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스톡홀름에 첫 발을 디딘 날 김훈석(28. 가명) 씨는 스톡홀름 테러를 겪었다. 지난 해 4월 7일이다.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 티-센트랄렌(T-Cenyralen) 역 주변에서 헤매고 있을 때 테러가 터졌다.

물론 그는 당시 무슨 일인지 몰랐다. 갑자기 사방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다녔다. 거대한 덩치의 경찰이 그를 사납게 밀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피하라는 말 같았다. 그는 모든 교통이 통제된 상태에서 1시간 30분을 걸어서 친구 집에 갈 수 있었다.

 

▲ 스톡홀름 테러 당시 - 지난 해 4월 7일 스톡홀름 테러가 발생했던 올렌스 백화점 부근.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완전 통제된 채 하늘에 경찰 헬기가 체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친구 집에 도착한 후 스웨덴 공영 TV인 SVT 뉴스를 보는 내내 그는 섬뜩했다. 저 처참한 현장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 그리고 영국 런던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그 테러가 자신이 스톡홀름에 도착한 그날 자신의 옆에서 발생한 것이다.

스웨덴의 한 대학의 연구원이 된 남편을 따라 스웨덴에 온 두 아이의 엄마 정희영(32. 가명) 씨. 그는 지난 2016년의 찬란한 여름에 스웨덴 남부에 도착했지만 이내 우울한 11월을 맞았다. 오후 4시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버스 정류장에 거동이 심상치 않은, 노숙인 같은 느낌의 남자와 둘이 서 있었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오후 4시 밖에 안됐는데.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정희영 씨를 보더니 징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놀란 정희영 씨가 그에게서 거리를 두고 떨어졌는데, 이 남자가 갑자기 바지를 벗었다. 그 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정희영 씨는 비명을 지르고 내달려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혹시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나 봤지만 아직 4시밖에 안된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김훈석 씨와 정희영 씨에게 스웨덴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였다. 테러로부터도 취약한 나라이고, 거리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에게는 스웨덴이 안전하지 않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단 한 번의 경험이었을 지라도.

 

▲ 스톡홀름 테러 현장 - 스톡홀름 테러 당시 범행 차량이 충돌한 올렌스 백화점 1층 벽. 사고 직후 추모의 벽이 꾸며졌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이에서 스톡홀름의 치안이 무척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시내 중심가가 아닌 주택가의 후미진 골목이나 지하철 역 주변에는 늘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의 흑인이거나 아랍계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들이 아무 짓을 하지 않아도 위험천만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통계는 다른 말을 한다. 스톡홀름은 세계 각국의 도시 중 안전한 도시 8위다. 지난 해 10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안전한 도시 지수 2017’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 도쿄가 1위, 싱가포르가 2위, 일본 오사카가 3위, 캐나다 토론토가 4위, 호주 멜버른이 5위라고 말하면서.

이때 EIU는 서울이 14위라고 했다. 그것도 이전 조사인 2015년에 비해 10계단이 상승했다고 한다. 2015년에는 24위였던 것이다. 그러니 EIU는 분명히 스톡홀름이 서울보다 꽤 안전하다고 말한 것이다.

스톡홀름은 스페인의 마드리드(12위)나 바르셀로나(13위)보다도 안전하고, 샌프란시스코(15위), 런던(20위), 뉴욕(21위), 워싱턴 D.C(23위), 파리(24위)보다 훨씬 안전하다. 상하이(34위)도 스톡홀름보다 한참 안전하지 못한 도시고, 심지어 방콕(49위)과 마닐라(55위)는 스톡홀름에 비하면 범죄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 우울한 스톡홀름 겨울 - 스웨덴에서는 11월을 죽음의 달이라고 부른다. 급격히 짧아진 태양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때는 지하철역이나 도심의 후미진 곳에서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물론 EIU의 안전한 도시 지수는 치안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안전만 평가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 안전과 보건 안전, 인프라스트럭처 안전과 개인 안전 등 모두 4개 부문에 대해 합산한 점수를 가지고 최종 평가를 한 것이니 치안 문제만 놓고 보면 순위가 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유추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스웨덴에 살고 있는, 특히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스톡홀름이 안전하지 않다’거나 ‘스톡홀름은 테러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낯섦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설령 직접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왠지 스톡홀름이 런던이나 파리, 바르셀로나나 심지어는 방콕보다도 더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스톡홀름이 그들 도시보다 더 낯설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또 개인의 특정 경험의 전이도 이유 중 하나다.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더 오래 남고, 개인 간의 대화를 통한 ‘경험 전이’가 꽤 활발하다는 것이다. 즉, 실제 겪은 나쁜 경험이든, 나쁜 것에 대한 불특정한 불안감이든 대화 속에서 설득력이 강하기 마련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심리가 ‘무조건 조심하고 볼 일’로 과장되기도 한다.

 

▲ 후미진 곳 - 지하철 역 입구나 터널 등의 후미진 곳은 한국인은 물론 스웨덴 사람들도 꺼리기는 한다.

 

스톡홀름 생활이 9개월에 접어든 김훈석 씨는 그 날 이후 간간히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 사고는 있었어도 특별한 사고를 경험 또는 목격한 적이 없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도 보지 못했고, 주말 저녁 술집 앞에서 싸우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지금 그에게 ‘스톡홀름이 테러의 도시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지만, 유럽은 다 조심해야 해’라고 대답한다.

1년을 훌쩍 넘겨 살면서 스웨덴 남부 도시에서 스톡홀름으로 이사를 한 정희영 씨는 아직도 밤거리의 불량해 보이는 남자들이 두렵다. 하지만 그 때 그 이상의 혐오스러운 일을 겪어보지는 못했다. 1년 반이 가까운 시간은 스웨덴을 더 낯설지 않게 해주었고, 남편이 마중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늦은 시간 홀로 귀가하게 해준다.

통계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통계에는 분명한 오류가 존재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관계로 인해 조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톡홀름은 마닐라 보다, 방콕 보다, 상하이와 파리와 런던 보다, 그리고 심지어는 서울보다 안전한 도시다. 그것은 통계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고, 결국 낯설지 않음의 문제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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