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촛불 혁명으로 이뤄진 2017체제는 어떤가.

▲ 참여정부 이후 10년 간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언론재벌과 함께 대기업과 외국 자본가를 위한 정책들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불완전했지만 민주주의적 외형을 갖춘 정치적 자유와 권리는 침해당했다. 보수우익정권들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어렵게 둥지를 튼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던 남북교류와 기본협력의 틀마저 깨졌다. 그 결과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까지 우리사회는 과거 군부권위주의 시대와 비슷한 암울한 상태로 악화됐다. 2017년 촛불항쟁은 다양한 정치사회세력들이 다양한 불만과 요구를 토해낸 사건이었다. 촛불의 공통적인 초기요구사안은 ‘박근혜 퇴진’이었고, 후반에는 ‘박근혜 탄핵 인용’으로 나타났다. 이런 요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후퇴한 정치적 자유와 권리회복, 여당불통, 대북 적대정책 종식, 남북관계 복원 등 그동안 퇴보됐던 민주주의의 복원이었다. 촛불항쟁 방식도 87년 6월 항쟁에서 보여줬던 ‘호헌철폐 직선제관철’ 구호를 통해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성격이 결집한 민주화운동 세력과 매우 유사하다.

 

- IMF로 촉발된 이른바 ‘97년 신자유주의 체제’는 어떤가.

▲ 87년 6월 항쟁은 박정희의 ‘61년 체제’ 중 정치적 독재를 해체시켰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민주화로 남았다. 미약했지만 국가주도형 반쪽 경제의 틀은 지속됐다. 그러다가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박정희의 ‘61년 체제’가 무너졌고 미국식 시장만능 신자유주의로 대체됐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 ‘97년 체제’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양극화, 저출산, 스펙전쟁, 헬조선이 ‘97년 체제’의 산물이다. 지금 우리는 ‘87체제’가 아닌 ‘97체제’에 살고 있다. ‘87헌법’과 정치체제가 한국정치의 기본 틀로 작용해왔고, 우리사회를 지배해 왔다. ‘87체제’는 ‘97체제’의 부분체제 또는 하위체제다. 다시 말해서 한국사회를 지배한 두개의 축은 87년 헌정체제와 97년 신자유주의 체제다. ‘박정희 신화’는 이 두 개의 체제로 무너졌다. 그런데도 박근혜 ‘국정농단 게이트’를 놓고 아직까지도 박정희 체제와 연관을 짓는 세력이 존재한다. 물론 박정희 유신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근혜의 유신적인 통치 스타일에서 봤듯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유령처럼 일부분이 남아있다.

 

- ‘박근혜 게이트’ 비극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 한국의 주류언론과 기득권, 지식층 세력들이 부패한 정권에 눈을 감았고, ‘박비어천가’(朴飛御天歌)를 부르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97년 IMF 금융위기도 정권 현실 미화에 매달린 경제학자들이 ‘조기경보’를 울리지 않아 일어난 것이다. 자기개혁의 마음을 다지지 않았고 밑으로부터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파국을 향해 가고 있었음에도 경고기능을 방기했다. 그 후유증은 노동시간 세계 1위, 산재사망 1위, 양극화, 노인빈곤, 출산율 최저, 노인소득보장 80위,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OECD 최하위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 발전의 기적이 박정희 때문이라는 신화도 한 원인이다.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뤘다지만, 민주주의는 박정희와 무관하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탄압했지 발전시키지 않았다. 문제는 경제발전이다. 여기서 뉴라이트와 보수세력의 생각이 갈라진다. 보수진영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박정희 개발독재의 결과로 보았고, 부작용도 컸지만 시대적 필연성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뉴라이트는 한술 더 떠서 침체된 한국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면 박정희 식 개발독재모델을 재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뉴라이트의 방식은 현재의 세계경제 환경과 사회변화를 볼 때 맞지 않는다.

 

- 그렇다면 어떤 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 물론 2017년 체제가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퇴보하는 느낌이다. 2017년 대선의 핵심화두가 경제민주화였지만, 오히려 2012년 대선 때보다 후퇴했다. 촛불정신이 실종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사상 최악의 네거티브(흑색선전)가 기승을 부린 선거였다. 뜨거웠던 촛불이지만,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민주주의의 87년 체제를 훨씬 넘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추진동력이나 가능성도 찾기 어려워졌다. IMF가 터진 1997년 이후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신자유주의를 떨쳐내는 탈 흙수저, 탈 헬조선 사회로 전진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에 개헌이 이뤄진다면 87년 헌정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헌정체제가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향후 ‘2018년 체제’ 또는 ‘2019년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개헌 동력이 떨어지는 이유,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 우선 시민사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촛불혁명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급선무였고 개헌을 얘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탄핵 이후에 시민사회가 대선 등 여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개헌론까지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개헌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공화국의 상(像)을 그려서 정치권을 압박했어야 했다. 이것이 전부 소진되면서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렸다. 밀실에서 정치꾼들이 논의하고 시민들은 들러리였다. 광화문 광장의 뜨거운 열기를 통해 개헌까지 가지 못한 시민사회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쇠도 뜨거울 때 망치질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현 정부가 정말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 대국민 정치다. 역대 정부 중에서 국민소통을 제일 잘한다. 사실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다.

 

- 촛불정신도 퇴색된 느낌이다.

▲ 더불어민주당 뿐만 아니라 정의당, 국민의당, 바른정당까지 포함해서 만들어진 것이 촛불혁명이었다. 촛불정신으로 여러 정당들과 연대해 개헌작업을 이끌어 갔어야 했다. 그런 협치가 없었다. 여소야대 구도를 벗어날 유일한 길은 협치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단순히 대국민정치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야당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갔어야 했다. 그동안 인사 등 여러 문제에서 야당과 상충하고 막혔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은 행정부적 시행령 중심이다. 입법부인 국회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만 하고 있다. 국가적 중대한 사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버린다. 개헌과 정치개혁이 그렇다. 야당의 반발도 개혁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최소한 자유한국당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나머지 야권과 결집해 돌파구를 찾는 정치력과 협치가 필요하다. 정치권에 팽배한 이기주의도 발목을 잡는 원인이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청와대로 각계 인사들을 초빙해 밥 먹고 얘기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권력을 나눠야 한다. 촛불정신에 기초한 연정은 없고 과거와 같은 승자패권 독식주의에 빠져 있다. 협치 없이 나 홀로 가면서 야권도 분열되고 여야대결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만일 촛불정신으로 연정을 했다면 안철수 같은 인물은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 현 정부의 노동정책, 어떻게 보나.

▲ 긍정적인 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김-노 정권 때는 한마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 ‘노동 없는 복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복지를 얘기했지만 노동은 배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 사망이 가장 많았던 시기가 노무현 정부 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보다 더 많다. 물론 IMF 등 시기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있었다하더라도 김-노 정부 때 양극화가 가장 심했다. 1997년 당시 IMF 직격탄을 맞은 가난한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찍었다. 10년이 지나 2007년 대선에서도 빈곤층 사람들이 대기업 CEO 출신 이명박을 찍었다.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탈출은 갈수록 불가능해졌다. 김-노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이 ‘박정희 향수’로 돌아섰다. 차라리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2012년 대선에서 ‘유신의 딸’ 박근혜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이런 것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 이 점을 문 대통령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노동존중사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향상, 소득성장 등에서 매우 전향적이고 추진 방향도 옳다. 확연히 전향적이긴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나타난 것을 볼 때 다소 미흡한 면도 없지는 않다.

 

- 문제점도 많이 노출됐다.

▲ 최근에 있었던 정부의 양심수 사면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은 제외됐다. 노동정책의 근간인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노동계의 불만도 크다. 새롭게 하나로 단합된 전교조(전국교직원노조)와 전공노(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노조합법화 불허 등 우려스런 부분들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난제들을 지혜롭게 전향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물론 노동계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있어서 노동계가 오히려 반대하는 측면도 있다.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멘탈리티(Mentality, 정신) 문화가 젊은 층들의 뼈 속까지 박혀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스펙전쟁에서 피 터지는 경쟁을 통해 간신히 정규직이 됐는데 ‘내가 왜 그들을 받아 줘야하나’ 하는 반발의식이 크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자기이기주의다. 노동운동도 사회민주적인 운동 즉, 사회 약자를 끌어안는 운동으로 가야하는데 노동양극화로 제동이 걸렸다. 노동운동을 상당히 적대적으로 보았던 과거 노무현 지지자들과 그들만의 매너리즘 때문에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 간에 새로운 갈등이 불거진 측면도 있었다.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양쪽 모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섬세함과 상당한 지혜가 필요하다.

 

- 요즘 논란이 많은 속칭 ‘문빠’ 현상, 어떻게 보나.

▲ 하나의 정치적 현상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현상으로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 문화와 관련성이 많다. 이것이 어떤 특정한 ‘문빠’나 ‘일베’ 등을 지칭하는 특정한 그룹이 아니라, 전반적 소통들이 양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콘트롤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문빠’라는 것도 사실 그 자체로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담론들이 부정적으로 인터넷에 쌓이고 쌓이면 현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건전한 비판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책방향을 수정하고 반영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건전하고 합리적인 비판까지 무조건 공격하게 될 경우 ‘자폐적 정권’으로 갈 가능성도 상존한다. 좀 더 폭넓고 개방적인 지지문화나 팬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자체 방어적 ‘보호본능’은 이해가 되지만,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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