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남미여행기-네번째 이야기 / 강진수

남미를 다녀온 지 다섯 달이 넘었다. 신기하게도 남미 여행을 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새록새록 남는 것 같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각 나라의 각 도시들, 마을들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아직도 가끔씩은 내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그곳을 걸어 다니고, 그곳을 헤매며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별들처럼 설레는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7.

와카치나를 떠나는 아침은 고요했다. 오아시스의 표면도 고요했고 나무의 살랑거림도, 심지어 어제까지만 해도 노래를 부르며 떠들던 길가 곳곳도 모두 고요하게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짐을 싼 우리는 다시 이카로 돌아가서 쿠스코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쿠스코로 가는 버스가 오후 시간대이니 와카치나에서 아침을 먹고, 이카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버스에 탑승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와카치나의 오아시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정말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즐겼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빵 몇 조각과 잼, 그리고 따뜻한 커피 정도였다. 가격도 그리 싼 편은 아니었으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오늘은 좀 느긋하게 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여행을 온 목적에 돈 걱정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는 다시 스쿠터 택시를 타고 이카로 돌아갔다. 이카에서는 필요한 것들을 조금 사놔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약국에 들려서 고산병 약을 사고, 매점에 들러서는 물과 생필품 몇 개를 샀다. 그러고는 할 일이 없어지자 우린 이카에서 가장 큰 광장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다. 짐을 맡겨 놓을만한 곳도 딱히 없었기에 꼭 껴안은 채로 앉아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바쁘게 움직이질 않는다. 다들 별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이곳 광장에 우리처럼 가만히 머물러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런 느긋함은 우리에게만 없었다. 아침도 좀 더 즐겼어도 좋았을 텐데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도 바쁘다며 얼른 와카치나에서 이카로 넘어왔다.

 

 

그러다보니 점심을 먹을 때였다. 버스를 타기 전에 든든히 먹어둬야 해서 음식점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그냥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천막이 쳐져 있는 한 식당이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바로 음식을 내어 놓는 게 아닌가. 메뉴판을 달라는 말을 오늘의 메뉴를 달라는 말로 착각했다고 한다. 일단 음식이 나왔으니 맛을 보는데, 맛이 정말 영 아니었다. 모양은 닭죽인데 맛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처음 맛보는 경험이었다. 아마 이곳 현지인들은 자주 가는 맛집인 것 같은데 우리에겐 좀 버거운 곳이었다.

음식을 거의 버리듯 하고 나와 사거리에 서 있던 우리는 푸념하는 말투로 한국인이라도 좀 만났으면 좋겠네, 라고 신세한탄을 했다. 그러자 놀라운 것은 우리 바로 뒤에서 누군가 뒤돌아 우리를 보는 게 아닌가. 우리의 신세한탄을 들은 한국인 배낭 여행자였다. 홀몸으로 이곳 이카까지 온 그는 오히려 와카치나에서의 투어를 마치고 이카로 돌아온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우리는 그를 붙잡고 와카치나로 가는 방법, 숙소, 식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고 등등을 신나게 떠들었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도움이 된다는 것, 더군다나 갑작스럽게 만난 한국인이라는 점이 우리를 신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그분은 이미 숙소도 인터넷으로 많이 알아봤고 준비를 철저히 해온 분이었다. 우리만큼 몸으로 악으로 깡으로 부딪치는 경우는 아니었다.

 

 

반가운 한국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점심을 한 끼 더 먹었다.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려니 샌드위치와 스파게티를 파는 곳뿐이었다. 나름 맛있는 식사를 하고 카페를 들렀다. 시원한 콜라를 받아서 앉아 마시는데 이런 천국이 따로 없다. 카페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사진을 찍어주고, 그렇게 이카의 이름 모를 카페에서 우리의 사진이 몇 장이나 남았다. 이젠 이카와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 너무나도 무작정 온 곳이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작고 조용한 마을에 많은 평안을 얻기도 한 곳이었다. 이제 또 새로운 도시로 떠나야 한다. 쿠스코는 이보다 훨씬 크고 훨씬 복잡한 곳일 것이다. 그곳까지 열 몇 시간을 달리는 버스도 타야 한다. 마음의 긴장이 늦춰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 동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에서 의존할 곳이라곤 같이 온 형뿐이었다.

 

8.

쿠스코로 가는 팔라미노 버스를 타려면 팔라미노 전용 터미널에서 한참 차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팔라미노 버스도 터미널에서 표를 살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버렸는데 알고 보니 거의 현지인들만 타는 버스였다. 서비스도 시설도 안 좋은 버스에서 17~18시간 정도를 참아내야 한다니. 게다가 먹을 음식도 너무 부족할 것이 뻔했다. 미리 물과 음식을 좀 사놓긴 했지만 이 정도론 불안하기도 하다. 더군다나 버스가 지각을 해 한참을 기다렸다. 다 무너질 것 같은 터미널에 앉아 정말 오랜 시간동안 단둘이서 떠들었다. 누군가 말이라도 붙여주길 기다리면서. 그때 아주 반갑고 고마운 인연들이 다가와 주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각기 안은 부모가 터미널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 바로 옆에 앉아 그들은 우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신기했을 것이다. 외국인도 외국인인데 동양인이라니. 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먼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얼굴에는 시커먼 때로 얼룩진 아이는 우리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아이의 가족이 입은 옷들이 모두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아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우리의 무릎에 올라앉곤 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스페인어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우리는 한국어로 그 아이의 이름을 묻는 이상한 방식의 의사소통을 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우리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가 꺼낸 휴대전화는 아주 낡고 보잘 것 없는 폴더 폰. 아마 그 전화기로 사진을 찍더라도 우리의 얼굴이 잘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그 전화기를 들고 와서 우리 사진을 마구잡이로 찍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피곤함을 느꼈다. 그 가족으로 인해 느끼는 피곤함이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부터 느껴져 오는 피곤함이었다. 얼마나 힘겹게 이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입은 옷만 봐도, 씻지 않은 얼굴만 봐도 그런 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었다.

 

 

버스가 드디어 도착했고 우리는 아이의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아주 잠깐 동안 만났지만 그 낡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우리를 기억해주길. 그리고 내 카메라에 그 아이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오랜 시간 뒤에 글로 그 아이의 얼굴을 남긴다. 언제까지나 두고두고 글을 읽으며 신기한 인연을 떠올릴 수 있도록.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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