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지. 라. 퍼.
오. 지. 라. 퍼.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8.02.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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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류승연

오지라퍼.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이름이기도 한 ‘오지라퍼’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뜻한다.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고,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참견장이다.

오지라퍼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 나의 선택은 ‘NO’다.

사실 나는 오지라퍼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해서 오지라퍼가 된 것은 아니다. 나는 남의 일보다 내 자신의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 생각과 내 느낌과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심리란 참 묘한 데가 있어서 이렇게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주변에선 다가오는 이들이 늘어갔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a57@weeklyseoul.net

 

왠지 나라면….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주고 지혜를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단다. 뭔가 있어 보였나 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내가. 알고 나면 다를 것도 없는데.

아무튼 그러다보니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후배들의 멘토 노릇을 많이 했고, 직장에 다닐 때는 동료들의 상담사 역할을 자주 했다.

아줌마가 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고민상담 요청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다. 나만 생각하고 살면 되는 처녀 시절과는 달리 지금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각기 다른 속도로 커가는 두 아이도 챙겨야 하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인 남편도 챙겨야 한다. 여유를 갖고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줄 처지는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나이도 먹었다. 사회생활 기술은 더 늘어가고 이젠 세련된 방법으로 적당히 선을 그을 줄도 알게 되었다. 남의 삶에 관여하는 것보단 내 삶을 사는 데 더 집중하고 살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살아왔는데, 최근 나는 그랬던 자신의 틀을 벗어나 버렸다. 귀신에 홀렸는지 자만심에 빠져 있었는지 위풍당당한 오지라퍼가 되어버린 것이다.

SNS를 통해 알게 된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있다. 새로 연구소를 차리면서 부모들의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갖는다. 비록 SNS 상에서 알게 된 관계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몇 번 만나기도 하면서 나는 그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내 첫 번째 실수였다. 친밀함을 느끼는 건 SNS 상에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그만큼의 거리가 존재했는데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거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오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양 존중해야 할 거리, 선을 지켰어야 할 거리를 넘어버렸다.

어쨌든 조언을 구하는 자리라 하니 마음껏 조언을 한다. 조언이라 하니 부정적인 의견들이 주를 이룬다. 응원을 원하는 자리였으면 파이팅을 빌어줬을 텐데 조언을 구하는 자리라 하니 날카로운 비판론자가 되어 지적할 부분을 가차 없이 지적한다.

사실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좋았다. 어차피 조언을 구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 날 자리에서 오간 말들은 하나의 의견으로 듣고 끝나고 말 것들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전 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할 수 없었던 말, 사실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말,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말을 써서 장문의 카톡으로 보낸다.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실수였다.

마음은 ‘호의’다. 호의에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하는 마음에서 긴 글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아픈 것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어쩌면 그 내용은 그들이 몰라도 되는 얘기들이었다. 알면 대비는 할 수 있겠으나 분명 신경이 쓰일만한 내용들이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도 괜찮았다.

그런데 나는 굳이 ‘대비’를 하라며 몰랐어도 될 내용을 주절주절 적었고 그것을 카톡으로 보내버렸다. 보낼 때만 해도 별 생각을 안했는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사자들이 SNS에 쓴 글들을 보고 나서다.

나라고 지칭한 말은 없었지만 그들은 내 카톡 글에 상처를 받았다. 푹 가라앉은 분위기가 생생히 전해져 온다. 그들이 내게 받은 건 조언이 아닌 상처였다. 몰랐어도 될 내용을 강제로 알게 돼 생겨버린 상처.

아차~ 했지만 때는 늦었다. 그들은 나로 인해 모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 일들까지 알게 되어 버렸다. 원한 적조차 없는데 내가 강제로 알려버린 셈이었다. 그들은 이제 고민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기분도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땅을 치고 후회를 한다. 어쩌자고 오지랖을 발동시킨 거야! 그냥 내 인생이나 열심히 살 것을. 아마 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곧 분노가 되는 시점이 올 테고, 그것도 원치 않는 일을 알게 된 만큼 그에 얽힌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동시에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털끝만큼도 없지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분노가 느껴질 때면 분노를 쏟아낼 그릇이 필요하고, 아마 그것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내가 될 것이었다.

아~ 어쩐다. 진짜 오랜만에 발동시킨 한 번의 오지랖이 이렇게 파장을 일으키겠구나. 후회를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도 넘은 오지랖을 펼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지고 가는 게 낫다. 미워하소서. 마음 속 분이 풀릴 때까지.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시 오지랖은 펼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삶만 열심히 잘 살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잘 사는 것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된다. 그것이 최고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나이가 들수록 귀를 열고 입을 닫아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궁금하고 모르는 것도 많은 젊은 시절에야 믿을만한 멘토의 도움이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겐 ‘남의 조언’이라는 것이 사실상 필요치 않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 친구들에게 남편 욕을 열심히 한다. 내가 원하는 건 “어머 열 받았겠다”라며 내 감정에 공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눈치 없는 친구 하나가 “야! 차라리 이혼을 해!”라고 말을 한다. 그럼 나는 어찌 반응하겠는가!

그 때부턴 남편이 아닌 그런 말을 한 친구가 미워진다. 나는 이미 남편과 한 평생을 살기로 마음을 정하고 티격태격 하면서도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선을 넘은 충고가 마음의 준비도 없이 훅 다가와 버리면 그 때부턴 충고를 해 준 이가 미워진다. 내 뜻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간과했다. 내가 나이가 든 만큼 내가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들도 이미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충실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을 간과했다.

마치 대학교 시절 진로걱정을 하는 후배에게 조언을 건네듯이, 직장에 다니던 시절 헤매고 있는 후배에게 직언을 퍼붓듯이,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피곤하다. 한 번의 오지랖이 낳은 결과물은 상대방뿐 아니라 오지랖을 펼친 나 자신까지 이렇게 피곤하게 만든다. 신년부터 큰 깨달음 하나를 또 얻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이제부터 오지랖은 사양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지랖은 넣어두어야 한다. 펼치면 큰일 난다. 오지랖을 펼치면 쉽게 인간관계를 어그러트릴 수 있지만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오지랖을 펼치는 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많은 경우 귀를 닫게 되곤 한다. 이만큼 살아온 연륜에 의지하고, 자신의 경험에 확신을 갖는다. 남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 해도 조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수준의 조언만 건네야 한다. 그것이 적당히 편안한 인간관계를 누리고 살기 위한 비법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너무 삭막해지지 않겠냐고, 서로가 진심이 아닌 가식으로 대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반기를 드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른말을 하는 것도 그것이 통하는 관계에서나 먹히는 법이다. 그것을 간과하면 이렇게 피곤해진다.

오지랖? 넣어둬~ 넣어둬~. 그저 내 인생이나 충실하게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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