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라고 우기는 2인자, 그는 과연 살리에리일까
1인자라고 우기는 2인자, 그는 과연 살리에리일까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8.01.1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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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기획> ‘막노동꾼’ 이야기-3회: 방영주 씨

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도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늘 낯설고 두렵다. 매일 새벽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현장(건설, 토목, 조경 등) 경험이 있는 일용직들에게도, ‘새로운 현장’은 그 경험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일정 부분 좌절감을 안긴다. 그러니 경험이 일천한 일용직의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용직 노동자와 각을 세우고 있을 노동 현장, 그리고 그것을 조율해야할 용역사무소. 그 복합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돈.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울뚝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자가 이들(현장, 용역사무소, 일용직노동자)과 마주한 시간은 흥미로웠고 풍요로웠고,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이번 회에는 용역사무소 ‘2인자’(현재 1인자)인 ‘살리에리 증후군’ 방영주 씨(가명, 54) 이야기를 풀어봤다. 방 씨는 지난 회 등장인물인 기민수 씨가 사라진 틈을 타 1인자로 급부상한 용역사무소의 뉴 에이스다. 튀는 캐릭터라는 소개 이외에는 특별히 꼬집어 설명할 배경이 없다. 통통 튀는 그의 삶을 두서없이 적어봤다.

 

‘의리’만큼은 1인자

이른 새벽, 노동 현장에 도착하면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방 씨는 항상 자신이 먼저 헌신적으로 나선다. 함께 간 동료들이 담당자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대개의 일용직들은 모른 채 하고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지만, 방 씨는 달려와서 무슨 일이냐며 담당자와 대화를 하고 해결에 나선다. 방 씨가 나서면 담당자는 그저 “다들 열심히 하세요”라며 돌아서고 만다.

방 씨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 하난 똑 부러지게 하기 때문이다. 다소 부실해 보이는 일용직 노동자들. 방 씨의 전우애적 기질은 함께 하는 이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이 고되다 싶으면 그는 현장 담당자에게 추가 임금을 요구한다. 말 그대로 단가를 올리는 셈이다.

“이 현장 일이, 일당 10만원 짜리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알거요. 우리 모두 2만원씩 더 쳐주시오.”

담당자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좋아요. 다들 고생했습니다. 영수증에 2만원씩 더 적어드리리다. 용역사무소 가서 추가로 받으세요.”

 

 

담당자의 다음 말이 이어진다.

“내일도 다 같이 나오시는 거죠?”

방 씨에게 내일도 꼭 나와 달라는 부탁이다. 방 씨의 이런 맹랑함과 화통함은 현장일이 끝나고도 계속된다. 어느 날은 술 한 잔 거하게 취하고 싶다며 용역사무소 소장에게 전화해 명령조로 ‘가불 20만원’을 계좌로 부치라고 한 일도 있다.

“오늘은 술맛이 좋아. 아우들이랑 회나 한 사발 해야겠어.”

소장은 토 달지 않고 입금을 한다. 그 대가는 방 씨가 앞으로 더 뚫어놓아야 할 현장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방 씨가 나가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 현장 담당자는 기자에게 “저는 참 운이 좋아요. 저런 분이랑 일하게 되어서”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에이스의 의미란?

해가 저물면 방 씨에게 “내일도 꼭 나오시라”며 술을 권하는 현장 담당자들도 여럿이다. 문제는 방 씨의 ‘너무 막나가는’ 화통함이다. 술을 따르는 담당자에게 쌍욕을 일삼는 일도 자주 있었다.

“너네들 말이야. 용역사무소에서 나오는 사람들 함부로 대하지마. 일을 잘하든 못하든, 일용직에게 욕하지 말란 말이야. 안그랬다간 내가 다 쓸어버리겠어!”

일용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수사였지만, ‘역갑질’이라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방 씨를 따르던 한 현장 담당자가 방 씨의 ‘박력’에 ‘포기선언’을 하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 격이 이른바 포항 해병대 출신 담당자(지난 회 기사 참조)의 현장이다. 그는 ‘1인자’ 기민수(지난 회 기사 참조) 씨가 사라진 그 자리에 보너스를 개인적으로 챙겨주면서까지 방 씨를 스카우트했지만, 그의 과격한 행동으로 두손 두발 다 드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내가 말이야, 백골부대 수색대 출신이야. 어디서 해병대 따위가 설레발 치냐고! 다 죽었어!”

기 씨와 방 씨 외에는 아무도 가지 않겠다던 그 현장, 그리고 다른 일용직에겐 쌍욕을 일삼고 보이콧하며 기 씨와 방 씨만을 불러달라던 담당자. ‘용역의 무덤’으로 불리던 ‘포항 해병대’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술 취한 방 씨의 불끈 쥔 주먹 앞에 그렇게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용역사무소 소장도 발끈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예요?! 방 씨 당신 아웃이야!” 기자는 오히려 3자 입장에서 수습하기에 이른다.

“아니 왜요? 그래도 방 씨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현장은 방 씨가 오면 엮어서 두세 명 더 데리고 오라잖아요. 그래야 소장님도 돈 벌고요. 아무도 안 간다던, 용역의 무덤인 포항 해병대 현장도 방 씨 때문에 다시 거래를 할 수 있었는데….”

“무슨 개소리에요. 다시 뚫으면 뭐해. 포항과의 관계가 기존보다 더 개판 됐는데. 포항 해병대도 이제 방 씨 무서워서 우리랑 연락 안 해요. 일 아무리 잘해도 기민수 씨나 방 씨는 필요 없어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술 안마시고 현장 가주고, 깽판 안치고 용역사무소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이 제겐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에이스에요.”

 

 

‘살리에리 신드롬’ 질투는 나의 힘, 나의 삶

방 씨에 대한 얘기는 기민수 씨 캐릭터와 비교하면 보다 잘 읽혀질 수 있다. 기 씨와 방 씨의 관계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그것과 비교해도 무방하다. 한 때 방 씨는 모차르트 앞에서 무력했던 2인자 살리에리가 되기라도 한 양 기 씨 앞에서는 현장과 관련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 씨가 없는 장소에서는 늘 자신이 1인자라고 목청을 높였다.

“설비를 할 줄 알면, 막노동의 모든 것을 대충이나마 다 알아. 목수부터 철근까지 말이야.”

방 씨는 설비가 전공인데 몇 해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난해 봄부터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와는 용역사무소 동기뻘인 셈이지만 짧은 기간에 에이스로 부상했다.

“기민수 씨도 설비가 전공이라고 하던데….”

“뭐라? 그 사람이 설비라고? 나보다 일 못하던데!”

“그 사람은 여기 가면 목수되고, 저기 가면 설비되고, 다른 곳 가면 철근 되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닥쳐, 내가 1인자야!”

배관 역시 그의 전공이다. 때론 배관공 출신의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트(노벨상 물리부분 만년 후보자)를 언급하는 일도 있다.

“물리를 모르면 배관을 몰라. 배관은 말이지, 만유인력의 법칙은 기본이고 현대 물리학적 감성이 있어야 가능해.”

“저기 그렇게 어려운 얘기는….”

“뭐가 어려워 임마! 양자물리학도 모르고 막노동을 하려 그랬어!? 그러면 평생 무시당하며 잡부로 남는 거야!”

 

 

그런 그가 어느 날은 기민수 씨와 함께 현장에 투입된 적이 있다. 기자의 차에서 잠깐 새벽잠을 자던 두 사람에게 기자가 은근슬쩍 운을 띄웠더랬다.

“저기, 오늘 용역사무소 에이스 두 분이 가는데, 현장 담당자들이 신나겠어요. 뭐 이런 조합이 있냐며.”

기 씨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남은 세상 덧없다는 듯 침묵하고 있었다. 반면 방 씨는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아… 오늘은 내가 당연히 기 씨 보조 봐야지. 기 씨야말로 우리 사무소 에이스 아니겠어. 나 따위가 무슨 에이스라고.”

일 끝나고 돌아온 오후. 기 씨는 기자에게 “저 인간은 일 할 때나 평상시나 말이 왜 저렇게 많지. 말 많은 사람 치고 일 잘하는 사람 못 봤는데, 그런데 저 인간, 일 하나는 잘 하더라. 인정!”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난 방 씨는 역시나 자신이 최고라고 큰소리 쳤다.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 보조 보는 거야. 내가 일부러 보조 봐줬잖아.”

아무리 일을 잘해도 방 씨 역시 ‘하루살이 인생’ 일용직에 대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방 씨는 ‘용역노조’ 설립을 꿈꾼다. 민주노총에 용역노조 설립을 최초로 건의하겠다며 발품을 팔고 있는 상황. 스스로 용역노조 위원장이 되겠단다. 다만 위원장 선출 투표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의문이다.

“얌마. 노조는 두 명 만으로도 설립 가능하잖아. 내가 위원장 할 테니, 니가 부위원장 하던가, 평노조원이 되던가.”

“후보 공약은 뭔가요?”

“용역사무소의 일용직 10% 수수료에 대한 의문 제기 후 개선, 일용직의 일할 권리 보장, 직영에 버금가는 일용직에 대한 현장의 대우 촉구 등등.”

방 씨가 향후 최초로 용역노조 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용역사무소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상황. 용역사무소 소장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이것들이 지금 돌았나. 구멍가게 같은 용역사무소에서 어디 노조를…. 그동안 잘해줬더니 노조? 노조 만들면 당신들 다 아웃이야!”

다 아웃이라니, 요즘처럼 추운 계절엔 방 씨가 자중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반은 농담 같은 얘기지만 노조에 대한 방 씨의 갈망에는 최소한의 진심은 담겨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파격 행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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