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막노동꾼 이야기’-4회: 김정한 씨

 

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도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늘 낯설고 두렵다. 매일 새벽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현장(건설, 토목, 조경 등) 경험이 있는 일용직들에게도, ‘새로운 현장’은 그 경험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일정 부분 좌절감을 안긴다. 그러니 경험이 일천한 일용직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용직 노동자와 각을 세우고 있을 노동 현장, 그리고 그것을 조율해야할 용역사무소. 그 복합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돈.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울뚝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자가 이들(현장, 용역사무소, 일용직노동자)과 마주한 시간은 흥미로웠고, 풍요로웠고,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이번 회에는 조금 씁쓸한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기자가 본 막노동꾼들 중 ‘막장 에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정한(가명. 56) 씨다. 누군가가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겁하게 내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착한 심성에 호감을 느꼈고 ‘형-동생’ 할 정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생동감을 이유로 일정 부분 대화체로 서술했다.

 

 

나름 장기수(?)였다는데...

기자가 일을 나선 어느 날 새벽.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김정한 씨다.

“야, 너 오늘 어디 다녀왔어?”

“형님, 지금 새벽 6시인데요.”

“뭐라? 지금 해졌잖아.”

“지금 해 뜨고 있는 중입니다. 일 나가려고요.”

그날 일을 마치고 용역사무소에 일당을 받으러 간 오후. 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야, 너 오늘 어디로 일 나가냐?”

“형님…다녀왔고요, 지금 저녁 6시인데요.”

“뭐라고? 지금 어두운데. 아직 동트기 전이잖아.”

“요즘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잖아요. 해졌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이 저녁이라고? 내가 용역사무소 나가서 확인해봐야겠어.”

집이 사무소 앞인 그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사무소로 나왔다. 소주병을 점퍼에 낀 채로. 그렇다. 그는 알코올 중독의 ‘끝판왕’이다.

“아니 지금 새벽 아니었어?”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 결제를 돕는 용역사무소 소장. 소장의 책상 앞에 노동자들이 줄을 서 있는 풍경. 여기에서도 김 씨는 건들거리며 눈치 없이 나선다. 가뜩이나 일 없는 겨울, 소장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야 사람 많네. 오늘 일 많아? 근데 난 오늘 일 못가. 어제 술도 많이 먹었고 피곤해서 말이지.”

사무소 소장은 허탈감에 빠져 한동안 말이 없다.

“지금 저녁입니다. 다들 일 다녀왔고요. 그리고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김정한 씨 당신은 갈 데도 없으니까요.”

“허허. 요즘 겨울이라 일이 없긴 없나보네.”

기자는 그를 사무소 밖으로 데리고 나가 상황설명을 해준다.

“형님. 정신 좀 차리세요. 지금은 아침이 아니고 저녁이에요. 사무소 온 사람들 일하러 나온 게 아니라 일 끝나고 일당 받으러 온 거고요.”

“아침부터 일당을 준다고? 요즘은 미리 돈 받고 일 나가냐?”

“저녁이라고!”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술을 마셔도 절제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알코올중독 치료 병원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그런 자신이 그렇게 싫다고 했다. 지난해 봄 두 차례 병원에 다녀오더니 정신을 좀 차린 듯했다. 술도 적당히 마시고, 다음날 새벽 멀쩡한 정신으로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름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중독성향이 재발하자 가족들은 그를 다시 강제로 병원으로 끌고 갔다. 개인 통산 최장기 기록 달성. 한 달 동안 병원에 갇혀 있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야 퇴원한 그는 다시는 술에 손대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기자와 함께 열심히 일을 다녔다. 기자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도 그는 안주만 먹었다.

“너 혼자 많이 마셔라. 난 이제 술 입에 대기도 싫다. 한 달 동안 갇혀버리다니…장기수 같은 심정이었다고.”

 

 

한번 동기는 영원한 동기?

어느 여름날 기민수(시리즈 2회에 등장하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용역 1인자) 씨가 김 씨와 기자를 불러 술을 권했다. 기 씨와 김 씨가 친해질 상황이 아니었는데, 기 씨가 김 씨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김 씨에게 유독 궁금한 게 많았는지, 여러 근황을 묻는다.

“정한아. 너 혹시 나 누군지 모르겠니?”

“우리 용역 에이스 기민수 아닙니까.”

“너 나 본적 없니?”

“같이 일하러 다니고 그랬잖아요.”

“그거 말고, 너 작년 그러니까 2016년도에 나 병원에서 못 봤니? 같은 방 썼잖아. 올해 용역사무소 나와서도, 내가 쪽팔려서 일부러 너 아는 척 안 했는데.”

일순 암전과 같은 짙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김 씨가 포문을 열었다.

“아! 아니 그게, 형님이 그 사람이었구나! 기억나요 기억나!”

“내가 그동안, 너를 알아보고도 모른 척 했다. 너 요즘은 병원 안 가냐?”

“어우, 말도 마세요. 끔찍해요. 이제 안 가려고요.”

“아니야, 넌 또 들어갈 거야. 조만간 또 들어가겠다. 나부터 들어가 있을 테니 나중에 보자.”

둘은 2년 전 알코올 병실에서 우애(?)를 다졌던, ‘병원동기’였다. 이런 인연도 있나 싶었다. 때마침 그날 밤은 기 씨가 가슴을 움켜쥔 채 병원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김 씨는 기자에게 어서 기 씨를 배웅하라고 독촉했다. “야, 빨리 택시 태워서 모셔다 드려. 늦으면 큰일 나.”

막노동판에서는 아무와나 함부로 어울리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대부분 과거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현장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을 칼로 찔러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때문에 되도록 가려가며 만나야 한다.

알코올 중독 전적도 그렇지만 김 씨 역시 폭행죄로 1년 가까이 감옥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장애 3급(그는 귀가 거의 안 들린다. 보청기는 필수다)에 영세민 아파트에 살며 갑상선 문제로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폭행죄라니. 용역사무소 인력보유현황에서도 그의 실명은 찾을 수 없다. 장애 때문에 노동을 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그의 동생 명의로 등록돼 있는 상황. 그런 사람이 3대 1로 싸워 3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단다.

“좀 오래전 일이야. 술 마시고 혼자 집에 가는 도중 골목길에서 술 취한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어. 나는 싸움도 못하고, 싸우기도 싫었는데 마구 때리는 거야.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일단 죽기 살기로 주먹을 휘둘렀거든. 정당방위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 현장에는 CCTV가 있었고, 법원 재판정 모니터에서는 김 씨 주연의 활극이 상영되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처럼 벽을 타고 날아차기를 하는 장면도 나왔단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괴력을 발휘한 것. 당연히 법정에선 명백한 증거였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붕붕 날아다니네요. 이러고도 장애인이라고 잡아 뗄 거예요? 당신 정체가 뭐야?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야?”라는 판사의 격앙된 목소리가 재판정을 울렸다.

“판사님, 저 장애인 맞습니다. 여기 확인서도 가지고 왔잖아요. 그리고 그때 술을 많이 먹었고, 저도 목숨에 위협을 느꼈고, 오로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저 역시 이렇게 다쳤잖아요. 그리고 저, 군대도 제대로 못나왔어요. 특수부대라니요. 도시락 들고 다닌 방위라고요.”

“지금 당신 때문에 무려 세 사람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요!”

처음엔 징역 2년에 처해졌지만, 간곡한 읍소 끝에 1년형으로 줄어들었다. 사실 징역 자체가 부당했을 수 있다. 김 씨는 배운 것도, 돈도, ‘빽’도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교도소. 그곳에서의 생활은 끔찍했고 하루하루가 1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간수가 기공반 반장이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대단한 직책인줄 알고 순순히 응했는데, 말이 좋아 반장이지 교도소 생활 끝날 때까지 종이학만 접었단다.

“젠장. 무슨 기공반장이 종이학만 접냐고. 기계나 연장 같은 것들 만져서 기술이나 좀 배우고 출소하려 했더니, 웬걸 종이학만 접으라는 거야. 종이학은 이제 눈감고도 접어. 신물 나.”

 

 

입에 댔다 하면 며칠간은 풍덩

김 씨는 젊은 시절부터 막노동, 공장 생활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기존의 시리즈 등장인물에서처럼 에이스 수준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뭐든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기에 현장에서 말 나오는 일은 없을 정도다. 힘든 일은 자신이 먼저 앞장서 했다. 그렇게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만 유지하면 될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 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살고 나온 이후, 다시는 술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김 씨. 그러나 제철을 만난 ‘11월의 과메기’는 그를 또 다시 망쳐놓았다. 여동생이 포항에서 직접 들고 온 과메기를 김 씨에게 선보인 게 화근이었다. 과메기는 먹어도 술은 마시지 않겠다는 김 씨의 다짐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오빠. 그동안 술 많이 참은 거 알아. 올해 넘어가기 전, 포항 오리지널 과메기 언제 또 먹어보겠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소주 한 병만 허락 하께.”

훈훈했던 가정의 분위기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와장창 깨어지고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잔이나 한 병이나 시작하면 몇날 며칠 쓰러질 때까지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을 여동생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술을 몇 달 참았으니 한두 잔 정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오늘 술은 오늘로 끝이고 다시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 권했을 뿐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대 다시 병원 앞으로!

폭력전과자이지만 김 씨의 마음이 여리고 순수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술만 안마시면 한 없이 착한 사람이지만, 역시 문제는 술이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며칠간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술만 찾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칼을 들이댄 적도 있다. 결국 아내와 동생의 신고로 병원에 잡혀갔다. 그렇게 잔치는 끝났고, 아내와 동생의 원망 어린 눈길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이게 다 당신들이랑 어울려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같이 술 먹는데, 왜 이 사람 혼자 이러고 병원 가야하나요.”

주변에선 “그래도 동기가 곁에 있어 외롭진 않겠다”는 씁쓸한 농담이 오고간다. 김 씨의 막다른 인생. 비록 남의 일일지라도 이런 극단적 상황과 마주할 때면 정말 “인생엔 답이 없구나”라는 옛 명구가 뼈아프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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