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새겨진 저 바퀴자국들…그들에게 겨울은 지뢰밭이다
빙판 위 새겨진 저 바퀴자국들…그들에게 겨울은 지뢰밭이다
  • 공민재 기자
  • 승인 2018.01.17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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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두려운 사람들> ‘배달맨들’

혹한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다.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 위에 반원 형태의 오토바이 바퀴 자국들이 눈에 띤다. 때론 어느 중식집 배달부가 급브레이크를 밟다 쓰러진 흔적도 보인다. 철가방이 쏟아내고 간 시꺼먼 자장면 소스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식집 배달부를 비롯 각종 음식 배달 업무를 담당하는 ‘오토바이 배달맨’들의 겨울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이들에게 겨울 거리는 곧 지뢰밭이다. 늘 영하의 바람과 마주해야 하는 거리의 배달맨들을 만나봤다.

 

 

“이제 의사 다 돼”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10여 년간 중국 음식을 배달해왔다는 서모 씨는 이제 의사가 다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겨울엔 동상 걸리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진단과 처방을 번갈아 하길 벌써 10년이다.

“한 겨울엔 두꺼운 부츠를 신어도 발이 얼얼해요. 신발 안이 습하다보니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있죠. 일 끝나면 잘 씻고 마사지를 해줘야 해요. 로션을 발라도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일이 많아요. 한번 망가지면 겨울 내내 갑니다. 활동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위인데, 발보험이라도 들어야하는지 원.”

겨울이라고 해서 옷을 무조건 많이 껴입는 게 대수는 아니다. 움직임이 둔해지다보면 다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 보면 알겠지만 목이랑 겨드랑이 부위가 가장 시려요.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바람이 파고들죠. 그렇다고 무작정 있는 옷, 없는 옷 다 걸칠 순 없어요. 몸이 둔해져서 운전하는데 문제가 생기거든요.”

 

 

오토바이 위에서만 위험한 게 아니다. 서 씨는 땅이 꽁꽁 언 어느 겨울, 주택에 배달을 갔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눈이 오는 날 주택가 계단이 가장 곤혹스럽죠. 오르다가 미끄러져서 철가방 속 내용물이 뒤죽박죽 될 때도 있어요. 랩에 잘 싸더라도 때론 그릇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깨지기도 하거든요.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죠. 식당 사장이 돈을 달라거나 하진 않지만, 다시 음식을 가져다 줘야 하거든요.”

면요리의 경우 특히 시간이 생명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짜장면이나 짬뽕 같은 면요리는 불어버리죠. 전화 주문이 오면 아예 조금 늦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되도록 면 요리보다 밥 위주로 주문하시라고 미리 말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면을 고집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배달해주면 퍼졌다고 불만들을 얘기하죠.”

같은 지역의 다른 중식집 배달원 주모 씨는 “추가 주문이 가장 짜증스럽다”고 했다. 한 번 배달을 갔는데 그곳에서 추가로 또 주문이 들어오면 짜증이 나고, 이 때문에 사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같은 집에서 연달아 두 번 주문하는 것도 곤혹스러워요. 이미 배달했는데 추가로 더 시키는 경우 있잖아요. 계절과 관계없이 배달하는 사람들에겐 신경질 나는 상황인데, 특히 겨울 빙판길에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죠. 어떤 손님들은 미안해서 다른 곳에 주문하기도 해요. 배달원들이 그릇 수거하러 가서 보면 알거든요. 겉으론 내색 안하지만, 속으론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죠. 앞으로도 쭈욱 그런 마인드로 주문해달라는….”

 

 

거리가 먼 곳은 사절하는 경우도 있다.

“거리가 먼 곳은 아예 배달을 거절하는 일도 잦아요. 단골들의 경우엔 어쩔 수없이 가야 하지만 길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아주 먼 곳에서 처음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사절입니다. 그 쪽 사정 봐줬다가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초행길이라 사고 날 확률이 높죠. 더군다나, 눈이 오거나 하는 날 그렇게 주문하는 곳은 매번 다른 곳에서 시켜먹다가 그 집이 배달이 안된다고 하니까 연락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척 보면 알죠. 근처 가보면 널린 게 중식집인데 굳이 멀리 있는 곳에 시킬 이유가 없죠.”

배달맨들에게 빙판길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는 함께 일하는 젊은 배달맨들에게 늘 주의를 준다고 했다.

“오토바이 사고 많이 납니다. 특히 젊은 애들은 거칠 것 없이 막 달리거든요. ‘(운전에)자신 있다’ 이거죠. 그러다 한 번에 훅 가는 수 있다고 그렇게 주의를 줘도 말 안 듣습니다. 그릇 몇 개 쏟고 무릎 깨져봐야 정신 차리죠. 하긴 저도 소싯적엔 빙판길에서 많이 넘어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안 죽은 게 다행입니다.”

폭설은 매출에도 영향을 준다. 눈이 많이 내릴 땐 아예 며칠간 배달 장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도 많이 내린 날이 있잖아요. 그런 날은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요. 주문 전화는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와요. 다른 곳들은 배달이 안 돼도 중국집만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철가방은 달린다는 선입견이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도저히 배달을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됐어요.”
 

 

“깁스 한 채 걸어서 배달하기도”

올해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 심모 군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한 겨울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성북구 삼선동에 있는 한 분식가게의 배달을 맡은 것이다. 다루기 쉬운 소형 오토바이라 운전하는 법은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는 “부모님은 모른다”고 했다.

“그냥 식당에서 서빙 하는 줄 알고 계세요. 집이 안암동 쪽인데 거기까진 배달을 안가니까 부모님 눈에 띌 일은 없겠죠. 혹시나 알게 되면 난리 나죠.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겁니다. 오토바이만큼은 배우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거든요. 어렸을 적부터 귀에 닳도록 들은 얘깁니다. 실제 오토바이 타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들 주변에서 많이 봐와서 부모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돈 벌 곳이 딱히 없으니.”

언덕에서 내려올 때가 가장 조심스럽다는 심 군은 “언덕길에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주문을 하면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 도로가 얼어붙는 상황에 운전까지 미숙해 넘어진 일도 있다.

“날이 추워 손이 벌벌 떨리거든요. 핸들이 마음대로 조작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마침 땅이 살짝 언 적이 있었는데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죠. 누가 길바닥에 뿌려놓은 물이 살짝 얼었는데,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회전하다가 넘어진 겁니다. 내리막길이었는데 10여 미터 아래로 미끄러졌어요. 다행히 다니던 차가 없었고, 옷을 두껍게 입은 덕에 큰 사고는 면했죠. 옷은 좀 찢어졌지만요.”

 

 

성북구 길음동에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면서 배달까지 직접 하는 김모 씨는 “치킨이 식었다며 반품을 요구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식은 치킨이야 제가 먹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갔던 길을 또 가야하고, 그러다보면 ‘열 받아서’ 사고가 나기도 하죠. 주문이 밀리다보면 치킨이 식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한꺼번에 몇 군데 다니다보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는 집은 식을 수밖에 없습니다. 몇 군데 돌고 가게로 돌아오면 다른 곳에서 주문한 치킨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어요. 제가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 동안 주방에서 만들어 놓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는 식을 수밖에 없죠.”

지난해엔 눈길에 미끄러져 팔에 깁스를 한 적도 있었다.

“한 달 동안 걸어서 배달했어요. 걸었다기 보단 뛰어다녔다고 하는 게 적절하겠네요. 거리가 먼 곳은 아들놈 자전거 태워 보냈죠. 멀다고 배달 안 해버리면 단골 잃는 것은 시간문제거든요. 그렇게 생고생을 한 덕에 다행히 손님이 줄진 않았어요. 단골들은 유지하고 있는 편이죠. 아무튼 겨울이 고비에요.”

 

 

같은 지역에서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주인 이모 씨 역시 겨울이 가장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미끄러져서 철가방이 뒤집히기라도 하면 가게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백반 같은 경우, 반찬들 때문에 뒤죽박죽 돼 버리거든요. 메인 메뉴야 랩에 싸서 그나마 낫지만 나머지 반찬들은 다 섞여버리거든요. 겨울만 되면 항상 있는 일이죠. 다시 만들어서 배달할 수밖에요.”

이 씨는 눈이 와 땅이 얼면 배달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원래 배달 가게가 아니거든요. 요즘 경제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배달까지 나서게 된 거죠. 그래도 배달 손님보단 직접 와서 드시는 분들이 많아요. 눈 온 날 단골들이 배달해달라고 전화하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해요. 다들 이해하시죠. 가장 두려운 건 다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다치기라도 하면 병원비 부담은 물론 몇 달은 배달 접어야 하거든요.”

얼어붙은 도로 위를 달리는 배달맨들의 일상은 이처럼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조급증은 잠시 접어두자. 주문하는 이들의 배려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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