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우리 옛돌 박물관-1회 / 김혜영

어렸을 때 현장학습으로 박물관에 가면, 늘 줄의 맨 뒤를 차지했다. 친구들이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을 훑을 때, 혼자서 천천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동시에, 상세하게 적힌 설명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상상력과 지식은 박물관에서 습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청춘이 그렇듯, 학년이 높아질수록 박물관에 방문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눈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의 책과 전자논문을 찾는 습관이 생긴다. 현장의 중요성이나 글 외의 다른 매체를 등한시하고,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자료만 습득하게 된다. 친절한 자료도 좋지만, 온 몸을 사용한 동(動)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박물관에 가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우리 옛돌 박물관’에 간 이유다.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오랜만에 일이 일찍 끝난 어머니와 함께 ‘우리 옛돌 박물관’에 방문했다.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이면서, 어머니가 일하는 곳과 가까운 성북구에 위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렸을 때 풀, 돌, 흙 등으로 소꿉놀이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돌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늘 과학을 제일 싫어해서 암석은 그저 암기하기 싫은 대상일 뿐이었다. 아무런 흥미가 없는 필자와 달리, 어머니는 입구에서부터 눈을 반짝였다. 어머니는 시골집에 있을 법한 항아리, 돌, 풀, 꽃이 있는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깨져서 물이 고인 항아리와 이끼가 낀 돌만 있으면, 어머니의 핸드폰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도 식물 옆에 돌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너무 일상적인 물체라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사실 돌만큼 이상한 물체가 또 있을까. 돌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속담에서나 쓰일 뿐, 내 일상에 밀접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물론 대리석 등 여러 암석이 가공된 것을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문과생인 필자는 돌의 쓸모를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오랜만에 방문한 박물관 치고는 시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첫 전시관인 환수유물관으로 향했다.

환수유물관은 돌에 관한 선입견을 완전히 부수는 곳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돌들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관람객의 길은 굉장히 좁았는데, 우뚝 서 있는 돌들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빛의 밝기나 공간의 크기를 설정하는 것은 전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전시를 구상할 때, 관람객으로 하여금 중압감을 느끼도록 만든 이유를 추측하며 벽에 적힌 설명을 읽었다.

 

 

환수유물관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밀반입되거나, 헐값에 팔려갔던 문인석을 환수하여 전시한 곳이다. 문인석은 능묘를 지키는 돌인데, 국가를 지키던 돌이 돌아온 것과 다름없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그리고 돌의 웅장함과 카리스마를 통해 실추되었던 국민의 자부심을 되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깊은 공간까지 들어가면 안내판이 하나 등장하는데,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문답시가 있었다.

 

돌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
방안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너는 어찌하여 산에 사는 새가
봉황의 무리에 끼어들었는가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는 본래 청산에 사는 학으로
항상 오색구름을 타고 노닐었느니라
어느 날 아침 구름과 안개가 걷히는 바람에
잘못하여 여기 닭 무리 속에 떨어졌노라  
- 사명대사 

 

 

 

1604년, 사명대사가 포로송환을 위한 회담장에서 당시 일본의 실권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주고받은 한시이다. 도쿠가와의 시에서 봉황은 일본이고, 산에 사는 새는 조선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일본이 조선을 무시하는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때, 사명대사는 산에 사는 새, 즉 닭이 본래 학이었다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로 현명하게 대응한다. 이 시는 세종옛돌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및 재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기념식 축사에서 인용되었고, 이를 유의미하게 보아 환수유물관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시를 읽고 나니, 굳건하게 서 있는 문인석이 구름과 안개가 걷혀 떨어졌다가, 다시 청산으로 올라간 학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전시관을 나오니, 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큰 문인석 두 개가 보였다. 입장할 때는 흔한 장식품이라 생각했는데, 박물관을 지키는 정승과 같은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문인석의 팔에 동전 몇 개가 있었다. 누군가 장난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있는 간절한 소망을 위해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외로움과 고통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주요 요소인데, 다시 돌아온 문인석과 동전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분단, 독재정권, 경제위기, 국정농단 등의 굵직한 아픔을 지속적으로 겪었고, 국민들은 이산가족, 철거민, 해고 노동자, 피해자, 유가족의 이름으로 살았다. 이렇게 아픈 삶을 살아갈 때, 무언가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맹목적인 의지는 위험할 수 있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모르는 채 지속되는 삶에는 대단한 위안이고 축복이다.

환수유물관에서 발견한 희망을 되새기며,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2층, 3층에는 어떤 전시관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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