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푸는 ‘재계의 저승사자’, 재벌개혁 수술대 오를까
몸 푸는 ‘재계의 저승사자’, 재벌개혁 수술대 오를까
  • 김범석 기자
  • 승인 2018.01.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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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칼날’

재계의 저승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새해 벽두부터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아 마침내 재벌개혁과 적폐청산의 칼을 뽑으려는 분위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년 중점추진 업무로 대기업 집단에 대한 개혁을 꼽았다. 재계에선 일찌감치 2018년이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적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일감몰아주기 조사를 계획에 따라 착실히 추진할 것”이라며 “더욱 철저한 혐의입증과 분석을 통해 경영권을 편법적으로 승계하고 중소기업의 거래기반을 훼손하는 일감몰아주기를 이제는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정위의 수술 작업을 전망해 봤다.

 

 

공정위가 마침내 재벌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개혁이 이뤄지려면 여러 수단이 필요하다”며 “공정위의 사전적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타부처와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방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또 새해 계획으로 중소업체의 혁신성장을 위한 공정경제 기반 확충, 각 분야에 경쟁원리를 뿌리내려 중장기적 성장잠재력 육성, 사건처리 투명화 및 공정성 제고 등을 새해 중점 목표로 선포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연초부터 공정위의 행보는 바쁘다. 핵심 추진과제로 꼽은 ‘재벌개혁’ 제재가 시작된 것이다. 얼마 전 공정위는 총수 2세가 지분 70%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편법 승계를 도운 하이트진로와 소속사 등에 총 과징금 107억원을 부과했다.

하이트진로를 비롯 사건의 중심인 총수 2세 박태영 하이트진로 경영전략본부장과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 김창규 하이트진로 상무를 검찰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검찰 고발 건수’ 증가

공정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박 본부장이 지분의 73%를 인수한 생맥주기기 제조사 서영이앤티를 계열편입한 이후 과장 2명을 파견하고 급여 일부를 대신 지급했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박 본부장의 지배력확대를 꾀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현장조사를 마무리한 하림, 효성 등으로 이어질 경우 그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제재는 김 위원장이 취임 이후 강조했던 재벌개혁과 관련해 이뤄진 첫 번째 가시적인 행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 동안 김 위원장은 “각 그룹의 문제점은 그룹에서 더 잘 알고 있다”며 자정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새해 들어선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올해에는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과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며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공정위는 이미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대기업집단 45개사에 소속된 225곳 회사로부터 총수일가와 계열사간의 내부거래 내역을 제출받아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하이트진로, 하림 등에 대한 움직임으로 볼 때 제재의 첫 신호탄이 시작됐다는데 이견이 없다. 김 위원장 출범 이후 물밑에서 진행된 조사가 하나 둘씩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란 얘기다.

공정위에 따르면 새해가 시작된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 건수는 총 5건에 이른다.

‘도로공사 발주 도로유지보수공사 입찰담합건’, ‘일본 강구 제조사 가격담합건’, ‘서울시 상수도 GIS DB 입찰담합건’, '하이트진로 총수2세 일감몰아주기건‘, ’아파트 재도장․방수공사 입찰담합건‘ 이다.

검찰에 고발 조치된 법인 수는 모두 31곳에 이른다. 대표이사 등 개인의 경우 8명이 검찰에 고발 조치됐다. 이 같은 움직임 자체가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르다. 검찰 고발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 한 것도 없었다.

공정위의 검찰 고발은 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 6월 14일부터 약 2개여월간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검찰 고발건수는 21건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이뤄진 검찰고발 58건 중 절반 가까이가 두 달 사이에 이뤄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김 위원장이 이미지에 비해 온건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온도차가 느껴진다. 재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의 고발 건수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공정한 시장질서 구현과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올해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오명을 썼던 공정위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한편에선 이런 흐름에 대해 폐지 여부를 논의 중인 전속고발제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을 위반한 기업들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말한다. 공정위는 기업활동 위축을 이유로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속고발제 유지가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공정위가 올 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란 전망도 이와 관련이 깊다.

더구나 공정위는 올해 세계적인 회사 퀄컴과 세기의 재판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퀄컴은 공정위로부터 1조 3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을 부과받게 됐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우리 경제를 ‘허리가 얇은 샴페인잔’과 ‘온탕 속 개구리’로 비유했다. 그는 “기업인들이 열심히 노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샴페인 잔처럼 경제의 중간 허리 역할을 감당해야 할 중견․중소기업이 취약해 우리 경제가 너무 부실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당장 죽지 않는다고 온탕 속에 계속 있는 개구리는 결국 죽는다”며 “온탕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의 올해 활동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내부 인사들의 ‘세대교체’도 한 요인이다. 특히 공정위 부위원장으로 돌아온 지철호 부위원장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과거 공정위에서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대립각을 세워온 강성 인물로 분류된다.

김 위원장도 “뚝심있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분”이라며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물려드리고 저는 부드러운 위원장으로 이미지를 쇄신할까 한다”고 치켜세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는 기업들의 ‘셀프개혁’에 무게 중심을 뒀다. 하지만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적지 않다. 때문에 올 상반기 대대적인 수술 작업을 진행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몰려 있는 3월 안으로 눈에 띄는 개혁 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동안 축적해둔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연초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공정위가 ‘재벌개혁’의 청사진을 어떻게 구체화시킬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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