슈’엔 양상추 샐러드와 발사믹식초 소스까지 딸려 나온다. 횡재한 기분이다.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사무실이 마음에 든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부디 이번 카페는, 이번 사무실은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라본다.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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