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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가는 길, 콜렉티보는 구불구불 위태로운 길을 신나게 달리고…

<연재> 남미여행기-여섯번째 이야기 / 강진수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8.01.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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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후로도 한 번 더 허탕을 치고 나서 세 번째 병원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황열병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병원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쏟아지는 스페인어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스페인어라고는 전혀 모르는 우리가 몸짓 발짓을 해가며 간호사들이 주는 미션을 받아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상관없는 줄에 가서 서기도 하고, 길 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가면서 황열병 접종을 위한 영수증 수령과 비용 지급을 겨우겨우 해나갈 수 있었다.

황열병 접종을 받고 나서가 또 문제다. 접종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데 자꾸 간호사가 웃돈을 내고 국제 증명서를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볼리비아, 즉 같은 스페인어권 국가로 넘어가므로 굳이 국제 증명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간호사와 한참 동안 다투고 나서야 간호사가 알아서 하라는 듯이 우리에게 스페인어로 된 접종 증명서를 건네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미리 접종을 받고 오는 것이었는데. 역시 계획도 없는데다가 부지런하지도 못한 우리는 이런 데서 우리 여행의 난관을 맞이하는구나 싶었다.

 

 

접종 증명서를 받자마자 근처의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리 대사관의 위치도 파악해둔 상태였다.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서류들과 접종 증명서를 소중히 간직한 채 대사관으로 들어섰다. 서류가 잘 준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현지에서 요구하는 것과 다르다거나, 여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극도로 긴장해 있었다. 서류를 꼼꼼히 살피더니 또 다시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무언가 안내하는 대사관 직원. 비자용으로 찍어온 우리 사진이 문제였다. 핸드폰으로 급하게 찍은 것이라 얼굴의 각도와 배경이 알맞지 않았나보다. 직원들은 우리를 친절히 밖으로 안내해서 사진을 다시 찍도록 해주었다.

우리가 비자를 발급받고 있을 때 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대사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보다도 더 철저히 서류를 안 챙겨 오신 분도 있었고, 우왕좌왕 헷갈려하시는 분도 많았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우리는 그들에게 말을 붙여가며 긴장을 풀어드리려 했다. 나름 먼저 왔다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하는 사이 우리의 비자 발급이 모두 끝났다. 대사관을 빠져나오며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가난한 여행자인지라 커피를 마시는 따위의 행위들은 그동안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여행에서 너무나도 거대한 과제를 하나 끝내버린 지금의 시점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괜찮겠지 싶었다.

 

 

커피를 한참동안 마시며 우리는 오래도록 못한 말들을 나눴다. 여행하느라 급급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아직도 흥분으로 가득 찬 마음을 조금 다스릴 수 있었다.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 쫓기듯 급했을까. 조금 더 천천히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담아두어도 좋았을 텐데. 그런 여유도 잠시, 우리는 내일 대망의 마추픽추를 보러 이동해야 한다. 또 다시 거대한 과제가 우리의 여행 한 가운데를 가로막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 과제를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순간보다도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커피를 다 마시고 호스텔 가는 길에 이름 모를 광장의 벤치에 앉아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스텔로 돌아오고 나서도 코카차를 마시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이면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오늘 하루는 잠이 안 올 것만 같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머리 위 쿠스코의 하늘에는 폭죽이 터졌다. 어디서 폭죽놀이를 하는가 보다. 코카차를 마시다가 컵을 들고 달려가 불꽃들을 구경했다. 잠이 안 올 것만 같은 밤, 그래도 내일 아침은 밝을 것이다.

 

12.

아침이 밝았다. 찬 공기를 마시며 급하게 샤워를 하고 짐을 쌌다. 마추픽추로 들고 갈 짐은 소량으로 챙기고, 다른 짐들은 잘 정리해서 호스텔에 맡겨 두어야 한다. 조식 먹을 시간도 없이 급하게 짐들을 정리한 후 호스텔을 나섰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를 데려갈 콜렉티보가 호스텔 밑 광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콜렉티보에 올라타는 손님이었다. 콜렉티보를 타고 6∼7시간을 이동해야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칼리안테스로의 트레킹 시작 지점에 도착한다. 아침의 찬 공기에 콜렉티보 차창에는 서리가 하얗게 꼈다. 꼭 한겨울인 것처럼. 굳이 서리를 손바닥으로 닦아내가며 바깥 풍경을 보았다. 아직 쿠스코, 다른 승객들을 태우려 콜렉티보는 쿠스코 시내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1시간 정도 쿠스코를 순회했을까, 콜렉티보는 드디어 쿠스코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맨 마지막으로 탄 승객은 한국인이었다. 여자 두 분이었는데 우리는 순간적으로 서로가 한국인임을 알아채면서도 어색한 차 속 공기에 말도 못 붙여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형과 나는 조식을 못 먹을 것을 미리 알고 싸놓은 아침을 먹었다. 기껏 해봐야 빵조각에 햄과 치즈였지만 일단 먹어둬야 나중에 트레킹을 하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게다가 7시간 정도 덜컹거리는 콜렉티보를 타고 간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몸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는지라 미리미리 먹을 것을 챙겨먹고 대비를 해놓는 것은 좋은 습관이었다.

 

 

2시간 정도 눈을 붙였을까, 콜렉티보는 조그만 오두막 같은 휴게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의 질은 형편없었고 오히려 차 안에서 먹은 빵조각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테이블에 앉아 처음으로 한국인 두 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미를 여행하고 나면 유럽으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참 멋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용기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여행 중에 찾았을까, 혹은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길 바란다. 그들을 보며 나는 내 여행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여행보다 짧고 보잘 것 없는 내 여행이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내가 생각하듯 그들도 나를 생각해줄까? 그리고 과연 서로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어지러울 때 비로소 식사가 끝났다. 우리는 다시 정해진 자리에 올라탔다. 콜렉티보는 구불구불 위태로운 길을 속도도 늦추지 않고 달려댔다. 앞좌석에 앉은 캐나다 사람들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노래를 틀었다.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였다. 우리는 모두 아무 생각 없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위태롭게도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지금의 여행에 만족하며, 지금의 자리에 깊이 만족하며.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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