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열세 살 오야순’이 겪은 전쟁

[위클리서울=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오야순 할매. “나 별시상 다 저끄고 살았어. 육이오사변 당해갖고 할매랑 나 빼놓고 우리집 아홉 식구가 다 죽어불었당게.”

 

소녀는 열세 살이었다.

하루 아침에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 셋과 동생 넷을 잃었다.

“나 별시상 다 저끄고 살았어. 육이오사변 당해갖고 할매랑 나 빼놓고 우리집 아홉 식구가 다 죽어불었당게. 아버지는 나 애렸을 때 진즉 돌아가셔 불었고.”

오야순(80·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할매. 어린 시절 그런 참혹한 비극을 겪었으리라고 짐작되지 않는 활달한 기개와 씩씩한 말투다. 그 힘으로 자기 앞의 생을 헤쳐왔다.

“우리 온식구들 다 피란하다가 죽었지. 처어 건네 높은 산 속 굴 속에서 식구들이 잠을 잤는디 아침에 나 혼차 밥해 갖고 가서 일어나라고 깨운게 암도 안 일어나. 몸살허도 않고 빤듯이 눠서 죽어붓서. 하나씨, 어매, 오빠 너이, 동생 서이. 그때가 겨울인디 빨래허니라고 할매하고 나하고는 잠꽌 마을에 돌아와서 이웃집 할매네서 잤기때미 안죽었어.”

1950년 전쟁통 속의 겨울, 온식구가 깊은 산 속으로 피난을 갔더란다.

“처어 건네 드무쇠(드무소) 부근에 있는 산이여. 바우덩이가 뾔족하게 있는디 그 속에 들어가문 물이 나. 긍게 물따라서 가니라고, 거그서 밥해 묵을라고, 굴을 파고 피란을 갔어. 동네서 여러 집이 갔제. 근디 우리만 그렇게 됐어. 다른 집은 괜찮했어. 그 사람들은 불을 안 담아갖고 갔제. 우리는 한아부지가 담배 피운게 불을 담아갖고 갔어. 그날 아침 굴에 가서 본게로 화리(화로)에가 옷자락이 들어가서 타졌더라고. 근디 죽어불었으니 알아. 숯불 피와놓고 잔 것이 까스불이 일어나서 그러고 된 것이여. 시방으로 말하문 연탄까스 중독이제. 진진 밤내 불은 다 사그러들고 재만 따뜻허니 남았더라고.”

그렇게 하루 아침에 식구들을 허망하게 잃어 버렸다.

“모다 자는 사람들마니로 카마니 눠 있더라고. 그때는 무선지도 어짠지도 몰랐어. 암것도 몰랐어. 밥 묵게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이불을 떠드는디 내 친구 수냄이(수남이) 아버지가 아이고 빨치산 올라, 조용히 히라고 그러더만.”
 

피난간 굴에서 아홉 식구가 하루아침에 죽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죽음이었다.

“사방서 총소리 나고 정신이 없는디 뭣을 혀. 한아부지만 따로 파묻었다가 나중에 밭으로 갖다 뫼셨어. 형제들은 거그서 다 썩어불었제. 누가 총생들까지 다 해주가니.”

그 굴에 다시는 가보지 못했다.

“못 가, 못 가, 무선 산 속이여.”

그 전쟁통에 할머니랑 둘이 사흘을 밥을 못해묵고 굶은 적도 있다. 식구들을 잃은 그 겨울 지나 봄이 올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다 피란나가불고 동네에 사람이 있었가니. 질로 못나갈 사람들만 쳐져갖고 시 집이 남아 있었어. 한 집이는 어매하고 딸하고 둘이만 산게 못가고, 한 집이는 순창 사람인디 아들이 둘 다 다 빨치산인게 여그로 피난와갖고 못나가고 있고. 불이 꺼져불었는디 삼일째 됨서 동네 사람들이 봄 왔다고 씨갓(씨앗) 심을라고 돌아와갖고 성낭을 줘서 밥을 해묵었당게. 그때 성낭을 준 사람이 양춘 양반이여. 피란나가서 귀미(구미마을)에서 있다 와갖고 우리가 밥을 못해묵었당게 성낭을 주더라고. 그 귀헙디 귀헌 성낭은 평생 안 잊어묵제. 금쪽같이 애껴서 썼제.”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어린 소녀는 지켜보았다.

“빨치산들이 꽉 차갖고 있는디 군인들이 순창에서부텀 포위를 하고 짜고 들온 거여. 군인들이 다무락이 다 허물어지도록 자갈자갈 총으로 지져댄게로 드무쇠 냇물 가상으로 도망가다 다 죽었어. 여자남자 몽땅 죽어붓서. 몇 백명이 죽었는가 몰라. 피가 또랑물이 돼갖고 흘렀제.”

그 자리엔 풀들이 우북하니 돋았다.

“난중에 인계떡이라고 딴 동네서 시집온 사람이 봄에 너물 끊으러 가갖고 취가 쌔카마니 좋아서 한 주먹 뜯은게로 멀크락이 주먹으로 한나 잽히더라만. 빨치산 죽은 자리라고 우리는 안게 그 자리를 안 간디, 그 사람은 멀리 순창 인계에서 와갖고 그것을 몰랐던 거제.”
 

“우리 할매 많이 울고 살았어”

전쟁은 그렇게 생목숨들을 빼앗고 열세 살 소녀의 삶도 찢어 놓았다.

“우리 할매 많이 울고 살았어. 할매 우는 거 많이 봤제. 할매가 행여나 내가 어쩌게 될깨비 얼매나 안정을 시키고 괜찮하다고 괜찮하다고 맨나 따둑거렸어. 할매때매 살았제, 나 한차 있었으문 살도 못해. 우리 할매가 일자무식이래도 동네 사람들이 영리하다고 혔어. 우리 할매가 잘 히쳐나가고 피눈물 나는 이 시상을 참고 살다 가셨기때미 내가 있는 거제.”

‘만약’이라는 말로 돌이켜보면 한없이 안타까운 그날.

“우리 큰오빠가 일본에 추직(취직)하러 가서 일 년 있다 집으로 돌아왔는디, 작년에 일본으로 갔다문 올해 반란군 시절이 와불었네. 근디 하필 그때 나와붓서. 이발기계 한 벌을 갖고 왔더라고. 그래갖고 집에서 이발관을 했제. 회룡 장구목 천담 가곡, 이 근처 사람들은 다 우리 오빠한테 와서 깎았어. 그 오빠가 그때 일본서 안 나오고 쫌만 더 있다가 왔어도 안 죽었을랑가 몰라.”

“시방 살았으문 아흔네 살”이라는 큰오빠. 그 모든 형제들의 나이를 이날 이때까지 헤아리며 살아왔다. ‘시방 살았으면 몇 살’이라고.

“우리 형제간들이 전부 두 살 새(사이)거든. 우리 막둥이가 시방 칠십 둘이겄구만. 동갑쟁이가 요 욱에 살아. 우리 오냄이(오남이), 다섯째 아들이라고 오냄이였어. 우리 오냄이가 공부도 진짜 잘하고 참 영리했어. 동갑들 보문 얼매나 생각난다고. 동갑들이 요 동네 살아. 우리 오냄이도 살았으문 저러겄다 하제.”

살아 있는 동안 할매에게 그 동생은 언제까지고 ‘우리 막둥이’고 ‘우리 오냄이’이다.
 

“외로와서도 새끼들을 많이 났제”

“육이오사변 징그랍네. 내가 긍게 놈들한티 좋은 일을 많이 혀. 여그 놀러온 사람들 보문 무시도 주고 호박도 주고 너물도 주고. 뭐시라도 주고자와. 줘야제! 내가 이 시상에 태어나서 시방까지 살았응게. 그때 죽었으문 살았겄어. 나는 그 생각을 안 잊아불어. 항시 쪼옥 뀌고 있어. 그 생각을 한게로 뭐이든 아깐 것이 없어.”

할매 혼자서만 ‘열세 살 오야순’을 키웠던 건 아니다.

“동네 할매들이 다 나를 짠하게 알고 나한테 잘해주고 이뻐라 힜어. 집집이 끄니 때문 밥도 믹여주고, 계화떡 할매는 나 저고리도 히 입혀주고. 그 좋은 할매들 인자 다 죽어 불었네.”

할매 나이 열다섯 살에 열아홉 살 먹은 순창 도왕골 사는 이승재와 혼인했다.

“삼 년을 큰집에서 같이 살았제. 형님이 제대하고 나서 다시 욜로 왔어.”

혼인한 후에도 도왕마을 시댁과 구담마을 친정을 자주 왔다갔다 했다.

“도왕서 여그까지가 십리 넘고 이십리가 가찹제. 담박질로 빈골로 온다하더라도 두 시간이 더 걸려. 그때는 질이 험하제. 산질로만 산질로만 댕갰어. 질이 물짜고 존 질이 아니여. 질가에 송장 뼈다구가 수두룩힜어. 군인들이 지져 대불어서. 독자갈같이 수북하게 있어. 뉘얀지도 모르고. 어느 날은 해가 어둑해서 사방이 침침해갖고 오는디 불이 시퍼래서 깜짝 놀랐당게. 난중에 들은게 노인네들이 해골 대그빡에 불이 시퍼렇게 써진다고 그러더라고. 그이들은 한태서 다 죽어분게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못 찾아갔제.”

혼인한 손녀한테 할매는 노상 말했다. 새끼들 많이 낳아서 잘 키우라고. 할매 말마냥 아들 여섯 딸 넷, 십남매를 낳고 키웠다.

“외로와서도 많이 났제. 열이라도 우리 애기들은 고뿔 한 번 안 걸리고 잘 컸어. 아침에 밥 믹여서 씻개 놓고 내노문 그대로 흙도 안 묻히고 뽀애갖고 놀고 있어. 속도 안썩이고 학교 안갈라고 한 놈도 하나 없고. 성공을 힜제, 아들딸 고뿔 한번 안 걸리고 건강하니 잘 키왔응게.”

유난히 냉장고가 큰 할매네 집.

“내가 놀들 안헌게 냉장고가 꽉 차. 디룽디룽 놀문 암것도 없제. 대수리도 잡아서 여놓고 너물도 해서 여놓고. 명절 돌아오문 애기들 믹일란게.”

팔순 나이에 디룽디룽 놀지 않고 ‘자식들 믹이는’ 어매의 소임을 날마다 여전히 기쁘게 받자옵고 있다.

“사는 거이 별거 없어. 놈 헌테 잘하고 베풀고, 말 한자리라도 따뜻허게 잘 히주고. 그러고 살문 복을 단번에는 못 받아도 시나브로 받어.”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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