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가, 가로막힌 방에서 우짖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가로막힌 방에서 우짖는 그의 목소리가…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8.01.12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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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9회

 

우리는 어떨 때 우리만의 판타지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을까. 어떤 예술 작품을 창작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판타지가 무엇이든 있을 것이다. 무언가 자신의 이성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세계. 그런 세계의 강력한 힘에 끌려가며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그 세계의 벽면에 남기려고 한다. 이상의 시들을 읽으며 누군가는 정신분열, 누군가는 관심의 갈구, 또 누군가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이라고 욕할 수 있겠지만 실은 그가 남긴 시란 결국 그의 거대한 판타지적 세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정신질환의 산물일지 아닐지는 우리가 판단할 바가 아니다. 다만 그를 끌어들인 그 세계가 우리에게도 역시 몽환적이고 매혹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시인 이상

1. 밤

작난감신부살결에서 이따금 두유내음새가 나기도한다. 머(ㄹ)지아니하여 아기를나으려나보다. 촉불을끄고 나는 작난감신부귀에다대이고 꾸즈람처럼 속삭여본다.
그대는 꼭 갓난아기와 같다」고……
작난감신부는 어둔데도 성을내이고 대답한다.
목장까지 산보 갔다왔답니다」
작난감신부는 낮에 색색이풍경을암송(暗誦)해가지고온것인지도모른다. 내수첩(手帖)처럼 내가슴안에서 따끈따끈하다. 이렇게영양분내를코로맡기만하니까 나는 자꾸 수척해간다.

2. 밤

작난감신부에게 내가 바늘을주면 작난감신부는 아무것이나막 찔른다. 일력, 시집, 시계, 또 내몸 내 경험이들어앉아있음즉한곳.
이것은 작난감신부마음속에가시가돋아있는증거다. 즉 장미꽃처럼……
내 가벼운 무장(武裝)에서 피가좀난다. 나는 이상채기를 고치기 위하여 날만어두면 어둔속에서 싱싱한 밀감을먹는다. 몸에 반지밖에 가지지않은 작난감신부는 어둠을 커-틴열듯하면서 나를 찾는다. 얼른 나는 들킨다. 반지가 살에닿는것을 나는 바늘로잘못알고 아파한다.
촉불을 켜고 작난감신부가 밀감을 찾는다.
나는 아파하지않고 모른체한다.

- I WED A TOY BRIDE, 이상.

 

그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변변찮은 장난감조차도 가지지 못했을 그의 유년시절이다. 그럼에도 그는 훌쩍 자라서 그 장난감을 자신의 세계 정중앙에 가져다 놓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의 판타지 세계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나이를 지겹도록 먹더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 그의 시는 그런 사소한 장난감을 자신의 중대한 신부로 맞이해 들임으로써 시작한다. 판타지 세계의 문이 열린다. 문틈 사이로 비친 그 무한한 배경의 세계에는 오로지 시만이 있다. 이상, 혹은 김해경, 그 낯선 이름 석 자가 자유롭게 섞이는 세계로부터 시는 수많은 인격이 결합되고 흩어져서 그 시인을 담는다.

장난감 신부와 함께하는 두 번의 밤. 시인의 판타지 세계는 오직 밤이라는 장막 뒤에서만 펼쳐진다.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일 것만 같은 이질적 세계는 사실상 현실과 동일한 것이다. 그 어떤 세계도 단 하나, 단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어지러이 뭉쳐졌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이상의 정신세계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장난감 신부는 실제 자신의 신부와도 같고, 그녀와 함께하는 두 번의 밤 역시 이상이 깨어있는 두 번의 밤과 같다. 이상은 깨지 않으려고, 아파하지 않고 모른 체할 뿐이다. 눈을 뜨면 안 된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 역시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나는 24세. 어머니는 바로 이 낫세에 나를 낳은 것이다. 성(聖)세바스티앙과 같이 아름다운 동생 로자룩셈부르크의 목상을 닮은 막내누이 · 어머니는 우리들 3인에게 잉태 분만의 고락을 말해 주었다. 나는 3인을 대표하여 ?드디어-
어머니 우린 좀더 형제가 있었음 싶었답니다
-드디어 어머니는 동생 버금으로 잉태하자 6개월로서 유산한 전말(顚末)을 고했다.
그녀석은 사내댔는데 올해는 19(어머니의 한숨)
3인은 서로들 아알지 못하는 형제의 환영을 그려보았다. 이만큼이나 컸지-하고 형용하는 어머니의 팔목과 주먹은 수척하여 있다. 두 번씩이나 각혈을 한 내가 냉청(冷淸)을 극(極)하고 있는 가족을 위하여 빨리 안해를 맞아야겠다고 초조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24세 나도 어머니가 나를 낳으드키 무엇인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 육친의 장(章), 이상.

 

그가 현실의 경계와 자신의 판타지적 세계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장이 곧 육친의 장이다. 이상은 자신의 친족, 가족을 만날 때면 끔찍한 악몽을 꾸고 만다. 어머니와 누이, 그 외에도 그를 길러준 백부 내외와 그가 맞이해야 했던 아내. 그 인물들이 모두 서로 뒤섞여 그의 꿈 속에 나타나면, 그는 더 깊숙이 자신의 판타지 안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만다. 어머니의 한숨은 그럴 때 터져 나오는 것이다. 유산한 동생보다도 못할 24세의 나는 그 한숨 뒤로 몸을 숨긴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들은 판타지의 문을 넘지 못한다. 이상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 발을 디딜까. 어느 곳이 더 자신에게 맞을까.

이 중대한 갈등 속에서 그가 강구해낸 해결책은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의 것만 같다. 이로써 그는 그가 써 내려간 육친의 장과는 멀어져간다. 그의 피붙이, 혈육, 가족과 친척 모두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이상은 떨어진다. 이상이 시를 쓰면 쓸수록 더욱 그러했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세계는 더 견고해졌고 판타지스러워졌다. 현실에서는 결코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을, 그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는 ‘시도’라는 글자 자체를 부수고 자신의 시와 글을 쑤셔 넣는다. 그를 현실의 기둥에 매어 놓으려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구멍과 귓구멍 속에 그 모든 글들을 잔인하게끔 쑤셔 넣는다. 이것은 모던이 아니라고. 이것은 결코 모던일 수가 없다고. 울부짖는 이상의 소리가 들리는가.

판타지로 가로막힌 자신의 방에서 우짖는 그의 목소리를. 모던은 없다. 이상은 말했고 우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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