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습을 했다구요? 그건 반칙이에요”
“예습을 했다구요? 그건 반칙이에요”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1.09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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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 스웨덴이 PISA에서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학교들은 과열된 학습 보다도 자유로운 활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스웨덴 학교들의 야외활동은 가장 중요한 수업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호숫가 마을 마리에프레드(Mariefred). 그곳에 사는 정인옥(가명) 씨는 스웨덴에 정착한 지 이미 5년 됐다. 지난 해 6월 백야가 시작됐을 때정 씨 부부의 초대를 받았다. 저녁을 먹고도 아직 대낮처럼 환한 발코니에서 피카를 하는데 정 씨가 아들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한다.

아들은 처음부터 스웨덴 학교를 다녔다. 정 씨는 걱정이 많았다. 언어도 그렇고, 하지만 염려했던 동양 아이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오히려 교사들은 아이에게 더 많이 신경을 써주었다. 그렇게 걱정은 기우가 돼 1년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아이가 2학년 때 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정 씨를 불렀다. 교사가 대뜸 “아이가 집에서 뭘 합니까? 집에서 어떤 공부를 시키나요?”하고 묻더란다. 정 씨는 특별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배울 것을 예습하는 정도라고. 그랬더니 교사는 “예습이요? 그건 반칙인데요”라며 웃더란다. 왜 아이를 출발선에서 한 발 앞에 세워놓느냐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정 씨는 이내 무슨 이야기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스웨덴 주재원으로 온 강형원 씨의 11살 아들은 축구에 소질이 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축구 시합이 있었다. 경기 중 강 씨의 아들이 덩치 큰 스웨덴 아이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심판인 체육 교사는 호각을 불지 않았다.

강 씨는 체육 교사에게 항의했다. 아까 그 아이는 명백한 파울이었는데 왜 제지를 하지 않은 것이냐고. 체육 교사는 “나는 전문 축구 심판이 아니다. 나는 경기 중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 경기는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한다. 만약 네 아들도 그 아이가 파울을 했다고 생각했다면 나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기가 계속 되는 것을 원했다”고 말했다.

경기를 마친 후 강 씨는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아들은 “아빠, 우리는 그냥 축구를 즐긴 것뿐이야. 그리고 그 아이는 고의로 나에게 파울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 경기가 망친 건 아니잖아”라고 대답했단다. 강 씨는 그 날 두 번 머리가 띵했다고 한다.

 

▲ 스웨덴의 청소년들은 경쟁마저도 자기 결정권으로 이해한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도 벌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부모나 교사의 어떤 강요도 개입되지 않는다. (1. 지난 해 8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코리아 컬처 페스티벌에서 Kpop에 맞춰 춤을 배우고 있는 스웨덴 청소년들. 2. 스톡홀름 중심 쿵스트래드고덴은 자유롭게 친구와 어울리는 청소년들의 모임터다.)

 

‘얀테의 법칙’과 ‘라곰(Lagom. “적당한, 알맞은”이라는 뜻)’이 지배하는 스웨덴의 학교들은 학생끼리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다. 잘 하는 학생을 격려하지만, 못하는 학생을 질책하지 않는다. 시험 성적을 매기기는 하지만 그 성적은 공개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은 알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의 성적은 알 수 없다. 근본적으로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인위적인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것은 비단 학교 성적만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스웨덴 청소년들은 승리에 몰두하지 않는다. 물론 축구든, 아이스하키든 열띤 응원은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경기 결과에 대해서 환희나 아쉬움은 있어도 즐긴 것 자체가 만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부추기거나 강요하지 않는 교육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공부든 운동이든 또는 유치원의 재롱 잔치까지도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력의 대가가 늘 최고의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 때부터 안다.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름다웠다면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스웨덴으로 이주한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스웨덴 학교에 다니는 자기 아이들의 학습 능력 저하를 우려한다. 스웨덴 내부에서도 스웨덴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스웨덴의 학업 성취도는 꽤 낮은 편이다. OECD가 3년에 한 번씩 조사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스웨덴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는 OECD가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회원국은 물론 주요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에 대한 교육 수준을 점수로 평가한다.

가장 최근인 2015년 PISA에서 스웨덴의 3과목 평균 순위는 평개 대상국 73개국 중 25위(읽기 17위, 수학 24위, 과학 28위)였다. 한국이 9위(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1위)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순위다. OECD 회원국만 따져도 35개국 중 18위. 한국은 5위다 스웨덴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스웨덴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놓고 스웨덴 내부에서도 ‘학생들 간의 경쟁 약화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낮게 만든다’는 문제 제기를 한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결국 서로간의 경쟁의식이 약하다보니 더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지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 스톡홀름 전경

 

그러나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며 PISA에서도 늘 최상위권 순위를 기록하는 핀란드의 저명한 교육학자 파시 살베리 교수는 전혀 다른 분석을 한다. 살베리 교수는 “스웨덴은 PISA가 처음 실시된 2000년대 초반보다 최근 학생들 간의 경쟁을 강화시키면서 오히려 순위가 내려간 것”이라고 말한다.

1992년 스웨덴 의회를 통과한 교육정책 개혁안은, 스웨덴 학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시험을 통한 학교 선택권을 강화했다. 3학년과 6학년, 그리고 9학년 때 치른 시험 성적은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스톡홀름의 경우 총 340점 만점에 335점 수준이면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다.

살베리 교수는 이런 스웨덴의 경쟁을 유도하는 교육 개혁이 오히려 PISA 순위 하락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살베리 교수는 “스웨덴이 20여 년 전까지 유지하던 평등의 교육을 포기하고 개인 성과 위주 경쟁의 교육을 선택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PISA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에프레드에 사는 정인옥 씨는 “스웨덴인들 왜 경쟁이 없겠냐?‘고 말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끼리는 누가 수학을 잘하고, 누가 과학을 잘하는 지 다 안단다. 그리고 그 중 라이벌로 여기는 친구를 이기기 위한 자기 노력도 있단다. 하지만 교사나 부모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단다. 경쟁은 있지만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필요에 의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스웨덴을 이루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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