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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 했는데, 2만원 씩은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리즈기획> ‘막노동꾼 이야기’-5회: 용역사무소 소장 정운임 씨 최규재 기자lvisconti00@weeklyseoul.netl승인2018.02.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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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도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늘 낯설고 두렵다. 매일 새벽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현장(건설, 토목, 조경 등) 경험이 있는 일용직들에게도, ‘새로운 현장’은 그 경험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일정 부분 좌절감을 안긴다. 그러니 경험이 일천한 일용직의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용직 노동자와 각을 세우고 있을 노동 현장, 그리고 그것을 조율해야할 용역사무소. 그 복합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혼돈.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울뚝불뚝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자가 이들(현장, 용역사무소, 일용직 노동자)과 마주한 시간은 흥미로웠고 풍요로웠고, 한편으로는 참담했다.

이번 회에는 기자가 몸담고 있는 용역사무소 소장 정운임(가명. 45) 씨의 이야기를 풀어봤다. 사무소에서 마주하는 일용직 노동자 사이에서는 정 씨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지만, 대체적으로 타 사무소 소장과 비교하면 인간적이고 깔끔하다는 평가다. ‘칼치기’(막노동 현장의 전문용어. 업계에 정해져 있는 일용직 일당의 10% 수수료 외 그 이상을 소개비 명목으로 몰래 떼어먹는 행위)와는 거리가 있고, 되도록 사무소 노동자들의 일당을 현장을 통해 올리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별별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 집단이다보니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온다. 정 씨를 둘러싼 얘기를 옮겼다.

 

프롤로그

정 씨는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건축학과나 토목학과의 특성상 대학 시절 현장 실습은 필수다. 실습도 실습이지만 정 씨는 25년 전부터 주말과 방학 시즌에 용역사무소를 통해 막노동판을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막노동은 대학생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게 사실이다. 특히 20여년 전 현장은 더 열악했기에 그 때부터 전공을 살려 이를 악물고 근력을 기른 셈이다.

자신도 같은 처지로 현장을 누볐기에 일용직 노동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때문에 기자에게는 “현장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용역사무소에서도 경험자와 무경험자, 현장과의 조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번 시리즈 소개글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가끔 실수로 매치 안 되는 곳에 잘못 보내는 일도 있겠죠. 그래도 봤자 상관없겠지만요.”

가불과 관련한 지적도 이어졌다. 아무에게나 순순히 가불을 해준 적은 없다는 것이다.

“제가 말이죠. 가불을 할 때, 군말 없이 해준 적 없거든요. 남의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요. 제가 그렇게 말랑말랑해 보이나요?”

정 씨는 그동안 자신과 얽힌 일화에 있어선 팩트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며 문제 제기를 해왔다. 이에 기자는 각각 에피소드가 다소 소설 같아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더라도, 큰 줄기 안에서는 진실의 비명소리가 숨겨져 있다고 맞서왔다. 그러면서 사건 기사가 아닌 에세이 형식이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해온 터다. 정 씨 대답은 그저 “우리 조용히 좀 삽시다.”

 

돌발 상황 그리고 소장의 스트레스

사무소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노동자들이 예뻐 보이더라도, 정 씨에게는 고민이 따른다. 정 씨 기준대로라면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에이스’들 중에는 고령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을 현장에 투입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겨울 현장엔 일이 많이 없고, 더구나 고령자들은 멀리하기에.

새벽 용역사무소에 늦게 도착한 기자가 많은 고령자들을 물리치고 현장에 투입된 적도 있다. 나이제한이라는 현장의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그럴 적이면 먼저 온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늦더라도 늘 일을 맡기고 보내준 정 씨를 실망시킨 일도 있다.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는 기자에게, 정오를 향하는 늦은 시간 연락이 와서 현장 투입을 요청한 것.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고령자들 대신 ‘집에서 늦잠 자고 있는 이’를 늦게나마 투입시키려 한 것이다. 기자는 의욕만 앞세워 가겠노라고 했다. 문제는 전날 마신 술이었다. 무책임하게 다시 쓰러져 잠들어버린 것. 현장에선 난리가 났다. 이에 정 씨는 대노했고, 한동안 기자와 담을 쌓았다. “일 없으니까 나오지 마세요.”

기자가 잘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게 옳았다고 여겼다. 아마 그날 현장에 투입되었다면, 컨디션 상 뇌출혈 등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현장에 나가는 기자였지만, 오죽했으면 몸이 고되어서 전화기마저 꺼버렸을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적반하장의 극치를 보여주며 정 씨에게 더 심한 꾸지람을 듣는 일이 발생한다. 사건 발생 며칠 후 부스스하게 사무소에 나타나 분위기 무시한 채 눈치 없이 가불을 요구했기에.

“요즘 일 못나가서 생활비가 없네요. 가불 좀 합시다.”

“이 사람이 지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내가 평상시 같았으면 가불해주는데, 현장 펑크낸 주제에 어디 가불을…. 돌아가세요. 그리고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왜 이렇게 극단적이세요. 내일부터 열심히 나오고 잘 하겠습니다.”

“내일 일요일이니까 나오지 마. 그리고 술 쳐먹지마! 술 냄새나면 이제 아웃이야!”

문제는 이런 일이 기자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 씨의 새치는 나날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리스크 감당에 고뇌만 늘어가고

한번씩 ‘꼬라지’를 내는 정 씨지만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아니다. 악덕 기업주는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정 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래서 때론 술에 찌들어 있는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거리가 많고 새벽 사무소가 인산인해를 이루더라도 술 취한 이들에겐 가차 없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스스로 술 때문에 일을 놓쳤다고 판단하는 이들은 그렇다고 정 씨에게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정 씨의 사무소는 지난해 겨울 문을 열었다. 1년 밖에 되지 않은 신생업체다. 명절과 크리스마스 때면 사무소 노동자들에게 늘 선물을 챙겼다. 술 때문에 정 씨에게 쫓겨나 불만을 갖고 있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야. 그래도 요즘 세상에 이런 사무소가 어디 있냐. 일용직에게 선물 챙겨주는 사무소 거의 없거든.”

일당도 제 때 제 때 지불한다. 가불을 해주면 해줬지, 돈을 떼먹거나, 밀려서 주는 경우가 없다. 오히려 정 씨가 가불을 해줬다가 떼인 경우가 있긴 해도 말이다.

어떤 용역사무소의 경우 일당을 일주일 단위로 주거나 며칠씩 밀려 한꺼번에 주기도 한다. 아예 일당을 못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정 씨의 경우 현장 오너에게 돈을 받지 못해 곤란을 겪은 일도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돈을 먼저 주었는데 정작 현장에서 2개월 가까이씩이나 수천만원의 돈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용역사무소는 이러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기에, 10%의 수수료를 소개비가 아닌 위험부담 개념으로 떼어낸다는 말도 있다.

 

 

용역의 적은 누구?

정 씨가 늘 강조하는 얘기지만 그에게 있어 에이스는 새벽마다 자신의 사무소를 찾는 사람들이다. 물론 일까지 잘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일용직 노동자에게 일 재주까지는 바라지 않는단다.

“현장에서 일을 잘 하고 못 하고를 따지긴 하죠. 하지만 제 경험상 현장 담당자들은 일용직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아요. 큰 사고 안치고, 중간만 가면 돼요.”

정 씨의 얘기는 일리가 있다. 용역사무소 소장이기 이전에 자신 역시 현장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용역사무소에서 새벽을 열고, 토목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에서는 측량 등 토목 일을 하며 다른 사무소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기도. 현장에 일손이 부족하면 자신이 직접 작업 일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나 오늘 장화 신고 콘크리트 반죽 안에서 고생하고 왔어요. 피곤하니까 엉뚱한 불만 털어놓지 마세요.”

그러니 자신의 사무소 노동자들이 현장과 관련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털어놓을 때는 역정을 내기도 한다.

“아니 이 사람들아. 나도 현장에 있는 사람이야. 다 생각해서 여기 보내고 저기 보내고 일당 책정하는데, 왜 자꾸 잘난 척을 해? 누군 일용직 안 해 봤을 거 같아? 오늘 2만원 더 받아줬잖아.”

일용직 노동자에겐 일당 1만원 더 받는 게 큰 행복이다. 반면 용역사무소 소장 입장에선 1만원 더 받아줘 봤자 고작 1000원(수수료 10%)을 더 버는 셈이다. 1000~2000원 더 벌려고 현장담당자들에게 섣불리 “우리 사람들 1~2만원 더 쳐주시오”라고 요구할 수 없다. 다음날 현장 담당자에게 잘릴 수도 있기에. 하지만 정 씨는 현장일이 지나치게 고되다 싶으면 사무소에 돌아온 노동자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현장으로 직접 전화한다.

“아니, 우리 사람들이 오늘 석면 철거하는 일 했다는데, 그거 위험물질이잖아요. 2만원 정도 씩은 더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자를 비롯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든든한 소장 정 씨의 ‘빽’으로 1~2만원 씩 더 챙긴 경우가 많다. 사무소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나 현장 담당자들에게는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정 씨지만 자신도 인간인지라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들을 골탕 먹이는 일도 있단다. 물론 이 대목은 정 씨가 아닌 자신이 당한 거 같다며 토로한 한 노동자의 일방적 주장이다.

“내가 그동안 말도 안 듣고, 현장에서 싸우고 이러니까, 나에 대한 감정이 쌓였나봐. 한 날은 일당 13만원이라며 가라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대. 어쨌거나 난 돈 많이 줘서 좋다고 갔었지. 근데 도착하자마자 장화와 방진복을 주더라고. 이게 뭔가 싶었지. 똥물에 들어가서 똥과 각종 쓰레기를 건져내라는 거야. 진짜 똥이 둥둥 떠다니더라고. 하수도 관련 공사장 같았어. 나는 광분해서 담당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들어가지 왜 내게 이런 거 시키냐고 따졌어.”

담당자들은 “우리가 들어가기 싫으니까 용역 부른 거 아니냐”라고 했단다. 이 노동자는 일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 씨에게도 전화해 “뭐 이런 곳을 보냈냐”라고 따졌더니 그의 대답은 냉랭했단다. “나도 그런 현장인지는 몰랐는데… 그래도 이왕 간 김에 일은 하고 오시지.”

비록 정 씨와 일용직 노동자들 간 유쾌하지 못한 사건들이 있을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정 씨는 대체적으로 일용직 노동자 편에 서서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도 노동자 편을 든다. “우리 사무소는 현장 마스터(기술자 혹은 에이스들)만 안고 갑니다”라는 어느 용역사무소 소장의 황당한 새벽 인사말에 기겁을 한 어느 노동자가 다시 돌아와 정 씨를 따르는 이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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