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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엄마야, 너희를 낳고 처음 써보는 편지구나

<삶 &> 류승연 류승연 기자lscaletqueen@naver.coml승인2017.12.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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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환이와 수인이

 

사랑하는 쌍둥이에게.

수인아, 동환아 안녕~ 엄마야. 너희를 낳고 처음으로 써보는 편지구나. 그런데 편지를 쓰려니 왠지 좀 부끄러운 마음도 드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이 글을 10년 후에 읽기를 기대하며 오늘 편지를 쓸 거야. 10년 후 20살 성인이 된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고 엄마의 진심을 알아줬으면 하거든.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하거든.

먼저 우리 딸 수인아.

엄마는 너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엄마는 태어나서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장애인 가족이 될 수 있었는데, 날 때부터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너의 인생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늘 동생을 보는 엄마의 눈. 늘 동생 편을 드는 아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참고 양보하며 홀로 커야했던 너. 동생에게 장애가 온 것은 네 잘못이 아닌 데도 그에 따른 책임은 네가 지곤 했지. 네 방을 어지른 건 동생인데 치우는 건 네 몫이 될 때마다 화가 많이 났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우리 딸. 엄마가 많이 미안해.

알면서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이 많아서 더 미안해.

알면서도 그랬던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해.

엄마는 말이야. 수인이가 진짜로 수인이만의 삶을 살기를 원해.

항상 말하지? 지금은 동생이랑 온 가족이 다 함께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스무 살 이후 성인이 되고부터는 네 삶을 찾아가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엄마는 동생의 장애가 네 인생의 장애가 되는 걸 원치 않아.

아니, 만약 그리 살면 오히려 화를 낼 거야. 동생은 엄마랑 아빠가 어떡해서든 살아갈 궁리 해 놓을 테니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 인생을 즐기고 너의 삶을 즐기며 네 자신으로서 살아. 장애인 동생의 누나로서가 아닌.

그것이, 너를 그리 살도록 해주는 것이 지금 엄마가 너에게 알면서도 죄를 짓는 이 모든 것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 같아.

요즘 우리 딸은 부쩍 반항심이 늘었는데 혹시 알고 있니? 열 살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수인이 너는 마치 사춘기 소녀와도 같은 반항심을 드러내며 엄마 아빠에게 대들고 있단다.

커가는 과정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그 반항을 허용하지 못하고 엄마는 혼을 낼 때가 있어. 네가 바른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걸 배우게 하기 위해서란다.

엄마가 살아보니까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해. ‘말’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말’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해. 마음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말’로서 전달이 되는 것이 가장 쉽기도 하고 정확하기도 한 길이야.

그런데 열 살을 앞둔 지금의 수인이처럼 울거나, 짜증내거나, 화내는 걸로 마음을 전달해 버리게 되면 사람들은 오해를 하게 돼. 그 행동이 일어난 ‘마음’은 보지 못하고, 그 ‘행동’ 때문에 비난을 받게 돼.

엄마는 수인이가 ‘말’을 잘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유창하게 연설을 잘하라는 게 아니라 네 생각과 네 마음을 남에게 말로서 잘 전달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혼낼 때마다 ‘말’로 하라며 설명을 요구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란다.

엄마와 함께 하는 ‘말하는 연습’이 10년이 지난 후 스무 살의 수인이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궁금해진다. 스무 살의 우리 딸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남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네가 잃는 것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 이 편지를 읽는 수인이가 잃은 것이 많았던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면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

수인이를 향한 미안함은 엄마가 평생을 살면서 조금씩 갚아줄게. 늘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늘 응원하는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으로, 늘 사랑받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으로 엄마가 수인이에게 갚아 나갈게. 장애인 동생 때문에 언제나 뒷전이어야 했던 그 서러움들 모두 풀고 갈 수 있도록 엄마가 살면서 갚아 나갈게.

사랑하는 엄마 딸.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수인이가 있어서 엄마는 살 수 있었어. 너는 엄마의 보석이야. 알고 있지? 반짝반짝 빛날 너의 인생을 축복한다.

그리고 동환아. 엄마의 아픔이자 존재이유인 동환아.

너를 생각하면 엄마는 눈물이 나. 이토록 예쁜 아들이 엄마에게 온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어. 우리 아들에게 장애를 준 신도 원망해 봤어. 우리 아들과 함께 몇 번이고 죽으려고도 해 봤어.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 왜냐면 우리 아들이야말로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 신이란 존재가 엄마를 사랑해서 엄마에게 내려준 구원의 선물이란 걸 알게 됐거든.

스무 살의 우리 아들은 아마 그 때도 이 편지를 읽지 못할 거야. 누나가 읽어준다 해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 영원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말은 못해도 느끼고는 있을 테니까. 엄마의 사랑을. 엄마의 마음을.

엄마는 동환이 덕분에 많이 웃고 살아. 이 세상은 많이 힘든 곳인데 그런 삶 속에서 유일하게 때가 묻지 않은 청청한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동환이 네가 있는 곳이야.

언제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들은 그 순수함, 그 투명함으로 엄마아빠, 누나에게 기쁨을 행복을 선물해 준단다.

그 뿐만이 아니야. 우리 아들로 인해 엄마는 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어. 자만하고 콧대 높게 살았을 엄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낳고 나서야 이 세상의 모든 작고 약하고 힘없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어. 비로소 그것들을 돌아볼 줄 알게 되었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란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빨리 알게 되었어. 100점짜리 수학시험지를 가져오는 것보다 스스로 밥을 먹는 아들이 더 큰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

요즘 우리 아들은 이보다 더 예쁠 수는 없을 만큼 예쁜 짓만 골라서 해. 반항기가 온 누나와는 다른 발달과정을 걷고 있는 거지. 수인이는 제대로 커나가는 어린이로서의 기쁨을 주고, 동환이는 언제까지나 어린왕자로 사는 이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기쁨을 준단다.

그런 우리 아들이, 하염없이 어리고 예쁘고 순수하기만 한 아들이 얼마 전 활동보조인에게 머리를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엄마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단다. 앞에서 보이는 모습에 속은 엄마의 잘못이 컸지.

그런데 분노 다음에는 슬픔이 왔어. 그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맞고 살았던 걸까? 머리 맞는 게 아닌 또 다른 종류의 학대는 없었던 걸까? 말을 할 수 없으니 표현도 못하고 그동안 너는 그 긴 시간을 어찌 견뎠던 걸까?

그래서 그랬니? 엄마가 집에만 들어가면 그리 활짝 웃었니? 이제부턴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 활짝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던 거니?

이번에 활동보조인의 폭행 사건을 겪으며 엄마는 많은 생각을 했단다. 이 세상에 믿을만한 사람은 없어.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사람을 믿을 수 없으면 제도로, 법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해.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선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방법도 많고. 엄마는 우리 아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남은 생을 바치기로 했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로. 행동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게. 그런 세상을 네게 선물해 줄게. 그것이 엄마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유산이 될 듯 하구나.

만약 동환이 너에게 장애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너는 누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말썽꾸러기 사내아이가 되어 있었겠지. 가끔은 하염없이 슬플 때도 있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네게 장애가 온 게 엄마의 잘못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거든.

그 때 누나를 낳고 힘을 더 줘서 네가 뱃속에서 빨리 나오도록 해야 했는데. 생후 6개월 쯤에에 침대가 아닌 바닥에 눕혀놔야 했는데. 설마 뒤집기도 못하는 네가 바둥거려서 바닥으로 떨어질 줄 어찌 알았을까. 혹시 그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일까?

엄마의 이런 죄책감은 평생을 가게 될 거야. 엄마로 인해 우리 아들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어 버렸을까봐 엄마는 평생을 자책하며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자책만 하며 살지는 않을게. 남들과 다른 네가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고 인식을 바꾸고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너에게 진 죄를 갚아 나갈게. 엄마는 우리 동환이를 너무나 사랑하니까 그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법이 될 거야.

수인아 그리고 동환아.

너희들 덕분에 엄마는 행복한 10년을 살 수 있었어. 너희가 없는 엄마 삶은 상상할 수도 없어. 그건 아마도 삶이 아닌 지옥일거야. 그 정도로 너희는 소중해. 엄마 자신보다 더 소중해.

부족한 것이 많은 엄마에게 와줘서 고맙고 감사하단다. 엄마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너희를 너무나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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