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만큼 꼭대기 올라 누리는 장관 각별하다!
힘든 만큼 꼭대기 올라 누리는 장관 각별하다!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1.16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 강변 여기저기 ②

시객들의 소리 종 소리처럼 메아리
육로정

육로정(六老亭)이라니! 필시 그 뒤에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문인인 초로(楚老) 양운거(1613~1672)가 지었다는 정자.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강호에 들어 자연과 풍류를 즐겼다. 그와 함께 노닐었던 여섯 명이 있었다 해서 이들을 여섯 노선(老仙)이라 불렀다.

정자 앞에는 흐르는 물 가운데 반석이 있어 수십 명이 앉아 놀만하다. 물 흐름이 완만하고 잔잔하여 물줄기가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종호(鐘湖)라고 했다.

“시객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친다”는 뜻으로 양운거가 직접 이름을 짓고 바위에 직접 ‘鐘湖’라 글자를 새겼다.

 

 

배롱꽃 한창일 때 꼭 가 봐야
구암정

배롱꽃 한창일 때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순창 동계면 구미리 만수탄 위에 자리잡은 구암정(龜巖亭).

정자의 정면인 섬진강변에 담장 대신에 배롱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어 더욱 운치 있다.

순창 구미에서 태어난 귀암 양배(楊培)는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아우 돈(墩)과 함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세상을 잊고 살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지금도 만수탄에는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培巖)·돈암(敦巖)이라 부르거나, 둘을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른다.

이들은 우애가 깊어 당시 사람들은 자식을 꾸짖을 때 “양씨 형제를 거울로 삼아라”라고 하였다고 하니, 요샛말로 하면 ‘엄친아’라고 할까.

그를 기리던 지계서원이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후 1901년 후손들이 정자를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용의 처소에서 섬 진강 줄기 조망
용궐산

올려다보면 암벽의 위용이 예사롭지 않은 산. 이름에서부터 끌린다.

용궐(龍闕).

본래 이름이었던 용골(龍骨)산은 “빈약한 메시지를 전달해 지역주민의 진취적 기상을 꺾고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여겨 동계면민과 순창군이 애쓴 끝에 2009년 4월7일자로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에 의거, 용이 거처하는 용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용의 처소로 든다. 이름답게 용에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많다. 용굴도 있다. 굽이굽이 섬진강 줄기를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산. 별동산, 무량산 등 그 아름다움에 비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산들이 이웃해 있다.

산행을 하려면 보통 어치계곡에서 출발해 느진목과 된목을 거쳐 정상(646m)에 올라 장구목으로 내려온다. 얼마나 오르기 힘든 까끔이었으면 이름이 ‘된목’일까. 상대적으로 순탄하달 뿐 ‘느진목’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 치유의 숲

 

힘든 만큼 꼭대기에 올라 누리는 장관은 각별하다. 섬진강의 전모를 만나는 듯 통쾌하고 유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지금 인생의 ‘된목’을 힘겹게 통과해가는 이들에게도 그런 앞날이 기다리고 있길.

정상의 신선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옛적에 용궐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호랑이에게 무량산에 있는 스님에게 서신을 보내서 신선처럼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용궐산에는 ‘치유의 숲’도 조성돼있다. 나무와 풀꽃들이 다양하고, 데크, 탐방로, 명상 쉼터 등이 갖춰져 있다.

 

 

욕심을 경계하라는 거북 꼬리
거북바위

바위 하나에도 굳은 믿음 깃들었다.

거북형상을 한 거북바위는 순창 동계면 귀미리의 풍요와 안녕을 지켜주는 영물로 여겨져 왔다.

귀미(龜尾)라는 이름 자체가 거북의 꼬리라는 뜻이지 않은가. 꼬리 부분이 마을을 향하고 있는 것은 마을의 허한 풍수를 보완하여 마을의 재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한때 마을 앞쪽에 있는 취암사의 스님이 절의 재물이 사라질 것을 걱정해 거북의 꼬리가 절을 향하도록 했으나 바위 스스로 본래 위치로 돌아가자 거북의 머리를 잘라 만수탄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결말을 짐작할 수 있듯, 그 뒤로 그 절은 점차 사세가 기울어 결국 폐사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모두가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 귀미리는 순창 내에서 최고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남원 양씨가 600여 년 동안 삶의 터를 닦아 왔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