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목민심서』는 48권으로 책의 권수도 대단하지만 내용 또한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이른바 공무원의 바이블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방관인 목민관들이 어떻게 적폐를 청산하고 어떻게 행정을 펴야하는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이어서, 그런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내용이 충실하다는 것은 탁상공론으로의 행정지침이 아니라 목민관으로 실제 행정을 수행했던 다산 자신이 직접 행했던 많은 사례가 담겨 있어 그렇게만 실천한다면 훌륭한 목민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값진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1797년 윤 6월2일 36세의 다산은 황해도 곡산도호부사로 발령받아 1799년 4월24일까지 2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최초이자 마지막이던 목민관 생활을 했습니다. 맨 먼저 했던 일은 고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일이 어떤 것인가를 묻고, 답한 내용에 따라 관리들의 탐학한 행위로 인해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주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관례나 읍례(邑例)부터 뜯어고치고, 간악한 아전들의 잘못을 손수 시정하며, 그동안 쌓여있던 모든 폐단을 말끔히 바로 잡아 적폐를 제대로 청산해 버렸습니다.

중앙정부에서 현지의 실정은 모르고 책상에 앉아 지시한 잘못된 왕명이나 황해도의 감영에서 하달된 잘못된 행정명령까지 바르지 못한 것은 보고서나 상소를 통해 모두 수정하게 하는 일에도 정성을 다해서 바로잡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산은 참으로 기록에 충실했던 분이어서 여러 기록을 통해 다산이 목민관 시절에 시행했던 내용은 대부분 기록으로 남아 있고, 『목민심서』에도 곳곳에 실려 있습니다. 『사암선생연보』나 「자찬묘지명」이라는 글에도 목민관 시절의 훌륭한 업적은 대부분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떤 경유 기행문이나 잡문에도 옳고 바르게 처신했던 다산의 행적은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곡산 고을 경치가 아름답던 자하담(紫霞潭)을 관람하고 기록한 「자하담범주기」라는 기행문에 “자하담의 근원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니 굽이굽이마다 경치가 기묘한 절경이다.… 뒷날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하여 황해 관찰사 이의준공에게 대략을 말했더니 공이 얼굴빛을 고치며 ‘올 가을 지방수령 업적평가는 가람산 아래 자하담에서 해야겠소’”라고 말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옳지 않습니다. 수령의 업적평가를 유람지에서 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곳은 너무 외지고 깊은 골짜기여서 관찰사 같은 고관은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만약 그곳에서 일을 보신다면 산을 뚫어 길을 내고 골짜기를 건너질러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니 백성들을 괴롭혀 관찰사를 즐겁게 하는 일은 감히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멍하니 바라보던 이공은 더 이상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민관을 지휘 감독하고 업적을 평가하는 막강한 권력의 관찰사 앞에서 백성들의 괴로움을 막으려던 목민관 다산의 기개는 역시 옳기만 했습니다. 금년은 지방선거의 해인데, 다산 같은 그런 지방관을 뽑는 일이 ‘다산의 해’를 맞는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