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도란도란 이야기 속 끼여드는 웃음소리 너머~
두런두런 도란도란 이야기 속 끼여드는 웃음소리 너머~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2.14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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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시계가 있는 풍경

두런두런 도란도란의 찰나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 보았다. 2013년 10월22일 오후 3시를 향해 가는 시계바늘 아래 앉은 할매들. 화순 동면 복림마을이다. 종일 햇발이 닿는 마루는 크지 않아도 유재들 어우러지기 좋은 회합의 공간. 두런두런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끼여드는 웃음소리 너머 대숲에서 들려오는 새울음 소리가 한데 만난다. 이러한 찰나가 있다.

“가실 끝났는디 뭐이 급해, 인자부터 놀아볼 참이여.”

이 마루의 시계는 분 초를 다투어가며 빨리빨리 가지 않는다.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후딱 싸게 잽싸게 속히 즉각 곧 곧장 바로 이내 퍼뜩 급히 붐비지 않는데도 붐비는 말들 언젠가부터 사랑할 시간은 너무 적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흩어지는 사람들처럼 너무 짧은 만남에 씨 맺지 못하고 꽃만 피워 시든다 고속 초고속 급행 빠름 재빠름 날쌤 날램 순식간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말들. 느릿느릿 걸을 시간은 이제 없다 고속도로 위를 내닫는 사람들처럼> (조현명, ‘빨리’ 중)

 

“시계랑 신발은 안 맞으문 소양없어”

누군가의 이력(履歷)이 될 신발들이 아직은 첫 발을 떼지 못한 채 거기 대기하고 있다. 곡성장터의 ‘현대신발백화점’.

“우리 아저씨가 신발은 생전 숭년(흉년)을 안 탈 것 같응께 하자고 하더라고. 누구나 신는 것이고 항시 필요한 것인께.”

곡성장 순창장 옥과장 등을 돌며 신발장사를 해온 세월이 어언 45년인 박삼례(75) 할매.

“이 장사도 인자는 숭년을 타. 옛날에는 집집이 자식들이 대여섯인께 장사가 잘 되얏어. 근디 촌에는 인구가 자꼬 줄어든께.”

촌에도 장터에도 사람 북적북적하던 호시절이 있었기에 육남매를 먹이고 갈쳤노라고 안도하는 할매.

“시방은 뭐이든 흔해서 귀한 것이 없는 시상이여. 옛날에는 신발도 귀했제. 맹절 때문 잘 나갔어. 소풍날 돌아오문 잘 되고, 어머니날 돌아오문 잘 되고, 추운 겨울 돌아오문 잘 되고.”

신발장사 눈에는 항시 신발만 보였다.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의 곤궁한 처지가 짐작되곤 했다.

“다 터지고 닳아진 신발을 보문 맘이 짠해. 긍께 그런 사람을 보문 신발 한나라도 기언치 앵겨주고 그랬제.”

모든 벽이 오로지 신발로만 채워진 이 가게에서 유일하게 벽면을 장식하는 것이 있다면 시계. 정중앙이란 위치가 시계의 막중한 소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쳐다봐. 핸드폰 없는 노인들도 많애. 누구 한 사람이라도 쳐다보문 좋제.”

신발과 더불어 반세기를 살아온 할매에게 신발이란 무엇일까.

“맞아야 신이제.” 지당한 말씀이다.

“아무리 뽄이 좋아도 안 맞으문 씰데없어. 시계랑 신발은 안 맞으문 암짝에도 소양없어.”

 

내 것이지만 당신들이 사용하시라

“지금 몇 시야?”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으면서도 늘 시간을 묻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시계는 ‘지금은 몇 시 몇 분입니다’라고 소리를 내어 말해주는 시계였다. 시각장애인인 친구는 자신이 시계를 보고 있다는 걸 주위에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원’ 대표 김형수씨는 그래서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시계를 만들었다. 해군장교로 복무중 폭파사고로 실명했으나 1년 만에 패럴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며 재기한 미국인 브래들리 스나이더의 이름을 땄다.

시침과 분침 대신 작은 구슬 두 개가 돌아가는 이 시계는 손끝으로 구슬을 만져 그 위치로 시간을 알 수 있다. 이 시계를 비시각장애인이 착용한다면 ‘시간을 만지면서’, 오직 만지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보는 것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이른바 ‘이타적 디자인’의 시계인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며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 염두에 두는 ‘이타적’ 시계를 오일 장터에서 만났다. 조봉금(68)·박문규(74) 부부가 꾸리는 곡성장 그릇전 ‘광명그릇’.

“아무리 핸드폰 시상이어도 호랑(호주머니)에서 핸드폰 내느니 여기 쳐다보는 것이 핀허고 빨라.”

시계 하나를 점방 외벽에 높이 걸어두고 그 앞으로는 둥근 테이블과 의자 몇 개를 두었다. 난로 위 주전자에는 물이 끓고 있고, 뜨거운 차가 무료제공되는 자리.

“할매들이 앙거서 쉬시다가 요 시계 쳐다보고 언능 인나서 차 타러 가셔. 버스가 떠불문 한 시간만에도 오고 그란께 시간을 놓치문 안되야.“

냄비 하나를 사면서 흥정도 없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내미는 단골 강덕님(83·곡성읍) 할매의 보퉁이에 행주 몇 장을 찡개 넣어주는 조봉금 할매.

“우리는 깎을 값 안 불러. 받을 값만 불러.”

“요 점방 쥔네들이 참 호인이여. 넘다 호인이어서 부자는 안되겄어.”

부자 못되겄다는 소리에 하하 웃는 쥔장 할매.

“내 손으로 내 복을 쌓고 살문 되제. 안 그요?”

 

 

군산 대야장 이종정(72) 할아버지의 그릇 가게 앞에도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장에 오는 분들이 다 주렁주렁 짐이 많애요. 손이 모지래요. 손에 시계를 차고 있어도 목에 핸드폰을 걸고 있어도 시간 보는 것이 어려워요.”

버스 시간을 맞춰야 하는 할매 할배들한테 요긴한 시계이다.

가게 안 난로에서 굽고 있는 군고구마는 손님용.

“오일장이란 것이 없이 살아도 더불어 살자고 모이는 장이요.”

더불어 사는 오일장임을 증거하는 공용시계. 쳐다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시침이 ‘12’를 가리키고 있으니 때는 열두 시. 아까 보아둔 장터짜장집으로 가야만 하는 시각인 것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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