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대석 지음/ 글항아리

2018년 2월 이후 한국인의 죽음에선 자기결정권이 커진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가족이 결정해오던 일이 상당 부분 환자 본인에게 넘어오면서 환자와 그 가족의 가치관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그에 따라 부담도 커진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겪게 될 일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30년간 서울대 의대 교수로서 의료 현장에서 무수한 갈등 상황을 겪어온 저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기를 촉구한다. 잘못된 결정과 잘된 결정, 그리고 누구든 확신할 수 없는 애매한 결정들이 현장의 복잡함과 급박함 속에서 펼쳐지며, 거기 얽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해낸다는 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은 사람을 살려내는 곳이자 죽음을 맞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병원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길 원하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6.3퍼센트뿐, 대다수는 집에서 삶을 마무리 짓길 원했다. 나는 내가 죽고자 하는 곳에서 결코 죽지 못하는 게 한국인이 생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리는 경험이다.

이런 흐름은 혹시 선진국의 전형적인 패턴일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은 9.3퍼센트, 영국은 54퍼센트가 병원에서 죽고 나머지는 집이나 호스피스 시설 등에서 편안한 최후를 맞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임종에 다다라서 연명의료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논하고 합의점을 찾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까지 포함한 법안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마감할 시간을 갖는 것임은 여러 사람이 증언해왔다. 따라서 말기 환자의 경우 더 이상 치료로 호전되거나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호스피스 기관으로 옮겨 고통을 덜 받는 가운데 생의 마지막을 꾸미는 것을 바랄 터이다. 하지만 한국은 호스피스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말기로 접어들었다는 병황 통보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연명의료결정법의 가장 큰 관건은 다른 무엇도 아닌 환자의 가치관과 자기결정권 문제다. 환자가 자신의 임종과 관련해 병의 진행 상태를 알고, 연명의료 결정 여부와 완화의료 문제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만 우리의 ‘죽음의 질’은 한 단계 올라설 것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