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이발기계…반쯤은 쥐어뜯기는 머리깎기, 그리고 검정색 운동화
낡은 이발기계…반쯤은 쥐어뜯기는 머리깎기, 그리고 검정색 운동화
  • 김덕희
  • 승인 2018.01.26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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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난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때도 빡빡 머리였다. 머리는 대부분 아버지가 집에서 깎아 주셨다. 오래된 이발기계(당시엔 바리깡이라고 불렸던)를 사용했는데, 이발할 때마다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기계가 오래되다보니 날이 다 뭉개져서 반쯤은 거의 뜯기다시피 한 것이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프다는 소리를 내진 못했다. 그랬다간 바로 아버지가 머리통을 쥐어박곤 했던 것이다.

"사내 자식이 이 정도도 못참아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려고 해!!"

 

 

그래서 생각해낸 게 직접 머리를 깎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신통치 않았다. 직접 이발기계를 이용해 머리를 깎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부엌칼이었다. 부엌칼을 이용해 채 자라기 전의 머리를 밀면 됐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자주 깎아 주어야 했지만 어쨌든 이발기계에 머리를 쥐어 뜯기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지금도 난 면도칼 등을 이용해 머리를 민다. 그때의 습관이다.

초등학교 때 또다른 내 대표적 패션 하나. 그건 바로 검정고무신이었다. 이거야 뭐,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아주 집이 부자인 친구 한둘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바로 책 보따리였다. 이것 역시 검정고무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것이었다. 책 보따리는 어깨에 대각선으로 항상 묶인 채였다. 여학생들은 허리에 맸는데, 뛰어다니고 하다보면 흘러내리는 일이 많아서 남학생들은 대부분 대각선으로 해서 묶고 다녔다.

이런 내 삼색 패션은 학교를 그만둘 무렵까지 지속됐다. 당연히 꿈은 운동화와 어깨에 매는 가방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방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나마 깨끗한 책보따리라도 있으면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운동화를 산 일이 있었다. 물론 순전히 내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었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오거나 해서 용돈이 생기면 하나도 쓰지 않고 전부 모아 두었던 것이다. 때론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내 사정 때문에 아버지가 급식용 빵을 사먹으라고 주었던 돈도 보탬이 됐다. 그냥 굶는 한이 있더라도 운동화를 신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운동화를 살 수 있을만큼의 용돈이 모인 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셨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그동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광혜원 장터에 가셨다. 신발가게가 있었다. 난 신발가게 주인아저씨에게 그동안 모은 돈 450원(당시엔 꽤 큰 돈이었다고 생각된다)을 고스란히 드렸다. 그리고 몇차례 장터에 나올 때마다 눈여겨 봐두었던 운동화를 가리켰다.

어라? 그런데 갑자기 돌변하는 아버지의 태도. 아저씨에게 내가 준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몹시 당황했다. 아버지가 그 돈으로 술을 사드실 거라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다시 나에게 운동화를 고르라고 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정색 스파이크 운동화를 골랐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그 운동화의 가격을 물어보시더니 다시 돈을 치르셨다. 정확하게 운동화 값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돈이 남아서, 그 돈으로 아버지가 막걸리 한 사발을 사드셨는지, 아니면 돈이 모자라서 아버지가 돈을 더 보태신 것인지도….

그날 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운동화를 만지작거렸다. 새운동화에서 나는 냄새가 세상의 그 어떤 꽃향기보다도 좋았다. 싱글벙글, 계속해서 웃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셨다. 난 대답없이 고개만 한껏 끄덕였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운동화는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간질여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채 눈이 떠지기도 전에 손이 머리맡으로 갔을 정도이니….

하지만 바로 운동화를 신지는 못했다. 너무 아까워서였다. 며칠동안은 계속 손에 들고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를 반복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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