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길음시장

 

찬바람 쌩쌩. 잠깐이라도 주머니 밖으로 손을 꺼내지 못할 정도다. 따끈한 국물이 당긴다. 포장마차의 어묵국물, 횟집 매운탕, 속 풀이 해장국, 몸을 데워줄 다양한 국밥까지. 후루룩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덜덜 떨리던 몸도 든든해진다.

시장탐방을 위해 검색을 해보던 중 순댓국집이 유명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길음역 인근의 ‘길음시장’이다. 길음시장은 성북구 길음동에 있다. 일대 상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재래시장이다. 시장 정문에서 후문까지 200여 미터 이어져 있다. 주변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들과 경쟁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규모다. 6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지만 길음뉴타운이 들어서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환경개선 프로젝트에 들어갔고 그 결과 지금은 주변의 큰 상가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상품과 먹거리로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시장을 찾았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켜서 시장의 위치를 찾았지만 계속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평소 길을 잘 찾는 편이지만 도무지 시장이 있을 것 같진 않은 주변 환경. 잘 닦인 큰 찻길, 끝도 안 보이는 아파트 숲…. 이곳에 60년도 넘은 재래시장이 있다고?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손수레를 끌고 가신다. 딱 봐도 장을 보러 가시는 듯하다. 졸졸 따라간다. 가게와 가게사이 비좁고 어두운 골목을 통해 나가니 떡하니 시장이 있다. 후문인 듯하다. 시장 입구 양옆으로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포장마차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입구로 들어간다.

입구에서부터 맞이하는 건 안내판. 생과일차 이벤트, ‘장보신 고객님들~~ 길음시장에서 정말 맛있는 생과일차를 타드려요^^’라고 적혀있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이벤트다. 서울시가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지정, 시장별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후문 쪽엔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옷, 신발은 물론이고 한복, 이불, 모자, 속옷도 판다. 시장 중앙으로 주욱 노점상들이 서있는데 해가지면 문을 여는 듯하다. 대체로 한산하다. 파는 옷들 대부분은 연령대가 좀 있는 여성복. 할머니 몇 분만 드문드문 보인다.

작은 장난감 가게 앞, 방앗간의 참새처럼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 한다. 그 옆으론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수선집이 있다. 동네 주민들이 단골로 찾는 곳이다. ‘왕수선’. 가게 이름만 봐도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

골목 끝에 다다르니 좌우로 길이 나뉜다. 규모가 꽤 큰 시장이다. 일단 한적한 좌측 길로 가본다. 걸음을 옮기자마자 보이는 저건, 닭?! 시장 구석에 떡하니 닭 한마리가 보인다. 유유자적한 모습. 어느 집에서 키우는 걸까? 사람들은 닭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지나친다.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발걸음을 옮긴다.

 

 

지나온 골목 바로 옆으로 이어진 골목이다. 채소, 건어물, 생선 등을 판다. 반찬가게도 있다. 가게 문에는 ‘원산지표시 모범업소’ 스티커가 붙어있다.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찬뿐만 아니라 식사도 하고 갈 수 있는 식당을 겸하고 있다. 골목이 한산해 손님은 없어 보였지만 맛집이 틀림없다.

한산한 골목을 나와 손님들로 바글바글한 정문 쪽으로 이동한다. 시장 내부엔 요가센터, 실내골프장, 큰 마트 등 다양한 업종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겸사겸사 장을 보기 때문에 더 왕래가 많아지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큰 마트 옆으로 드디어 길음시장의 주인공(?)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묵, 떡꼬치, 치킨, 닭강정 등, 장을 보다가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가게 안에서 닭강정을 먹는 손님들의 얼굴이 환하다. 분식집에는 시장을 본 뒤 허기를 달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분식집 뒤편으로 실내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실내라고해도 막혀있지 않고 개방돼있어서 가게마다 바람막이용 비닐을 씌워놓았다. 낮부터 한잔 하시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포장마차 반대편으로는 길음시장에서 유명한 순대국밥 가게들이 보인다. 이른바 ‘길음순대마을’이다. 순대국집을 한 장소에 모아놓았다. 4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기도 푸짐하게 넣어줘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단골이 되고 만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국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순대국밥 외에 닭발, 뼈해장국, 꼼장어구이, 돼지껍데기, 코다리찜 등 안주거리도 다양하다.

정문 쪽으로는 만두집, 떡집, 횟집 등이 있다. 회 가격도 저렴하다. 광어 1만5000원, 우럭 1만6000원, 농어 2만원….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녀석들이 싱싱해 보인다.

주변에 뉴타운단지가 들어선 뒤에도 길음시장이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양한 물건들과 이벤트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노력한 덕분이다. 다른 전통 재래시장들도 더 획기적인 노력으로 길음시장처럼 활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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