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 강변 여기저기 ① 장구목 요강바위

 

바위에 새겨진 물의 시간, 물의 흔적. 세월과 강물은 서로 힘을 보태어 바위를 움푹움푹 패 놓았다.

그리하여 섬진강 중에서도 장구목은 저만의 아름답고 독특한 자태를 지녔다. 그 강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바위들중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요강바위.

얕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쑥 들어갈 정도로 깊다.

그래서인지 6․25때 이 바위 속에 숨어 있다가 목숨을 건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온다.

박복님(76·순창 동계면 어치리 회룡마을) 할매는 “오강바우가 물이 생전 고만치 있어. 물이 없어도 그만치여. 들어가서 품어내고 걸레로 닦고 봐도 금세 물이 딱 고만치 차있어”라는 말로 그 신묘함을 전한다.

마을 사람들이 각별히 아끼고 영험하게 여기는 이 요강바위는 한때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요강바위는 서울을 다녀왔다. 이 바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92년 길을 내주겠다는 그럴 듯한 호의로 마을 사람들을 속인 도회지의 바위 도둑들이 밤중에 중장비를 동원해 요강바위를 뽑아갔다.

“왼데 사람들이 와서 이장님한테 자기들이 인자 여그 산다고 포크레인으로 질 넓혀서 차도 들오게 해준다고 질을 냈어. 그날 저녁(요강바우 가져간) 동네 사람들이랑 그 사람들이 술을 먹었어. 그거 가져갈라디야 생각도 안힜어. 근디 얼매나 큰 차로 고놈을 실어서 가져갔어.”

박주상(84·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발각된 아름다움이 치러낸 혹독한 사태였다.

서울로 올라간 요강바위의 몸값은 10억원을 웃돌았다고 한다.

졸지에 제 터전에서 뿌리뽑힌 요강바위가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오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오로지 마을강변의 바위를 되찾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순정한 일념으로 바위의 행방을 끈질기게 추적해냈고, 장구목으로 옮겨오는 데 필요한 돈 500만원까지 추렴했다.

“바우가 올 때 마을 사람들 다 나가서 보고 돼야지 잡고 채래놓고 절도 허고.”

요강바위에서 보야야 할 것은 바위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어쩌면 한갖 돌덩이에 바친 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까딱 했으문 못 찾아. 밥도 쌀도 안 나오제만 이녁 동네 보물인게 지 자리다 갖다 놔야제. 그 사람들이 밑짝을 안 갖고 가고 웃짝만 갖고 간 거여. 거그다 도로 갖다 논게 짝이 딱 맞어. 지 짝이 있어야 오강바우가 돼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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