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거리가 다시 다발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욕지거리가 다시 다발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8.01.25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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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헌 집 두고 새 집을 지으며-세 번째

머리통으로 돌 벽을 들이받고 말았다. 돌이 떨어져서 나를 때린 게 아니라 내가 돌한테 달려가서 얻어터진 것이다. 퍽, 소리가 3미터쯤 떨어져 있는 그녀의 귀에도 크게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거의 짓이겨질 정도로 심하게 찧었다. 지구상에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집을 짓는답시고 자발을 떨어대다가 굴러 떨어진 돌에 발등을 찧거나 허벅지를 얻어맞은 경우야 무수하게 많았지만, 머리통을 찧고 피를 흘려보기는 처음이다.

자꾸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이 쫓겨서 앞뒤 좌우 분간을 못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은 중노동을 하지 말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다는 생각도 없이 어긴 채로 열중하고 있었다. 어쨌든 돌아서서 성큼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었다. 돌아서면 바로 앞에 내 자신이 쌓아올린 거대한 돌 벽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퍽, 부딪히고 말았다.

 

▲ 어느 하루 허벌나게 고생하는 나의 그녀

 

“세상에, 나 같으면 욕이 바가지로 나왔을 텐데.”

그녀는 저걸 어째, 아프겠다, 등등 우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다가는 문득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렇게도 요란한 부딪힘을 당했는데도 내 입에서 그 흔한 ‘에이 씨’ 소리 한 마디 안 나왔다. 그저 순한 아이처럼 “아이고 아파라”, “오매 죽겠네” 등등 그런 상투적인 소리나 울먹이는 식으로 되풀이 중얼거리며 머리카락 사이로 흐르는 끈적한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확인해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야아 이거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내 입에서 욕지거리가 한 마디도 안 나왔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이제 아픔조차 잊고 있었다. 내 입에서 욕 한 마디 안 나온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이거다 하고 지목할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그냥 신기한 일이네 거, 정말로 신기해, 어쩌고 그렇게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가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난 뒤에, 이번에는 사다리가 주룩 미끄러지는 바람에 내 몸이 돌무더기 위로 추락하는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최신식 알루미늄 사다리 육 단짜리 하나만 샀더라면 그런 횡액은 당연히 안 당했을 것이다. 안전이 보장된 사다리를 사는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집짓기를 완료하고 나면 달리 쓸 데도 없는 사다리를 굳이 살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서 내 손으로 사다리를 직접 만들었더랬다. 팔뚝만한 굵기의 대나무를 베어서 만든 사다리는 사실 알루미늄 못지않게 가볍고 튼튼해서 나는 그것의 안전성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다만 하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는 했다.

대나무는 표면이 미끄러워서 제대로 잘 고정하지 않으면 좌우로 미끌, 미끌, 조금씩 움직이다가 장애물이 없으면 그대로 쭈욱, 썰매를 타듯이 과속으로 달아나버릴 위험이 있었다. 나는 사다리를 만들 당시에 이미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작업 중에는 당연히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주문을 끊임없이 외우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정신머리에 무슨 귀신이 들어와 있었던 것인지, 주문도 뭣도 없이 그냥 성큼성큼 올라가서 위치가 잘못 잡힌 돌 하나를 망치로 탁탁 쳐서 빼 내려고 용을 쓰는 참인데 이놈의 사다리가 예고편도 없이 그냥 옆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 나를 떨어트린 사다리

 

그 바람에 내 몸뚱이는 어어, 할 틈도 없이 사선으로 튕겨 나가면서 거기 어디에 있던 각목 몇 개를 떨어뜨린 다음 떨어지는 각목과 함께 돌무더기 위로 추락해 버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동네의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가 어찌나 격렬하게 들리던지 나는 몸이 아프다는 느낌보다 창피함이 앞섰다. 내가 돌무더기 위로 쏟아진 장면을 동네의 누군가가 발견하게 되면, 그래서 혀 차는 소리라도 내게 된다면 내가 어마어마하게 창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디가 부러졌는가, 아니면 찢어졌는가. 순간적으로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몸부터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니, 그때부터 여기저기 온갖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 왜 그래요?”

화장실에 있던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다 말고 우뚝 서서 눈을 휘둥그레 떴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비명 소리와 함께 약상자를 가지러 간다고 후다닥 뛰었다. 어찌나 요란하게, 어찌나 다급하게 뛰었는지 액자 하나가 그녀의 손에 탁 걸리면서 땅에 떨어지고, 떨어짐과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가 박살이 났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뭐야. 아유 참 내, 뭐야 이게?”

그때 아마 내 몸은 매우 더러워져 있었을 것이다. 먼지와 함께 튕겨 나가서 먼지 속으로 굴러 떨어졌으니 깨끗할 리가 없었다. 바로 그것, 극도로 더러워진 그 모습이 그녀를 놀랍게 하고 당황하게 했을 뿐, 내 몸의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우습게도, 정말로 우습게도 나는 외견상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약상자를 꺼내오긴 했지만 어디에 무슨 약을 발라야 할지 멍해져 버렸다.

 

▲ 내 몸을 통째로 받아낸 돌무더기

 

하지만 나는 아팠다. 어마무시하게 아팠다. 딱히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지목할 수도 없는 아픔이 여기저기 도처에서 꿈틀거렸다. 그랬다. 아픔은 마치 살아 있는 무슨 동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맹독성의 전갈 같은 집게 동물이 떼로 엉켜 붙어서 내 무릎을, 내 팔을, 내 갈비뼈를, 내 복사뼈를 사정없이 물어뜯어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피 한 방울 안 비치니,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영 민망스러운 것이었다. 차라리 피라도 철철 흐를 일이지, 이게 대체 뭐란 말이냐.

아픔은 밤이 되자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그리고 아침에는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이삼 일쯤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지만 내 입에서는 여전히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일어서려고 하면 딱히 어디랄 것도 없이 온갖 부위가 아프고, 앉으려고 하면 또 어디랄 것도 없이 사방이 아프고 쑤셔대는 것이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를 해놓고는 그 소리가 한심해서 다시 아이고,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내 자신을 조금은 기특해 하고 있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무슨 구더기 떼처럼 쏟아져 나오던 욕지거리가 한 마디도 안 나오니 그렇게도 대견하고 신기할 수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아마도 아이고, 소리 한 번에 개와 새끼와 그리고 쌍시옷에 자식이 한 세트로 엮여지는 욕지거리가 열다섯 번씩은 나왔을 텐데, 그런데 그 많은 욕들이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통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어서, 내가 바야흐로 그 어떤 경지에 올라선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내 입은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이후 참 많이도 더러워져 버렸다. 일단 더러워진 입은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 단계, 두 단계, 계속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멀었다는 듯이, 새정치란 이름 석 자를 들고 전라도에 출몰한 안철수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기괴한 정치행태를 접하면서 가히 극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 결국 눈이 쏟아지고 말았다.

 

죽을 듯이 화가 날 때는 바람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충고를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이, 욕은 이제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하루라도 욕을 안 하면 사는 것 같지가 않고,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좋지도 않은 욕을 계속 해대니 더욱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내가 이렇게도 더러운 욕쟁이로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엄습해 올 즈음, 세상에 이게 뭐냐, 기적처럼 박근혜는 감옥으로 가고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내 입에 기생충처럼 붙어 있던 각종 욕지거리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치의 흐름이란 공기와도 같아서, 공기의 질이 안 좋으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하기 마련이다. 전제군주 시대에 홍수나 가뭄이 들면 백성들이 왕을 원망하며 탄핵했다는 역사적 사실과는 그 경우가 약간 다르다 해도, 박근혜 시절에 한 개인이 자신의 생계수단인 굴삭기를 몰고 가서 검찰 청사를 들이받고 기꺼이 구속된 까닭이 뭔지 학술적으로 주밀하게 분석해 내자면 수천 편의 인문사회과학 논문을 참고로 해야겠지만, 정서적으로 간략하게 핵심을 끄집어내기로 하자면 ‘나쁜 대통령을 둔 탓’이라고 금방 누구나 정리해낼 수 있다.

만약에 내가 이명박이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머리통을 돌 벽에 들이받고 피를 흘렸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들먹이며 욕지거리를 다발로 쏟아냈을 것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왜 나쁜 대통령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심지어는 야간작업도...

 

“그들은 사람을 몰라. 알고자 하지도 않아. 사람도 모르면서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그렇게 거짓말을 다발로 쏟아내서 사람들을 수렁으로 처박아버리는 아주 악독한 취미를 가졌어, 그들은.”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이후로 나는 욕지거리와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야말로 순한 양처럼, 내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는 국민이 되어갔다.

혼자서 하는 돌 쌓기 작업은 가만가만 천천히, 조심스럽게 조용히 해야 한다. 시끄럽게 요란하게 하는 돌 쌓기 작업은 돌을 쌓아 올렸다는 그 자체 외에는 얻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조용히, 가만가만 돌 쌓기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별별 것들이 다 보이고, 별별 소리가 다 들리며,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별 희한한 생각이 불쑥 일어나서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백성들의 거친 숨소리와 비명소리가 문득 들리는가 하면, 구전으로 전해지는 고창의 모양성 축조 당시의 상황이 잘 만든 한 편의 영화처럼 촤르르, 촬촬 유쾌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소꿉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이십 세 미만 청소년 몇 명이 모여서 악당들을 물리칠 방법에 관한 토론으로 날밤을 세우는 장면이 슬쩍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돌 쌓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나의 표정과 행동거지를 관찰할 수 없어서 단언하긴 어렵다 해도, 힘든 노동으로 인한 피로와 짜증기는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피로와 짜증은커녕 물밀 듯이 밀려드는 각종 상상으로 인한 즐거움 때문에 얼굴이 그냥 활짝, 활짝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그림이나 사진 같은 작품으로 완성시켜주면 좋겠다는 엉뚱한 소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 무슨 액자 같은 밤풍경

 

그런데 이건 또 뭔가. 호사다마인가? 그렇게도 참신하게 순해져 가던 내 입이 요즘 들어 다시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원인은 역시 그놈의 정치꾼들에게서 찾아야 했다.

정치란 것이 워낙 잔머리 굴리기 선수들의 경연장이라고는 한다지만, 한반도기도 안 되고 인공기도 안 된다는 안철수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조폭이 생각나기도 하고,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조폭들은 이른바 나와바리라는 것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다른 조폭들은 무조건 바닥을 기어야만 한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돈 되는 기업들을 자기 회사의 계열사로 흡수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있어 소통이나 화합은 자신의 연설을 열심히 경청해주는 것일 뿐 자기 자신이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렇게 상자에 갇힌 벌레들처럼 좁은 세상을 살면 된다. 이것은 내 것, 저것도 내 것,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고, 되든 안 되든 그렇게 선언을 하고, 그렇게 욕심쟁이로서의 삶을 유지하면 된다. 감히 통일 따위를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이 비록 적성국이긴 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법률과 조직과 국기를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국기를 버리고 남한의 국기를 들거나 아무것도 들지 말라는 것은 곧 항복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자유당 사람들이야 원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 관성을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남을 그렇게도 종횡무진 뒤집어놓은 사람의 입에서 그따위 말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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