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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건강검진, 여성의 인권 같은 건 없었다

<삶 &> 류승연 류승연 기자lscaletqueen@naver.coml승인2018.01.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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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은 미리미리 받아야 한다. 특히 나라에서 무료로 해주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말 대소동을 벌인 후에야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작년, 남편과 나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대상자라는 우편을 한 통씩 받았다. 만으로 40세 되는 해부터 10년마다 한 번씩 나라에서 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준단다. 오호~ 이런 게 있었다니. 좋네. 우리나라!

2017년 내에만 받으면 된다고 하니 늑장을 피웠다. 원래 그러지 않은가! 중요하지 않은 점심약속 등엔 얼마든지 시간을 내면서 내 몸 돌보기 위해 병원을 가는 건 언제나 가장 마지막 일로 미뤄두곤 한다.

 

▲ 그래픽=정다은 기자 pandaa57@weeklyseoul.net

 

그러다보니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 12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그제야 마음이 급해진 나는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건강검진센터에 전화를 하니 예약은 받지 않는단다. 오전 8시 30분에 오픈하는데 조금 일찍 와서 번호표를 뽑으면 선착순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단다.

8시 5분에 아들을 스쿨버스 태워 보내고 병원에 가면 8시 20분이 될 터였다. 충분히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난 마지막 주 목요일에 남편과 건강검진을 받기로 계획을 세웠다.

목요일이 되었다. 하필 아들이 장염을 동반한 감기에 걸려 학교에 결석을 했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갈 여유가 없다. 9시 넘어 남편을 혼자 병원에 보냈다. 남편이 오전에 먼저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번호표를 뽑아서 오면 내가 오후에 병원을 갈 생각이었다.

남편한테 전화가 온다. “오늘 못 받아! 내 앞에 대기자가 200명이야!” 8시 30분 오픈한 병원에 9시 넘어 도착했더니 이미 번호표가 200번을 훌쩍 넘어가 있더란다. 기다리면 오후 늦게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당일 위 내시경 검사는 이미 마감돼서 받을 수가 없단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누구는 아침 7시부터 와서 번호표를 받았단다. 병원은 우리와 동갑으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단다. 이를 어쩌나. 주변 병원에 모조리 전화를 돌려보는데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들 늑장을 부리다 부랴부랴 건강검진을 받느라 어디나 사람들이 넘쳐난단다.

하는 수 없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2017년의 마지막 평일인 금요일. 남편과 나는 의지를 불태웠다. 누군가 7시부터 와서 번호표를 뽑았다면 우리는 6시부터 가서 대기하리라.

아, 말은 바로 해야지. 나는 집에 있다가 시간 맞춰 나갈 건데 남편은 새벽 6시부터 병원에 보내 번호표를 뽑게 하리라!

다음날 아침. 새벽 5시 30분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린다. 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남편은 양치질만 하고 집을 나섰다. 조금 후 남편한테 걸려온 전화. “1등이야! 번호표 뽑았어!”

이야호!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 법이다. 마지막 날이라는 절실함이 더해졌는지 7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번호표는 50번을 넘어가더란다.

나는 아이들을 봐줄 시어머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1번과 2번 접수표를 획득한 남편의 얼굴은 의기양양하다. 우리는 잔뜩 폼을 잡으며 번호표를 들고 인증사진도 찍었다.

시간이 되어 접수대가 열리고 번호를 부른다. “1번과 2번 나와 주세요.” “네~.” 으쓱한 마음으로 대답을 하고 2017년의 마지막 날 건강검진을 시작.

남편과 나는 검사를 받는 항목이 달랐다. 남자 40세는 기본 검사와 위 내시경 검사만 받은 반면 여자 40세는 기본 검사와 위 내시경, 자궁경부암, 유방암 검사를 모두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남편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검사복으로 환복을 해야 했다. 팬티만 입고 나머지는 싹 벗은 뒤 가운과 치마를 입고 나오라 한다. 이미 병원 안은 사람들로 북새통. 브라마저 뺀 상태로 얇은 가운만 입고 있는 나는 창피하기 그지없지만 시장통보다 더 북적거리는 병원 안에서 여성의 인권 같은 건 따질 겨를도 없다. 여기저기 가운만 입은 여자들이 가슴을 가리고 어색하게 서 있다.

남편은 검사복을 입은 나를 보자마자 헤벌쭉 웃는다. 속옷 안 입었냐며 대놓고 큰 소리로 물어보더니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 가운을 벗기려는 장난도 친다.

어쨌든 문진표 작성 후 검사가 시작됐고 우리는 1번과 2번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모든 검사를 처음으로 했다. 소변을 먼저 받고 피검사를 했으며 치과검진도 했다.

키와 몸무게, 허리둘레도 쟀는데 나는 이때도 인권이 아쉬웠다. 오픈된 공간에서 나의 인권은 전혀 존중받지 못했다. 내 몸무게는 사방에 공개되었으며, 내 몸무게를 보고 남편이 낄낄대는 바람에 사람들의 이목은 더 쏠렸다. 허리둘레도 마찬가지. 너무 갑작스럽게 줄자를 갖다 대는 바람에 미처 배에 힘을 주지도 못했다. 간호사는 아마 내가 임신한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기본검사까지 함께 한 뒤 남편과는 헤어졌다. 남편은 위 내시경을 받으러 가고 나는 내시경 대신 위 조형술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름쯤에 미리미리 왔으면 편하게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맨 정신에 내시경을 받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평소에도 비위가 약해 사소한 것에도 헛구역질을 해대기 때문이다.

위 조형술 사진을 찍는 건 그거대로 또 괴로웠다. 하얀색 페인트 같은 걸쭉한 액체를 한 컵 다 마시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그 전에 먹어야 하는 이상한 가루약이었다. 이 가루약은 물에 닿는 순간 거품이 난다며 입에 털어 넣자마자 곧바로 물을 마서 꿀꺽 삼켜야 한단다.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침도 물이라는 것이었다. 약을 털어놓고 한 번 쉰 다음 물을 마시려 했는데 약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침에 닿으면서 입안 가득 거품이 일기 시작한다.

나는 놀라고 검사관은 더 놀라서 어서 물을 마시라고 다그친다. 물을 마시는데 이미 입안 가득 들어찬 거품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 한다. 검사관은 삼키라고 어서 삼키라고. 나는 거품의 압력을 밀어 넣으며 꿀꺽 꿀꺽 또 꿀꺽.

트림이 나오려 하는데 검사관은 그 트림마저도 삼키라 한다. 그 상태에서 페인트 같은 약을 힘겹게 먹고 엑스레이 찍는 판에 누워 약이 잘 퍼질 수 있도록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다.

쉽게 가려고 선택한 위 조형술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거품의 습격 때문에 애를 먹었다. 입술 가득 흰 액체를 묻히고 나오니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여자들이 치를 떠는 유방암 검사 차례였던 것이다.

유방암 검사는 정말이지 최악이다. 현미경 받침대 같은 투명한 판 위에 가슴 한 쪽을 먼저 올린다. 그러면 간호사가 정육점 고깃덩어리 만지듯 가슴을 잡고 이리저리 늘려서 판에 고정을 시킨다. 고정이 됐다 싶으면 “지이잉~” 소리를 내며 위에서 또 다른 투명판이 내려와 가슴을 납작하게 누른다. 더 이상 납작해질 수 없다 싶을 때까지 계속 누르는데 이 때 느끼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

애를 낳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유방암 검사를 마치고 나오자 마지막으로 자궁경부암 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고통은 거의 없지만 가장 불쾌한 경험인 게 바로 이 자궁경부암 검사다. 사실 산부인과의 경험은 그 어느 것도 불쾌하지 않은 게 없다.

어쨌든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마치고 나니 9시 30분이다. 번호표 1, 2번을 뽑은 덕에 기다리는 시간 없이 한 시간 만에 모든 검진을 마칠 수 있었다. 남편을 찾으러 가니 위 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다. 내시경 담당자가 늦게 온 것인지 아직 시작도 안 했단다. 나는 먼저 집에 가 있겠다고 해 놓고선 병원 앞 분식집으로 향했다. 전날 밤부터 금식을 했던 터라 배가 고팠던 것이다.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남편의 내시경 검사가 끝나기 전에 허겁지겁 먹었다. 급하게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10년 뒤 50세 건강검진 때는 미리미리 와서 대접 받으며 검사를 받으리라. 큰 병원에 가서 미리 받으면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분위기에서 1:1로 안내를 받으며 우아하게 검진을 받을 수 있단다. 50세 때는 꼭 그러고 말리라!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며 나는 그렇게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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