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것만이 내 세상’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포스터

한국 영화의 강점은 바로 사람냄새다. 뛰어난 기술력보다는 사람과 사람으로 채워져 공감대를 최대한 끌어낸다. 때문에 시대적 배경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극장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영화들이다. ‘신과 함께(2017년 12월 개봉)’에 이어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살아온 곳도, 잘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도 다른 두 형제를 그린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한때는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을 거머쥔 잘 나가는 복서였지만 지금은 별 볼 일 없고 갈 곳마저 없어진 조하. 그가 17년간 연락도 없이 떨어져 지내던 엄마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가족도, 돌봐주는 이도 없이 평생을 주먹과 맷집, 자존심으로 살아온 조하.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단순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정 깊고 인간적이다. 난생처음 만난 동생 진태가 불편하고 귀찮다고 툴툴대지만, 그러면서도 챙겨주고, 안 보는 척하면서도 신경 써주며, 결정적 순간 진태의 편이 되어주는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한편, 엄마가 세상의 전부이고 게임, 라면, 피아노가 최고로 좋은 진태는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다. 의사소통이 서툴고 사회성도 부족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천재적 재능과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의외의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엄마가 한 달간 집을 비우자 오롯이 단둘이 살게 된 조하와 진태. 점차 서로에게 가까워지면서 불편함이 익숙함으로, 어색함이 친숙함으로, 거부감이 형제애로 변해간다.

뻔한 스토리다.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하고 특별한 것은 없다. 딱히 진한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속해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함, ‘이 부분에서 울면 돼’라는 듯한 흐름이 영화를 꽤나 가볍게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 후 예매율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병헌, 박정민, 윤여정. 이 세 배우들 덕분이다. 이 영화는 이들의연기로 인해 절대 가볍게 평가되어질 수 없다.

‘내부자들’의 정치 깡패, ‘마스터’ 희대의 사기범, ‘남한산성’ 주화파 이조판서까지 매 작품마다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는 완벽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아온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이병헌. 선 굵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벗고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형 조하로 새로운 변신을 선보인다. 조하는 카리스마, 코믹, 감동까지 소화해내는 이병헌의 탁월한 연기가 더해져 볼수록 매력 있는 캐릭터로 완성됐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탈한 느낌을 한껏 살린 헤어와 의상에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로 완성해낸 맛깔 나는 애드리브까지. 누군가 그랬다. 그는 솜털까지 연기하는 배우라고. 그 말이 무색하지 않은 배우가 확실했다. 그는 젓가락질 하나까지 세심하게 연기했다.

그런 이병헌을 긴장하게 하는 배우가 나타났다. 2016년 이준익 감독의 작품 ‘동주’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신인남우상 6관왕을 석권, 충무로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떠오른 박정민이다. 서번트증후군을 갖고 있지만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진태 역을 위해 그는 치열한 준비와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조차 몰랐던 완벽한 피아노 초보였지만 손 대역과 CG 없이 본인이 직접 연주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가장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6개월 동안 하루 5시간씩 매일 연습했다. 손에 얼음 찜질까지 하며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영화에 등장하는 곡들을 대역 없이 직접 연주해냈다. 실제 촬영장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감동해 눈물을 흘린 스태프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연주뿐만 아니라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에 섬세함을 가해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했다. 의상부터 안경, 가방 등 소품들도 직접 챙기며 캐릭터를 완성한 그.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몇 달간 자원봉사까지 다녔다고 한다. 괜히 그가 언론과 대중들의 호평을 받는 게 아니었다.

또 ‘윤식당2’로 사랑받고 있는 대배우 윤여정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변신한 모습을 보여준다. ‘윤식당2’에서 그는 뛰어난 영어실력과 세련된 스타일을 뽐내지만, 영화에선 촌스러운 사투리를 쓰는 아들바보 엄마의 친근한 모습으로 180도 변신한다.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기는 최고의 매력이다. ‘다 된 밥상(배우들)에 숟가락(스토리) 올리기’란 말이 떠오르게 한다.

‘역린’(2014년 개봉) 이후 최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따뜻하고 유쾌한,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자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관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함께 살게 된 세 세람이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남녀노소 불문 따뜻한 가족의 의미를 새삼 상기시켜준다. 정이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가볍게 편안하게 볼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클 수 있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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