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죽고 나 살자’,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너 죽고 나 살자’,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7.12.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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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기자, 일용직 노동자에 도전장을 던지다

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기술도 기능도 없다. 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늘 낯설고 두렵다. 매일 새벽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현장(건설, 토목, 조경 등) 경험이 있는 일용직들에게도, ‘새로운 현장’은 그 경험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일정 부분 좌절감을 안긴다. 그러니 경험이 전무후무한 일용직의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용직 노동자와 각을 세우고 있을 노동 현장, 그리고 그것을 조율해야할 용역사무소. 그 복합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돈.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울뚝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자가 이들(현장, 용역사무소, 일용직노동자)과 마주한 시간은 흥미로웠고 풍요로웠고,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이들의 절박함을 캐릭터별로 옮기려 했더니, 시쳇말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기자 본인조차도 백척간두에 서있기에. 기자는 수개월 째 지방의 한 용역사무소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새벽을 열고 있다. 좋은 말로 해서 하방이고 조선식으로는 좌천이겠다. 시리즈물로 손색이 없을 이 기사의 첫 회는 아쉽게도 체화를 빌어 연다. 비교적 캐릭터가 약한 기자의 얘기를 맛보기 삼아 프롤로그 형식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겨울을 옮겼다.

 

 

새벽이 두려운 사람들

노동 현장의 겨울은 일거리가 넉넉지 않다. 일용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지만, 달콤한 새벽잠을 물리치기 힘들어 기상을 포기하는 게 다반사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는 맥락상 순환적이다. 거칠게 부연하자면 현장에서 일을 부르지 않으니, 용역사무소를 통해 일을 빌어먹어야 할 이들은 ‘오늘도 일이 없으려니’ 하고 선뜻 새벽을 나설 수 없다. 입장을 바꾸면, 현장 담당자들도 새벽을 나설 이들이 없으려니 하고 작업 개시 결정에 소극적이다. 이런 맥락상 일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악순환’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 일거리가 축소되는 이유다.

물론 현장 일에 있어 뛰어난 이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살아남아 현장 붙박이로 승격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숙련공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고 현장 요구에 부응하는 이들 노동자들은 겨울 아니 사계가 두렵지 않다. 불행히도 기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늘은 일이 없다”는 용역사무소 소장의 새벽인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운이 좋아 새벽일을 나서게 되면 대부분 현장에서는 추위를 녹이기 위해 쓰고 남은 화목으로 불을 땐다. 이때 현장 반장(담당자)은 용역사무소를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불을 붙일 것을 지시한다. 이것은 하나의 시험이다. 만약 불도 못 붙이면 일머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인력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청소 등 단순 업무 지시만 떨어진다. 직원이 아닌 하루살이 일용직이기에 ‘다시 볼일 없다’는 식으로 여겨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일거리가 무척이나 없는 겨울, 이 상황에서는 “내일도 불러달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부류들이 있는 반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 너 죽고 나 살자”라며 현장 반장과 멱살잡이를 서슴지 않는 마초들도 있다.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저 사람 때문에 오늘부로 이 현장은 끝났다. 우리는 직장 한 곳을 잃었다”라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당신 대학생이야?”, “뭐 이런 사람을 보냈냐. 그렇게 제대로 된 사람을 보내라고 했더니” 등등 기자 역시 막말을 많이 들어왔다. 대학생은 일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뭐 이런 사람을 보냈냐며 쓰다 남은 목재를 들고 때리려는 시늉을 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때론 거의 장애인 취급하는 용어들도 오고간다. 기자의 경우 막말로 들이대는 현장 담당자들에겐 늘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침묵이 금이며, 대꾸 않으면 중간은 가기에. 대신 퇴근길에 용역사무소에 들려, 소장에게 비장한 각오로 “주먹이 운다. 오늘 현장은 다시는 가지 않겠다”며 엄포 놓기 일쑤다.

“아니 왜요? 일 하다보면 욕도 얻어먹을 수 있는 거지. 회사 생활 안 해봤어요? 다 그렇잖아요.”

“욕을 해도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그 현장 담당자는 인간 자체가 글러먹었어요. 안 갑니다.”

“아니 가뜩이나 겨울에 일 없는데, 거기라도 안 가면 당신 뭐하려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굶어 죽어도 거긴 안 가요.”

“요즘은 돈이 가오랍니다.”

비단 기자와 용역사무소 소장의 대화만이 이런 건 아니다. 하루가 저물 적 종종 이런 웃지 못할 논쟁이 오고간다. 하루일당을 받고 사무소 인근 술집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뒷모습에선 마치 석양의 무법자인양 ‘가오’가 느껴진다.

이쯤 되면 용역사무소를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 하지만 여전히 깊은 겨울이다. 다른 용역사무소에도 일거리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순간 비굴해져도 좋다. 어둠이 짙어 갈수록 술기운은 오르고, 언쟁을 벌였던 열에 아홉은 용역사무소 소장에게 긴급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극한 현장에도 가겠으니, 불러만 달라. 두 번 다시 현장에 대한 불만은 토로하지 않을테니.”

어떤 궂은일도 마다않는,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마다 용역사무소 출근도장을 찍어 소장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조차도 한파를 당해내진 못했다. 현장에서 일을 못해 사무소로 연락, 보이콧해도 소장은 그를 매일 이 현장 저 현장으로 보냈다. 매일매일 10% 수수료를 소장에게 안겨 주는 효자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 달에 33일 일 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는 치열했다. “오늘 일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런 그 역시 겨울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작업의 성패를 떠나 현장 담당자들은 술 냄새 나는 이들을 경계한다. 아침부터 쫓겨나는 이들도 수 없이 봐왔다. 기자 역시 정도의 차이이지, 스스로 캐리커처 해보자면 영화 ‘취권’의 주인공 스틸 컷 이미지로 비춰질지 모른다. 바로 쫓겨나는 극단의 상황에 처한 적은 없으나 “내일부터 저 사람은 부르지 말라”는 불만이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용역사무소 소장도 자신의 뒷목을 잡으며 기자에게 토로하기에 이른다.

 

술 권하는 현장…내 캐릭터는 무엇?

“내가 그동안 말을 아꼈는데, 솔직히 당신 때문에 전화 온 곳이 지금까지 10군데가 넘어요. 공통적인 얘기가 아침부터 술 냄새 난다며 내일부터 절대로 보내지 말라더군요. 일을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요즘 현장들은 전날 과음하고 온 사람들 가장 싫어해요. 사고 나면 자기들이 다 책임져야 하니까요.”

대형 시공사 현장에서는 아침 점심으로 음주테스트를 한다. 그동안 요행으로 이런 곳에서는 탈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작은 관공사나 개인업체는 현장 담당자와 ‘밀착’해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새벽 댓바람에 담당자가 용역사무소 소장에게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오늘은 이왕 왔으니 같이 일하고, 이 사람 내일부터 절대로 보내지 마세요.”

기자는 특별관리대상으로 이제 음주테스트를 용역사무소 소장이 직접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부세요.”

“휘이익.”

“들이키지 말고 내쉬라고! 이거 봐 이거 봐, 또 먹었네. 오늘은 개인업체니까, 일단 마스크 끼고 일하세요. 도대체 젊은 사람이 뭐가 그리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다녀요?”

“괴로운 건 없는데, 밤에 딱히 할 게 없어서.”

“책이나 읽고 뉴스나 볼 것이지.”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해도 이래저래 소장은 기자가 현장으로 가길 원한다.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하고, 현장에서도 젊은 일꾼을 환영한다. 어떤 곳은 현장담당자가 술을 권하기도 한다. 겨울철이어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아침 점심식사 때마다 적당량의 음주로 현장과 하나가 된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런 곳에 불려나가길 원한다.

기자가 술을 많이 마시지만 일 하나는 똑소리 나게 잘한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용역사무소에서 알게 된 한 노동자는 “요즘 자기가 일 잘한다고 소문내고 다녀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

한 현장에서 현장 담당자조차 곤경에 빠져 전전긍긍하던 일을 기자가 별 생각 없이 연장 하나로 푹 찔러 해결해준 게 소문의 진원이었다.

“혹시 전공이… 목수세요?”

“목수는 개뿔, 잡붑니다.”

흔히 건설 노동현장의 왕은 ‘철근’이고, 그 다음이 목수라고들 한다. 철근은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건축의 뼈대이다. 목수는 그 뼈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때론 막노동 현장에선 그렇게 목수와 같은 실력자로 급부상한다. 무슨 대가라도 된 것인 양 주변에서는 찬양일색이다.

“그 사람 술 냄새는 좀 나도 일은 잘해. 조립도 하더라고. 그러니까 내일도 그 사람 꼭 보내야해.”

여전히 초보수준에 머물지만 그동안 기자는 경험을 쌓아 각종 연장을 다루기도 한다. 목수 보조, 때론 목수가 해야 할 일까지 나선다. 하지만 훗날 기계치라는 정체가 탄로라도 날까봐 기능에 대해선 알고 있어도 되도록 모른 척 한다. 대접받는 것도 꺼려진다. 시키는 족족 했다가는 “잘한다, 잘한다”며 어렵고 지저분한 일까지 도맡아 시키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비록 현장 경험이 미천하지만 분석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력 등 물리적 이해 그리고 적당한 잔머리만 받쳐주면 누구라도 현장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작업 이해의 상당수는 경험의 영역이지 지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체력이다. 현장 노동에 적합한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꾸준한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아무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될 수 없는 게 ‘막노동꾼’이다.

기자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직영이나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벽잠을 설치는 이들 노동자들이 없다면 하늘을 찌를 듯한 저 높은 건물들은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 푸른 산천을 가르는 토목과 조경은 어떤 미적 양식을 띌 것인지에 대해 한번쯤은 모두들 실용적 관점에서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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