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남편의 어머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어머니다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8.01.19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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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온다. 30대 중반을 살짝 넘긴 나이에 드디어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단다. 나는 축하 인사를 건네고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남편은 어떤 사람? 신혼여행지는 어디? 살 집은 어느 동네? 임신 계획은?

결혼에 대한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 시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시어머니 성격이 언니랑 약간 비슷해요. 카리스마도 있고 좀 강한 편이세요.”

호오~ 나랑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시어머니라. 나는 냅다 얘기한다. 절대로 ‘착한 며느리’가 될 생각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야 모두에게 좋다고.

 

 

대학 때 일이다. 무슨 교양과목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나중에 시집가면 ‘못된 며느리’가 되라고. 잘 보이려고 자신을 숨기고 ‘착한 여자’의 탈을 뒤집어쓰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처음부터 ‘못된 며느리’로 있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부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길이라고.

‘못된 며느리’여야 시댁에서 기대하는 게 없어진다. 처음에는 욕도 좀 먹겠지만 그게 뭐 어떠랴. 착한 며느리였다가 살면서 못되게 변해가는 며느리보단 낫다. 좋은 사람은 어쩌다 한 번 잘못해도 욕을 먹지만, 아예 기대를 안 하던 사람에게는 어쩌다 잘해주는 한 번이 마냥 고맙다. 그 심리를 이용하란 얘기였다.

분명 대학 때 이런 문제로 강의까지 들었던 나였지만 막상 신혼 초 나는 착한 양의 탈을 쓴 며느리처럼 굴었다. 친정엄마한테는 잔뜩 성질만 부리면서 시어머니 앞에선 “네~ 네~” 순종하는 어린 양이 되었고, 언제나 호호호 웃기만 했다. 심지어 기분 나쁜 말을 듣거나 부당한 처사가 있어도 “모든 건 시어머니 뜻대로…”를 실천하며 살았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그 교수님 말 그대로 되었다. 오히려 시어머니와 나 사이의 고부갈등이 더 심화되기만 한 것이다.

며느리도 사람인지라 결혼 초에는 순종하던 이들도 아이를 낳고 본인 살기도 힘들어지다 보면 본성이 드러난다. 성격이 나온다. 그런데 과거에는 본성을, 성격을 숨기고 살았더니 이제 와서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다. 어쩌다 한 번씩 드러나는 며느리의 진짜 모습에 시어머니는 놀라고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관계는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나도 빠지게 된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남편을 존중하고 살라는 얘기였는데 양의 탈을 뒤집어 쓴 시기에는 “네네”하며 그 말도 웃어 넘겼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독박육아에 지쳐가면서 이젠 시어머니가 노래하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타령이 듣기가 싫다. 참다못한 어느 날 소리를 질러버렸다. “어머니,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는 놀라고 당황하고 화가 난다. 시대가 변했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너는 네 딸도 그렇게 가르칠 거냐고 따져 묻는다. 말 나온 김에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그럼요. 당연하죠. 저는 수인이에게 남녀는 평등한 것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가르칠 거예요!”

시어머니는 기가 찬다. 며느리가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것도 보기 싫고, 어디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와 집안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 같다.

“내가 너를 딸처럼 생각했는데 어디…!!!”

그게 문제였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했다는 시어머니. 며느리는 며느리다. 딸이 될 수 없다. 그 지점에서부터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며느리는 며느리여야 한다. 사위가 아들이 아닌 사위인 것처럼 며느리도 손님이어야 한다.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관계가 형성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엄마와 딸처럼 지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한민국을 뒤져보면 그런 가정도 몇 가구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여자라고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말아야 한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엄마다.

내가 그것을 깨닫게 된 건 아이들이 태어나고 1년쯤 되었을 때였다. 아직 쌍둥이 모두 걸음마를 하지 못하는 꼬물이 시절의 일이다. 남편이 새벽까지 술을 먹고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왔다. 쌍둥이 독박육아로 지친 난 잔소리 폭탄을 퍼부어댔고 언성이 높아졌고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남편은 술도 안 깬 상태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는 마누라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고, 결국 나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편이 밀치던 힘이 꽤나 강했던지 나는 뒤로 밀려나버렸는데 하필이면 싱크대에 허리를 부딪쳤다. 당시는 나도 젊고 혈기 왕성하던 시절이다. 이건 명백한 가정폭력이고 이혼 사유라고 방방 뛰었다.

앞집 사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집에 와 달라 했다. 일요일이라 병원이 문을 안 여니 응급실에 가서 허리 치료를 받고 오겠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기록을 남겨 이혼 과정에서 ‘가정폭력의 증거물’로 내밀 심산이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나를 어르고 달랠 줄 알았다. 어쨌거나 허리를 삐끗해 거동도 힘든 몸으로 꼬물거리는 아이를 둘이나 봐야 하는 며느리다. 병원 갔다 올 동안 아이들을 봐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잔뜩 독기가 오른 내 눈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아이들을 봐줄 수 없다며 집으로 가버린다. 나는 아픈 허리 때문에 아이 둘을 혼자서 유모차에 태워 병원까지 갈 수가 없다. 허리를 부여잡고 징징대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 남아 생각했다.

“아~ 시어머니는 결국 시월드구나.”

그것이 계기라도 되었을까? 나는 몇 년 지속해보지도 못한 착한 며느리의 탈을 벗어버렸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 시어머니에게 친정엄마와 같은 보살핌을 기대하면 안 된다. 시어머니에게 우선순위는 자식인 아들이다. 아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며느리는 자신의 적이다.

같은 의미로 며느리도 며느리다. 며느리는 남이 낳은 자식이다. 내가 낳은 자식인 내 딸과는 분명 다르다. 며느리에게 딸과도 같은 살뜰함과 정성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며느리는 자신의 엄마를 챙겨야 할 또 다른 여자의 딸이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생각하고 딸처럼 여기겠다는 위선적인 관계를 벗어나야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한 남자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었을 뿐일 타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서로가 지킬 선을 지키며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갖추게 된다. 친한 손님 정도의 거리.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가 좋다.

그렇게 착한 며느리의 탈을 벗어던지기 시작하면서 과도기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창피해서 일일이 쓰지도 못할 정도다. 다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 따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스펙터클한 일들이 많았다는 정도만 밝히련다.

몇 년에 걸쳐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자 지금은 서로가 안정적이고 편하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앞집에 살기는 하되 서로의 삶에 일체 간섭하지는 않는 그런 관계가 된 것이다.

얼핏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거리감은 오히려 고부 사이의 관계를 더 좋게 만들었다. 앞집에 살아도 매일 보진 않고, 서로가 필요할 땐 도우며, 각자의 살림에 간섭하지 않으니 모두의 마음이 편해진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젠 시어머니가 형님에게 내 흉을 본다고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엔 아이들에게 즉석밥을 먹인다며 시어머니가 형님에게 내 흉을 봤다고 한다. 나는 딸에게 그 말을 전해 듣곤 “그래?”라고 말하고 끝이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선 나라님도 욕하는 법이다. 우리 집에 와서 부엌 선반을 열며 즉석밥을 내다버리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 정도 흉은 얼마든지 봐도 된다. 시어머니도 형님에게 내 욕을 좀 하고 그래야 나에 대한 불만을 풀고 살지. 말로 풀어버려야 내 살림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지.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 중이었다면 화나고 서운했을 일이지만 못된 며느리인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된 것이다.

다음 달이면 아는 동생이 결혼을 한다. 대한민국에 또 한 명의 며느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녀가 못된 며느리가 되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고부관계를 맺길 바란다. 딸처럼… 엄마처럼… 그런 건 오히려 관계를 망친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엄마고, 며느리는 아들의 여자인 걸 ‘인지’하면서 적절한 거리감을 두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정이 들어가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진짜 엄마와 딸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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