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고옥(古屋)의 멋과 가치, 하회마을 이야기

긴긴 겨울의 한가운데,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 대지에 흰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다. 하회에 다다르자 저만큼 소박한 집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하회(河廻)란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화천(花川, 화산에서 이름을 딴 낙동강의 별칭)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고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최적의 입지

마을을 둘러싼 산(화산, 남산, 일월산)은 낙동강 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마을은 그 넉넉한 자연을 포근히 안은 형세이다. 낮은 구렁 형태의 골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단아하고 소박하게 꾸민 집들은 하나같이 개방감이 시원하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마치 자루가 달린 옛날 다리미 같다고 하여 ‘다리미형’ 마을이라 말하기도 한다.

안동시내에서 50리 떨어져 있어 세속의 번잡함에서 조금 비껴나 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방문객들 때문인지 조금 떠들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먼 옛날, 여러 차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잃지 않은 것도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이 마을의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다.

흔히들 천혜의 아름다운 지형을 일컬어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한다. 하회는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마을이다. 마을을 자세히 둘러보면 꼭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과 산줄기는 태극무늬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이름, 즉 물돌이동, 곡강(曲江), 하상(河上), 강촌(江村), 하촌(河村)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삶을 즐길 줄 알았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터에 집을 짓고 길을 닦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것이다.

 

▲ 넓은 터에 자리잡은 지산고택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런 마을의 가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하회는 600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고려시대에는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 안씨(安氏)들이, 조선조 초기에 들어와서는 풍산 류씨(豊山 柳氏)들이 자리를 잡고 하나의 촌락을 이루었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杯盤)에”라는 말처럼 이들 세 성씨가 차례로 마을에 입성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에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 선생으로 인해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하회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회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하면서부터인데 동양 문화를 가장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문화재며 양반층이 쓰던 웅장한 기와집과 서민들이 살던 초가, 토담집 등 전통 고옥(古屋)들은 그 온전한 모습(부분적으로 수리를 한 집도 많다)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 수직 절벽으로 이뤄진 부용대

 

하회마을을 돋보이게 하는 두 절경

하회마을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 부용대(芙蓉臺)로 오른다. 마을 북쪽, 그러니까 화천 기슭의 깎아지른 듯 솟은 암벽이 부용대다. 부용대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다. 하회마을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올라가는 방법과 하회 입구로 되돌아 나와 916번 지방도로를 타고 풍천에서 겸암정사를 거쳐 부용대로 오르는 길이 그것이다. 일단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부용대 아래에 펼쳐진 모래사장과 강줄기, 하회마을의 주산(主山)인 화산(해발 271m)과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풍산들이 참으로 넉넉해 뵌다. 논과 밭이 대부분인 풍산들은 경북 북부 지방에서 가장 큰 곡창지대로 과거 안동 양반들의 경제적인 토대가 된 곳이다.

부용대와 마주한 만송정(萬松亭)의 푸른 솔숲도 빼놓을 수 없는 하회마을의 명소다.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된 이 솔숲은 하회 북서쪽 강변을 따라 울창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푸른 기운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만송정은 조선 선조 때 서애(西厓) 류성룡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용(1539-1601)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가라앉히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숲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 공간일뿐 아니라 여름에는 수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막아주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매년 음력 7월 16일 밤에는 이 숲에서 4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선유(船游)줄불놀이가 펼쳐진다. 이 줄불놀이는 강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놀이로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고 그 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이 볼만하다.

 

▲ 양진당(입암고택)

 

독특한 개성의 집들

마을 탐방에 나선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고층 건물들만 바라보다 키 낮은 초가와 기와집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하회탈장승이 환한 얼굴로 길손을 맞아준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길은 안내판이 없다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골목길마다 나지막이 자리 잡은 고택들은 그 모습이 하나같이 친근하고 단아하다. 집 한 채 한 채마다 고풍스런 멋이 살아 있고, 수더분한 골목길과 흙담장이 더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하회마을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집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단연 눈길을 끈다. 서애(西厓) 류성룡 선생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용의 13대 종가집인 양진당은 1600년대에 지은 것이다. 하회에서 으뜸가는 고옥답게 ㅁ자형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와 행랑채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목조로 지었는데 원래는 99칸이었으나 현재는 53칸만 남아 있다. 사랑채 정면에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입암(立巖)은 겸암 선생의 부친인 류중영 선생을 일컫는다.

 

▲ 하동고택의 안마당

 

양진당 앞에 자리잡은 충효당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가로 선생이 별세 후 자손들이 중건, 확장한 조선조 중기의 건축물이다. 충효당의 후원 사랑채 옆에는 ‘영모각’을 새로 지어 징비록(국보 제132호) 등 서애 선생의 유물을 보관 전시해 놓고 있다.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 전후의 전황들을 기록한 회고록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바깥마당에 심어놓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 식수도 눈길을 끈다.

하회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이밖에도 여럿 있다. 북촌댁, 하동고택, 남촌댁, 작천고택, 지산고택, 화경당, 주일재, 빈연정사,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이 그것들이다. 하회에서 가장 큰 살림집인 북촌댁(화경당, 중요민속자료 84호)은 경상도 도사(현재 도지사)를 지낸 류도성 선생이 철종 13년에 지은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 사당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남촌댁(염행당)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려 아쉽긴 해도 집을 에워싼 왕대나무숲과 솟을대문이 인상적이다. 하동고택(중요민속자료 177호)은 서애파로 용궁현감(벼슬 이름)을 지낸 류교목 선생이 현종 2년에 창건한 4칸의 활궁(弓)자형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한 채로 이어져 있으며 하회 동쪽에 있다고 해서 하동고택이라 부른다.

 

▲ 화경당(북촌댁)

 

하회에는 초가가 유난히 많다. 그리고 ㄱ자, ㄷ자, -자 등 집 모양이 다양하고 마을을 에돌아 난 골목길을 걷다보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회마을에는 한때 30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30여 가구 250여 명의 주민만이 살고 있으며 이 중 류씨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하회마을에서 나오면 ‘하회동탈박물관(www.mask.kr)’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국보 121호인 하회탈을 비롯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사용하는 탈놀이 탈과 세계 30여 개 나라의 탈 약 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안동의 얼굴이 된 하회탈춤은 탈에 담긴 웃음, 풍자, 해학을 민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탈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1928년 일본 강점기 때 강제로 중지 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되었다.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된 놀이마당은 동작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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