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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청춘, 익산에 가다-2편> 김혜영 김혜영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2.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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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학교를 둘러본 뒤, 원불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원불교의 중요 상징인 원(O의 모양)이 학교 곳곳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이 무슨 뜻인지, 원불교는 어떤 종교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원불교 성지를 방문했다.

원불교 중앙통부는 초기의 흔적과 여러 기관이 자리 잡고 있어, 원불교에 대해 알아가기 좋았다. 나무로 지은 고즈넉한 건물과 근대적인 정원을 구경할 수 있고, 곳곳에 담긴 종교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불교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O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해 낙원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쉽게 말하면 진리를 강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도덕도 중시하는 것이다. 성지 내에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렸다는 황온순이 지은 보육 및 탁아시설이 있고, 제자를 일깨운 내용이나 실질적 일화가 곳곳에 팻말로 적혀있다. 대중을 위하라는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강조되기도 하는데, 사회참여적인 종교임을 알 수 있었다.

 

 

원불교는 이제 막 100년이 넘은 종교라, 다른 종교에 비해 역사가 짧다. 그러나 실천적 정신만은 매우 훌륭하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한 교단이나 한 단체만으로 종교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 이 종교가 어떤 방향을 취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창시했을 때의 가치와, 처음 포교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실천적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들은 시주와 동냥을 폐지하고, 각자 일을 하면서 교화사업을 해나가는 ‘생활불교’를 실천했다. 돈을 버는 행위를 세속적이라 판단하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종교는 세속적일 수밖에 없으며, 세속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캠퍼스 내 기독교인들이 모인 기도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기도모임을 이끄는 진행자가 멘트를 하면, 그에 맞게 기도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진행자가 세상에 있는 다른 학우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고 있는 지금, 어떤 학우들은 술을 마시면서 방탕하게 생활함으로써 ‘세상’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술을 마시는 기독교인으로서 진행자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정말 세상과 동떨어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은 우리가 모여 예배하면 어디에든 함께 계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전체나 특정 단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신앙과 가치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는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가치를 발견해나가야 한다는 개인적인 신념과 신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의 ‘생활불교’ 가치를 발견하고,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돌풍처럼 등장해서 상을 휩쓴 독립영화가 있다.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인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청소년 소현이 세상에서 겪는 우여곡절을 다룬 내용이다. 소현은 믿었던 애인에게마저 버림을 받고, 청소년들이 모인 ‘팸’에서도 버려진다. 그런데 제인이라는 구원자를 만나게 된다. 제인은 다른 ‘팸’들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따뜻한 집과 밥을 제공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곧잘 들어준다. 영화는 세계관이 3부로 나뉘는데, 소현이 제인을 만나 정착하는 부분은 환상처럼 처리된다. 제인의 집은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의 집이고, 제인의 아이들은 소현이 만난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식이다. 영화는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혼란스럽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제인이 소현을 구원해주는 2부는 소현의 환상이다. 섬세한 감독은 함부로 구원을 설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소현과 제인이 교류하는 장면 중 현실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은 딱 한 장면이다. ‘뉴월드’라는 클럽에서 쫓겨난 소현에게 제인이 ‘unhappy’라고 적힌 도장을 찍어주고, 그 덕에 클럽에 들어온 소현은 제인의 말과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큰 위로를 받는다. 결국 제인은 소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집을 제공해준다거나 소현을 구원해준 적이 없다. 그저 따뜻한 말과 노래를 통해 소현을 위로해줬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현은 그러한 환상을 꿀 정도로 제인에게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관객 또한 영화를 보면서 제인에게 위로를 받는다. 제인은 가끔씩 존재하는 행복과 끝없는 불행을 이야기하며,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한다. 사람이 4명인데 케이크가 3조각만 남았을 때는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영화는 보기 싫은 지저분한 골목과 누추한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제인은 거식증을 앓는 트렌스젠더다. 불완전한 세상과 불행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관객에게 위로를 선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낙원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원불교의 메시지가 좋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내세가 있으니 현세를 이겨내자고 이야기한다. 불행한 현세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판타지물의 미디어나 스포츠가 유행하는 것처럼, 내세를 꿈꾸는 것도 좋은 메시지다. 반면, 원불교는 현세를 어떻게 이겨나갈지에 초점을 맞춘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 교리를 공부한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고아를 키우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현실적인 종교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스럽고, 행복은 가끔씩 존재한다. 약간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힘겨울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불행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데서 역설적으로 희망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무조건 행복하기만한 삶보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자유롭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구원자가 아닌 조력자이듯, 우리 인생에 절대적인 구원자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존재하는 행복과 종교적 절대자, 가족과 친구가 위로가 되고, 이를 통해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행복과 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익산 탐방 편을 마무리하며, ‘꿈의 제인’ 속 제인의 대사로 글을 맺고자 한다.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닿기를 바란다.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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