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새벽 고요를 깨우며…둥! 둥! 둥!

<김초록 에세이> 종(鐘)의 미학 김초록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2.31 10:5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강화 동종=문화재청 제공

새벽의 고요를 깨우며 은은히 들려오는 저 종소리. 둥! 둥! 둥!…, 그 힘찬 범종 소리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듯 건드리며 지나간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다.

골 깊은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산(山) 생명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지긋이 열어준다. 속됨이 없는 맑디맑은 투명한 그 소리에 내 몸을 맡긴다. 문득 마음이 차분해지며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풍겨오는 듯하다. 절집에서 듣는 새벽종의 신선함, 새날이 밝아온다는 의미다. 도시의 온갖 소음에 시달리다 긴 음파(音波)를 던지며 퍼져가는 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뭐랄까, 한없는 그리움과 위안을 얻게 된다. 산사의 종은 새벽에 33번, 저녁에 28번을 친다. 옛날에는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 때, 수행의 의미를 담아 2번에서 108번까지 쳤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홀로 종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는 맑고 개결한 소리의 떨림! 그 음파는 아주 자연스럽게 멀리 멀리까지 가 닿는다.

종소리의 밑바탕에는 한국인의 심성이 담겨 있다. 순후하면서도 단아한 선비의 기질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욕심과 허영과 겉치레를 말끔히 제거한 종소리의 긴 여운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무형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종은 음색과 모양, 만드는 방법, 겉면의 문양(文樣)까지 어느 것 하나 심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쇠로 쇠를 쳐서 소리를 내는 다른 나라의 종과는 달리 한국의 종은 쇠를 나무봉(종메)으로 쳐서 소리의 깊이를 더한다. 종과 종메는 톱니바퀴처럼 언제나 맞물려 있어야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나무봉이 아닌 쇠로 치는 종소리는 왠지 거북스럽다.

 

▲ 옛보신각동종=문화재청 제공

 

종소리는 우리들의 혼탁한 정신을 맑게 헹구어준다. 물소리, 바람소리, 돌 구르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와는 또 다른 그윽함을 우리는 종소리에서 맛볼 수 있다. 그 깊은 울림은 종(鐘)만이 간직한 멋이요 운치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종이 품고 있는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종은 수두룩하지만 한국의 종, 하면 상원사 동종과 성덕대왕신종을 으뜸으로 꼽는다. 이 두 종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상원사 동종은 종의 모양이 피라미드와 같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며 밑 부분은 옹기처럼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으로써 음색이 맑고 청아하다.

“경주를 알려면 에밀레종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경주를 한번쯤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여기서 에밀레종은 성덕대왕신종을 가리킨다.

경주에 가면 제일 먼저 경주박물관에 들러볼 일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에밀레종을 만날 수 있다. 말로만 듣던 에밀레종을 직접 눈으로 보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 옛날의 맑고 깨끗한 종소리를 들을 수 없어 못내 아쉽지만 유물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진짜 종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에밀레종이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본래의 모습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종은 쳐야 녹슬지 않고 소리를 내야 비로소 종으로의 구실을 다하는데 박물관에 고이 모셔두었다는 것은 종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박물관에 간직한 종은 그 실체의 반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전등사 철종=문화재제공

 

에밀레종에 얽힌 전설은 우리에게 ‘슬픈 감동’을 준다. 에밀레종은 수십 번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신라의 보배이다. 다 만든 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쇠를 녹여 다시 만들었다. 그래도 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쇠를 녹여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다. 종장이(종을 만드는 사람)는 자기 외동딸을 펄펄 끓는 쇳물 속에 집어넣고 종을 완성할 정도로 강한 집념을 보여 주었다. 종을 칠 때마다 그 딸이 ‘에미’ 때문에 죽었다고 자꾸만 ‘에밀레 에밀레’ 하고 울어 에밀레종이 되었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황당한 얘기 같지만 에밀레종이 세계인들이 탐내는 훌륭한 종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런 얘기도 들린다. 에밀레종에 대한 소문이 이웃 나라 일본으로 퍼져나가 일본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에밀레종을 자기 나라로 가져가려고 하다가 종이 하도 무거워 배에 싣지 못하고 동해안 갯벌에 그대로 처박아 두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에밀레종의 신비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은 소리로 사람들의 심금을 건드리곤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음(音) 결은 길게 퍼져나가 은근한 화음(和音)을 이룬다. 이것은 에밀레종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조화와 균형의 미덕이다.

에밀레종의 그 고유한 음은 흐릿한 마음에 샘물 같은 청신함을 불어 넣어준다. 종만이 낼 수 있는 긴 음파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주조법(鑄造法)에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에밀레종의 신비함을, 소리의 세기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맥놀이’에서 찾고 있다. 맥놀이란 속이 빈 종이나 유리잔을 두드릴 때 나타나는데, 진동수가 거의 동일한 두 개의 음파가 동시에 발생할 때 생기는 일종의 간섭 현상이다. 그 소리는 종을 한번만 쳐도 웅, 웅, 웅 하고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데, 맥놀이는 1초당 5~6회 정도 반복되면 좋은 느낌을 주지만, 그 이상이면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한다.

 

▲ 종소리는 잠든 영혼을 깨운다.

 

종소리는 종을 쳤을 때 만들어진 진동이 귀에 전달돼 들리게 된다. 탕- 하고 치는 순간, 수많은 진동음이 발생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잦아들게 된다. 종 고유의 소리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남는 소리이다. 성덕대왕신종의 맥놀이는 종의 재질과 두께가 균일하지 않아 기본 진동수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종을 구성하고 있는 쇠붙이, 거기서 나오는 감동의 소리는 오래오래 마음에 머물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여운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바쁜 삶에 쫓겨 고요하고 맑은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슬픔이자 영혼의 상실이다. 맑은 영혼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사람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도 그만큼 가까워진다. 자, 종소리를 들으러 어디든지 떠나볼 일이다. 우리 사는 가까운 산사에도 종은 있다.

서울 종로의 보신각종이 울릴 날도 멀지 않았다. 섣달 그믐날 밤, 사람들은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러 모여든다. 자정 무렵 33번의 타종(打鐘) 소리를 들으며 묵은해를 보내고 힘찬 새해를 맞는다.

보신각종은 조선왕조시대 때 밤 10시 인정(人定)과 새벽 4시 파루(罷漏)에 도성(都城) 문을 닫고 여는 것을 알리던 종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53년부터 제야의 타종에 사용하고 있다. 보물 제2호로 지정된 구(舊) 보신각종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겨 지난 8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 보존하고 있다. 지금의 종은 국민성금을 모아 새로 주조(鑄造)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종소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빈 틈 없이 돌아가는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종소리를 불러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할 때이다. 내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했던 그 새벽 종소리를 들으러 다시 산사(山寺)에 가고 싶다.

<수필가, 여행작가>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광고국장 : 황석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