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8.01.1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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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시골살림 이야기>
▲ 초파정 과녁

 

“와따야 이것이가 누구다냐?”
“와따야 참말로 오래간만이다 야.”
“아니 긍게 우리가 시방 은제 보고 인제 보는 것이다냐?”
“은제는 은제냐. 저번 장날 보고 시방 보는 것이제.”
“이잉? 글믄 사흘도 안 됐어라고?”
“아 그런당게.”
“오메 이것이 뭔 일이다냐.”

시끄럽다. 요란하다. 난리가 났다. 웃음소리가 금방 천장이라도 뚫어버릴 것 같다. 무엇이 진담이고 무엇이 농담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경 바보다. 그냥 웃으면 된다.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타박할 일도 아니다. 보면 그냥 내 사람처럼 반갑고 또 반가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어제 보고 오늘 보는데도 한 삼 년 만에 보는 것처럼 너무 반가워서, 그냥 얼싸안고 통통 뛰다가 넘어져서 보는 사람을 죽어라고 웃겨줄 수도 있는 법이다.

 

▲ 보기엔 초라해도

 

고창의 활터 초파정이 새로운 사두를 맞이하는 날이다. 여기서 저기서, 사방에서 손님들이 축하, 축하를 외치며 달려왔다. 농협 조합장 출신 이정희 사두의 취임식 날 쇠주 몇 잔 마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란다. 세월 참 빠르다. 빠르다 못해 쏜 화살 같다.

안 한다, 안 한다 하는 사람을 해라, 해야 한다 하고 회원들이 일제히 우격다짐으로 사두에 앉혔던 것이니, 이정희씨 본인에게는 아마도 쏜 화살 같은 세월이 아니라 거북이 같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감개가 무량키도 하다.

전국 단위의 조직을 가진 단체의 장은 이권이 막대해서 권력과 금력을 동원하는 방식의 맹렬한 선거운동도 서슴없이 자행한다지만, 시골의 작은 모임 수장은 개뿔이나 이권은 무슨 이권, 주머니에 돈이 있건 없건 회원들을 만나면 커피도 사주고 싶고 밥도 사주고 싶고, 등등 돈을 쓰고 싶은 상황이 자꾸만 발생하는 자리이고 보니 가능한 한 피하고자 한다.

 

▲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인

 

활터에 갈 때면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사실 나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가끔 생각을 한다는 건 언어도단에 가깝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그를 생각한다. 생각을 하다 보면 누구인지 알 것 같고, 얼굴도 그냥 멋대로 막 만들어진다. 멋대로 만들어지는 그 얼굴은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아주 흉포한 산적 같기도 하고, 왜구 같기도 하고, 해적 같기도 하다. 또 어떤 날은 시장이나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삼이사 가운데 한 사람 같기도 하고, 다른 어떤 날은 여장을 한 남자가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중국의 기서 산해경 같은 책에나 등장할 법한, 발이 하나에 눈도 하나요 꼬리는 셋, 입은 열다섯이나 되는 신기하고도 괴상한 동물이 사람으로 분장해서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며 사람 행세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누구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누구의 몸을 빌려 태어나서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며 살아온 사람일까. 얼굴도 모르는 그를 생각하며 멋대로 얼굴을 만들어대고 있노라면 그런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맛살을 찡그려 온 지도 벌써 3년을 넘어 4년이 다 되어간다.

 

▲ 이것이 어쩌면 사람다운 삶일지도

 

그 해의 4월, 여기저기 도처에서 꽃들이 피어나려고 야단들이긴 해도 아직은 추운 계절이었다. 사람이 만약에 바닷물에 빠진다면 저체온으로 금방 사지가 마비될 수도 있는 계절이었다. 그런 계절에 여객선 한 척이 바다에서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바람에 부푼 꿈을 안고 수학여행에 나섰던 남녀 고등학생 삼백여 명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창졸간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슬픔에 잠길 여유조차 없었다. 슬픔도 넋이 있어야 하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알았다. 넋을 잃고 헤매는 자식 잃은 부모들 가운데 김영오라는 이름을 쓰는 남자가 있었다. 딸을 잃은 그는 그동안 딸과 함께 살지를 못하고 헤어져 있었던 까닭에 그 슬픔과 한스러움이 누구보다 크고 깊었다. 그래서 아마 기자들의 눈에 두드러져 보였던 모양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부짖는 김영오씨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던 날 온 나라가 다시 슬픔에 잠겼고, 충격에 빠졌다. 세월호가 침몰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아 슬프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는가, 하는 정도였지만, 울부짖는 김영오씨의 모습을 보고 난 다음에는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든 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았다.

 

▲ 신임과 전임 사두

 

그때 이상한 이야기 하나가 인터넷 댓글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니, 그게 바로 국궁이었다. 김영오씨가 국궁 즉 활 쏘는 취미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딸내미를 하나도 사랑하지 않고, 아내 또한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까지 한 남자가 국궁은 사랑해서 초단까지 따놓고 있다는 것, 그런 남자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울부짖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증스런 쇼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국궁에 대해 자상스런(?) 설명까지 해놓고 있었다. 국궁이란 기본적으로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 고로 김영오씨는 귀족이거나 귀족적인 취미를 사랑하는 파렴치한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논리는 성동격서 식이어서 너무나 엉뚱하고 황당한 까닭에 곧바로 역풍을 맞고 주춤거리며 묻어져 가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위가 흔들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추종자들에 의해 꾸준히 전파되었다.

이러한 소동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 하나가 있으니, 그게 바로 활이었다. 옛날 옛적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던 활이 지금도 있다는 것, 활을 쏘는 활터가 따로 있고, 그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도처에 꽤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새롭게 알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의 관념을 갖게 되었다. 활은 기본적으로 귀족의 취미여서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했으니 서민들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 신임 사두와 총무의 밀당
▲ 신임 사두 주관의 대책회의

 

당시만 해도 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도 역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얼핏 했었다. 활 쏘는 취미가 그렇게도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그 못된 자는 활에 대한 사실관계마저 엄청나게 왜곡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활 취미는 스키 취미보다 훨씬 돈이 덜 들고, 스케이트를 취미로 하는 것보다도 돈이 덜 든다. 활과 화살을 구입할 때 돈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고급진 배드민턴 라켓 한 세트 가격에도 못 미친다.

회비만 해도 그렇다. 도시의 활터는 사람도 많고 관리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회비도 좀 더 높겠지만, 내가 다니는 시골의 활터 초파정은 월 회비가 일금 2만원이다. 그렇다고 그 2만원이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활터에 나갈 때마다 마시는 한두 잔의 커피, 가끔 모여앉아서 마시는 소주 몇 잔 값에도 못 미친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술 생각이 나는 법이다. 어떤 날 어떤 상황에서는 아주 간절하게 술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 활터에서는 편사라고 해서 몇 명씩 편을 갈라 활쏘기 내기를 한다. 진 편이 돈을 내고, 이긴 편이 술을 사 와서 함께 마시는 것이다. 그래도 돈이 모자랄 때는 다소 여유가 있는 회원이 내가 산다, 하기도 하고, 현재의 사두가 돈을 보태기도 하고, 전임 사두였던 고문이 얼마를 보태기도 한다.

 

▲ 군수도 찾아와주고

 

그런 재미도 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농사일이 한창인 농번기에는 꿈도 꾸기 어렵다. 도시의 활터는 사람이 많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중성시라지만 시골의 활터는 겨울이 한철이다. 한철이라 해봐야 십여 명 정도 모이면 많이 모인 편이긴 하지만, 하루에 두세 명, 혹은 네다섯 명 정도 잠깐 들렀다가 얼른 다시 논밭으로 떠나버리기 일쑤인 농번기에 비하면 그나마 성황을 이루었다 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요즘 겨울의 시골 풍경은 춥고, 쓸쓸하고, 외롭다 못해 어느 순간 그냥 악, 악 소리가 도처에서 나올 것만 같다. 날씨가 추워서 추운 것만도 아니고,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서 쓸쓸한 것만도 아니고, 자식이 없어서 외로운 것만도 아니다. 사람이면서도 사람답게 살아본 게 언제인지 돌아보면 아득해서 춥고, 쓸쓸하고, 외롭고 그래서 그냥 악, 악 소리라도 질러야만 숨을 쉴 것 같다.

겨울날 마을회관 같은데 모이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다가 물에 빠져 징징거리는 등 조용한 날이 없었던 그 시절이 가히 사람다운 사람들 세상이 아니었겠느냐고. 그리고 또 한 마디 덧붙인다. 마을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산으로 토끼몰이를 나가서 잡아온 토끼며 노루 고기를 늙은이들에게 대접하던 그 시절은 멀리 무슨 천 년이나 백 년 전의 일도 아니고 고작 삼십여 년 전의 일이라고.

 

▲ 누가 뭘 웃겼는지는 몰라도

 

한 마디로 말해서 현재의 삶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어서, 어쩌지 못해 그냥 숨이나 쉬며 사람 행세나 겨우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끔찍한 삶을 타개해보고자 군청에서 제공하는 복지회관 버스를 타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어보기도 하지만,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시골 사람 특유의 성격상 관에서 주관하는 일은 아무래도 숨이 막혀 못하겠다고 그만둬 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다시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며 이놈의 세상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나, 이러나, 하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초파정의 신임 사두 표명섭씨는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의 그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관계 공무원도 아니고, 복지사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줄곧 살아온 까닭에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때로는 김치를 담가 들고, 때로는 연탄을 차에 싣고 찾아가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들려준 눈물 콧물 철철 흐르는 이야기가 그의 몸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 행사가 다 끝난 뒤에

 

표명섭씨는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는 농사꾼일 뿐이지만, 멋쟁이 농사꾼이다. 농사를 직업적으로, 그러니까 돈을 우선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삶의 향미를 느끼는 그런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농사를 하면서 돈을 최우선으로 쳐버린다면, 농사는 부가가치가 거의 없는데도 죽지 못해서 하는 그저그런 힘겨운 노동에 불과할 뿐이지만, 돈이 되거나 말거나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꾸준히,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하루 문득 아하 이것이 이것이로구나,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만나서 아무 쓸 데도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어대다가 뭔가 먹을거리를 찾아서 손잡고 시장거리를 배회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장날이 날마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는 활터 초파정을 하나의 장터

로 개방하고자 하는 야심을 갖고 사두의 자리를 맡았다. 방구석에 틀어 앉아 외로움에 치를 떨 게 아니라 활터 초파정으로 나오시라. 나와서 직접 활을 당겨 살을 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쏜 살이 어디로 어떻게 날아가는가를 보기도 하면서, 그 옛날 자본주의가 사람의 사지를 묶어버리기 전 시절에 우리의 조상들이 누렸던 자유분방한 호연지기를 상상도 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꿈을, 제2의 인생을 꿈꿔보시라, 하는 게 그가 초파정 사두를 맡은 기본 동기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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