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잘하는 게 보수재집권 막는 진정한 ‘적폐청산’”
“‘민생’ 잘하는 게 보수재집권 막는 진정한 ‘적폐청산’”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1.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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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1회

지난 2017년은 한국 사회의 대격동기였다. 대한민국은 농단 당했고, 촛불은 농단의 주역들을 척결해냈다. 촛불혁명이라고 했다. IMF가 터진 1997년 신자유주의체제가 들어선지 20년 만의 일이다. 이른바 ‘97년 신자유주의체제’가 ‘돈과 권력으로 약자를 수탈한 체제’였다면, 2017년 촛불은 ‘남을 밟고 올라서는 세상’이 아닌 ‘공존하는 탈 신자유주의’를 염원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촛불정부라고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들어온 적폐들에 대한 청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촛불혁명은 대통령을 무혈로 탄핵한 합법적 혁명이다.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혁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유혈혁명이었다. 2017년 촛불혁명은 헌법에 기초한 무혈탄핵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지난 해 12월 마지막 강단에 섰던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얘기다. 손 교수는 ‘2017년 무혈 촛불혁명’은 ‘박정희 신화’ 덕에 권좌에 오른 ‘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촉발됐다고 본다.

“‘박근혜와 촛불’은 ‘해방 70년-민주화 30년-신자유주의 20년’의 압축판이다. 다보스 포럼의 옥스팜 총재가 한국의 촛불혁명을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경제적 사건’이라 지적했듯이 우리사회의 청년실업과 빈곤, 양극화는 여전히 심각하다.”

손 교수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만든 것은 87년 헌정체제와 97년 신자유주의체제”라며 “‘2017 촛불체제’는 사람을 돈과 이익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세상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과거 자본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소련의 냉전체제 때문에 가능했고, ‘한강의 기적’이 박정희의 작품이라는 통설도 신화에 불과하다.”

오는 2월 정년을 맞아 대학 강단을 떠나는 손호철 교수를 만났다. 190센티가 넘는 거구. 손 교수가 20대였던 1960년대 당시 군대면제에 해당하는 키였다. 하지만 감옥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는 등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그를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억지로 180센티로 키를 낮춰 강제로 입대시켰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손 교수와 함께 2017년 촛불혁명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정치․노동․사회 전반의 문제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해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탄핵이 이뤄졌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 와중에 가장 중요한 화두는 ‘소통’이었다고 본다. 2018년이 됐다. 올해의 화두는 무엇이라 보나.

▲ ‘민생(民生)’이다. 촛불정부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부터 적폐청산을 줄곧 말했고, 신년사에서도 적폐청산을 언급했다. 올해는 뭔가 가시적으로 국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과거청산은 ‘민생’이다. 아무리 과거청산을 잘했어도 민생정치를 잘못하면 민심을 잃을 수 있다. 민심이 악화되면 국민 앞에 정권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다. 지난해는 촛불혁명이라는 사회적 대격변기를 맞아 혼란스러웠지만, 2018년에는 촛불정부가 민생을 아주 잘해서 반민주 적폐세력들이 또 다시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집중해야 한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정부에 대한 민생시험이다. 정권을 빼앗기지 않는 것도 진정한 적폐청산이다.

- 2016년 말에 켜진 촛불,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보는가.

▲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려운 역사에 남을 엄청난 사건이었다. 시민들은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을 ‘무혈탄핵(無血彈劾)’해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과거에 ‘4.19 이승만 하야’ 혁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합법적 방식이 아닌 피를 부른 ‘유혈혁명(流血革命)’이었다. 2017년 촛불혁명은 헌법적 방식으로 대통령을 몰아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촛불시민운동 지도부의 한 핵심인물이 여러 언론인터뷰에 나와 촛불혁명이 한국현대사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혁명이라고 주장한 것을 들었다. 중요성이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사회과학적 표현은 아니다. 박정희의 5.16도 자신들 스스로 혁명이라 불렀다. 우리는 그 사건을 ‘쿠데타’라 부르지만, 혁명은 단지 폼 내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사회과학적으로 깊은 의미가 내포된 단어다.

- 성공한 혁명이라고 보나.

▲ 여기에는 많은 사회적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그런 측면에서 혁명이라 볼 수는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모든 게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다. 4.19혁명도 성공했고, 박근혜를 몰아낸 무혈혁명도 일단은 성공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군사독재를 끝장내지 못한 채, 노태우 군부의 승리로 이어지는 반쪽 운동에 그치고 말았다. 반면에 이번 촛불항쟁은 문재인 대통령이 승리한 완전혁명이었다. 촛불정부에게 요구한 적폐청산도 진행 중이다. 공약했던 6가지 청산내용은 사드배치 문제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재조사, 국정역사교과서 중단에 이어 고장 난 대의민주주의 개혁과 새로운 공화국 건설이다. 그런데 선거연령 인하와 선거제도 혁신 등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배치한 것도 그렇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에는 완료와 미완의 양면성이 있다. ‘헬조선’ 문제도 아직 미완이다. 개헌도 ‘데드락’(Dead Lock)에 걸려있다. 물론 현 정부가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고, 최저임금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배운 점도 있다. 그러나 민주화와 민생문제를 확실하게 챙기지 못하면 과거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촛불혁명, 시작은 됐지만 아직 미완이고 진행 중이다.

-촛불혁명을 4.19 혁명, 6월 항쟁 등과 비교해본다면.

▲ 한국현대사에서 혁명은 딱 하나다. 4.19혁명이다. 5.18과 6월 민주화운동은 모두 항쟁이라 부른다. 왜 항쟁인가. 성공하지 못해서일까. 1987년 6월 항쟁은 나름 성공했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다. 혁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근본 변화가 뒤따랐을 때를 말한다. 혁명은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사회혁명은 러시아혁명, 프랑스혁명처럼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다. 정치혁명은 제도자체를 아예 뜯어고치는 것을 뜻한다. 혁명과 항쟁의 중간선상에서 볼 때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낸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항쟁이다. 그런데 핵심은 이게 아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는 ‘87년 체제’로 불리는 ‘불완전한 민주화’의 절름발이 정치체제가 지속돼왔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밑바닥부터 근본 개조 하자는 요구다. 무슨 말이냐면, IMF 경제위기 이후 ‘97년 헬조선 체제’가 들어서면서 양극화된 빈곤사회와 흙수저 사회의 병든 뿌리를 뽑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촛불의 원료다. 그 불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댕겼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줬다.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최고 실력’이라는 말에 일반시민과 청년들이 들고 일어났다. 흙수저 사회에 대한 분노의 대폭발이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있어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월 촛불혁명은 역사에 남을 중요한 항쟁이었다. 하지만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항쟁 규모와 원인, 결과, 주체 측면에서도 아주 다르다. 규모면에서도 6월 항쟁은 500만 명이 참가했고, 11월 촛불혁명은 3배가 넘는 1600만 명 규모로 월등하게 커졌다. 주체세력도 과거에는 어린 학생들이 주축이었지만, 11월 혁명은 성숙한 일반시민이 중심이 됐다. 항쟁배경과 원인을 보면, 1987년 당시는 군사독재정권의 반민주성에 저항한 정치적 민주화 요구가 배경이었다. 반면에 11월 촛불혁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서 야기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적 원인 외에 ‘헬조선’, ‘흙수저 사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가 깔린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불완전한 민주화체제인 1987년 6월 항쟁은 30년이 흐른 2017년에 촛불혁명의 기폭제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6월 항쟁으로 이뤄진 이른바 ‘87체제’에 대한 평가는.

▲ 87년 민주항쟁이 획득한 성적표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다. 군부세력은 사상과 정책, 집단행동을 금지했다. 국가보안법과 복수노조금지, 노조 정치활동금지, 초중고 교원과 공무원의 단결권,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고, 노동단결권, 한․미 간 불평등 조약 협정 등 반민주적 반인권적 반역사적 행태가 자행됐다. 미국의 교활하고 능란한 정치개입으로 급진 좌파 민주세력의 제도권 진출도 철저히 봉쇄당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야당과 군부독재세력 사이에서 맺어진 소위 ‘엘리트 협약’의 산물이다. 이 때문에 살아남은 우익 권위주의 정치권과 좌파 사회주의 세력들이 1987년 이후 반북반공과 숭미사대주의, 성장주의, 지역주의를 무기로 삼아 우리사회를 줄곧 지배해 왔다. 특히 호전적인 북한정권 체제를 안보의 빌미로 삼으면서 자신들의 영속적 안위를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수단을 활용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독재정권하에서 국민들도 경제성장과 물질풍요를 바라는 밑바닥 정서가 농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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