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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운’ 상가? 아직 ‘덜 세운’ 상가!

<탐방> 서울시 ‘다시 세운 프로젝트’ 세운상가 정다은 기자lpanda157@weeklyseoul.nel승인2017.12.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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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시에서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자‧전기 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세운상가를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부활시킨다는 목표였다. 용산 전자상가가 들어선 뒤 낙후되고 침체된 세운상가.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모습은 유지하며 건물과 주변을 리모델링해 지난 9월 18일 재개장했다.

세운상가는 1968년 ‘세계의 기운이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상가이자 40년 전통의 전자상가다. 오래된 전통만큼 수많은 기업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TG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코맥스도 모두 여기서 시작됐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위치한 도심전자산업지역의 메카로서 수많은 장인들과 전기전자부품, 전기재료, 컴퓨터반도체, 음향기기, 전자제품, CCTV, 오락기기, 노래방기기, 조명기기 등 다양한 전자상품들이 있다.

 

 

1945년 무렵 종로-을지로 일대는 일본에 의해 소개공지로 지정됐다. 당시 일본은 미국 등 연합군의 폭격에 대비해 아무런 건물도 짓지 않는 공터인 소개공지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세운상가 일대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 이후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대규모 판잣집을 살기 시작했으나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재개발사업으로 계획돼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고 2년만인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단지인 세운상가가 탄생했다.

용산 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각종 전자제품과 컴퓨터 및 컴퓨터 부품 등을 취급하던 곳으로 1987년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불법 복제의 온상이었다. 또 각 가정에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소년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모여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일명 빨간 비디오. 하지만 비디오 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해외 성인 잡지들(속칭 빨간책)을 판매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리모델링 후 ‘데이트 명소’ ‘실내 데이트 장소’ ‘사진 애호가들의 출사지’ 등 입소문이 자자하다. ‘다시 일어선’ 세운상가를 찾았다.

 

 

지난여름이 유난히 더워서인지 무척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외출 한번 하려면 얇은 옷을 다섯 겹 정도 껴입고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까지 완전무장을 해야 겨우 문밖으로 한발 내딛는다. 외출 한번 하기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추운 날엔 데이트는커녕 나들이조차 어렵다. 영화관, 전시회, DIY카페, 탈출카페 등 실내데이트 장소가 핫한 이유다. 세운상가도 이런 분위기에 가세하고 있다. 전시장도 있고 옥상정원도 있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하고 찾아갔다.

종로 3가역 12번 출구에서 나와 약 3분 정도 걷자 넓은 광장이 나온다. 건너편은 종묘가 있는 종묘공원. 이곳이 세운상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광장으로 만들었으나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모습이다. 날이 추워서인지 사람도 없고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일단 지하로 통하는 길로 내려간다. 전시장이 나온다. 공사과정과 계획, 세운상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란다. 헌데 추운 날씨 탓인지 문이 꽁꽁 닫혀있다. 문이 무거워 열기도 버겁다. 뒤따라온 젊은 남자가 문을 열어주어 들어갈 수 있었다. 한산하다. 기자까지 포함 세명뿐이다. 그래도 바깥과 달리 분위기 있게 정돈된 모습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는 본격적으로 상가 탐방에 나섰다. 건물 구조가 복잡하다. 다시 광장으로 나가야되나 망설이다가 발이 이끄는 곳으로 향한다. 건물 1층. 모든 층중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이다. 안내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주욱 이어진 상점들을 따라 걷는다. 세상의 모든 전자제품을 다 모아놓은 것 같다. 무전기, 텔레비전, 노래방기계…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전기장판과 난로, 히터 등 난방기구들도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때가 때인지라 난방기구들을 힐끗힐끗 구경하는 이들이 보인다. 얼어있던 몸을 히터 앞에서 잠깐 녹여본다.

 

 

조금 더 가니 영상기기, 음향기기, 가전제품 등이 전시돼있다. 영상, 음향기기 쪽엔 발길이 더 잦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쉽게 볼 수 없는 기기들이 좌우로 전시돼있어 눈이 바쁘다.

1층은 가전제품 유통상가, 2층은 가전전문 도매상가, 3층은 전자부품, 4층에선 컴퓨터 및 전자부품을 팔고 전자제품 수리도 한다. 2층부터는 조용하다. 매장엔 전부 불이 켜져 있지만 운영을 하는가 싶을 정도로 적막하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상점 사이로 뭔가 수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대부분 손님들은 수리를 맡기거나 원하는 제품을 정해놓고 사러오는 듯 했다. 구경이 목적이 아니다. 원래 이전의 세운상가는 구하지 못할 것이 없고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는 곳으로 명성을 떨쳤다. 오죽하면 탱크도 만들 수 있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까지 있었겠는가. 한 음향기기 상점에서 나온 사람의 얼굴이 뿌듯해 보인다. 원하는 걸 구했나보다.

 

 

하지만 아직 ‘다시 세운’ 프로젝트 초기여서인지 미흡만 부분이 많았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다. 찾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종종 구경하는 사람들이 오고갔지만 잘 꾸며진 외곽 쪽에서만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갈 뿐. 상점들이 있는 안쪽은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부담 없이 와서 이것저것 마음껏 구경하고 즐길 수 있는 ‘꺼리’가 부족해보였다. 좀 더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포토존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기획물들을 대거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아울러 예전 명성을 되찾기 위해선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외곽에 있는 청춘들을 위한 공방, 세운상가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로봇 ‘세봇’, 공중다리 등 노력의 흔적이다. 차츰 차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하는 세운상가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세운상가를 나오면 공중다리를 통해 이어진 세운청계상가로 이동할 수 있다. 다음 호에는 세운청계상가, 세운대림상가를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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