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진정으로 하려는 것인지 의구심 들어”
“재벌개혁, 진정으로 하려는 것인지 의구심 들어”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8.02.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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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1회

민주노총이 지난 1월 31일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다. 지난 2009년 11월 전임자 및 복수노조 문제 논의를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 참석 이후 8년 2개월여 만이었다. 민주노총은 김명환 위원장이 지난 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간담회를 가진 뒤 전향적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의 새 선장이 된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문 대통령에게 민주노총 역시 함께 할 뜻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 정권에서 꼬일 대로 꼬여버린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이 그렇고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구속 수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법외노조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오랜만에 재개된 정부와 민주노총의 대화, 이번엔 과연 실타래가 풀릴 수 있을까.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새 정부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노동계 ‘빅이슈’였던 최저임금 문제와 법외노조 문제 해결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1월 31일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얘기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컸던 과오가 박근혜 자체였다면, 촛불혁명기를 넘어선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거악(巨惡)은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체제에서 모든 특혜를 거머쥔 재벌을 꼽을 수 있다”며 “정부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 청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벌개혁은 바로 노동과 직결된 시대적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야시절 워낙 올곧게 해온 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재벌개혁에 100% 동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인지, 힘을 비축해서 2보 전진하겠다는 것인지 가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구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서 김명환 위원장을 만났다. 2013년 전국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수서 KTX 민영화 반대 파업을 이끌다 해고당하기도 했던 그는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려 있기도 하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노동계 현안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박근혜 정권과 노동계의 관계였다.

▲ 2013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설 무렵 나는 철도노조 위원장에 취임했다. 얼마 후 정부의 철도민영화 합의안을 받아 보았는데 이것이 3개월 만에 휴지조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1년은 가겠지 생각했는데…. 노동정책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행태는 예상한 대로 심각했다. 예감은 소름끼치게 들어맞았다. ‘노동정책’을 ‘고용정책’으로 ‘노동’을 ‘고용’으로 바꿔 쓰는가 하면, 6개월 후에 사장을 내쫓고 철도민영화 사업을 6개 사업으로 분할 추진했다. 수서발 KTX 민영화도 밀어붙였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교섭이 없었고 장관 얼굴도 보지 못했다. 보통 철도노조가 나서면 장관이 나서기도 하고 청와대가 나서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 박근혜 정권은 당시 철도청 정창영 사장을 6개월 만에 강제 퇴진시켰다. 정 사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에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인품도 좋고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 후, 국정원 간부가 철도청 국장을 불러서 후임 사장을 내정케 했다는 한 방송사 보도가 나가면서 문제가 터졌다. 저도 민영화에 완전히 반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권의 철도정책 드라이브가 너무 빨랐고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철도청 국장의 사장임명 개입 사실이 드러나고, 마음대로 되지 않자 철도청 차장 출신인 최연혜 씨를 사장으로 앉혔다. 이분은 한때 철저한 철도민영화 반대론자였다. 그러면서 주식회사로 가려던 수서 KTX를 결국 공기업으로 지정해버렸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은 동전의 양면처럼 직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노동정책이 산업정책에 깊게 투영되지 않으면 굴절되거나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산업이다. 이 정책이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했던 사실을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 지난 1월, 노무현 정부 이후 오랜만에 청와대를 방문했다.

▲ 노동계가 먼저 청와대에 면담을 제의했는데 대통령이 흔쾌히 수락했다. 오전에 한국노총 산별노조가 오찬을 가졌고, 민주노총은 오후 3시~4시 10분까지 70분 간 차를 마시며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정부 측에서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하성 정책실장, 하승찬 시민사회수석, 비서관 등 20여명이 배석한 가운데 우리가 준비한 요구사항들을 모두 말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문제와 노동기본권 보장, 근로기준법 개악 문제, 최저임금 상한제, 적폐청산, 재벌개혁 등을 건의했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했지만 왠지 그게 안 되는 분위기였다. 우선 회담장 테이블이 일반용이 아니었다. 해외정상들을 접견하는 VIP급 테이블에서 회담을 하다 보니 어색했고 목소리를 제대로 못 냈다는 아쉬움이 크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국빈급으로 대우한다며 배려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대통령은 잘 들어주시는 분이고 노동법과 관련해서도 워낙 전문가시다. 옛날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노동 전문 변호사로서, 노동 전문 용어들을 우리만큼 잘 아는 분이다. 대통령은 우리의 요구사안들을 경청했지만 부문별로 잘라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거나 ‘네, 해보겠습니다’, ‘네, 해결하겠습니다’고 했다. 노동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 노사정위 복원을 강조했고, 복원되면 참석해 달라고 적극 요청했다.

 

- 문 정부의 노동존중 공약 실천 의지는 어떻다고 보는가.

▲ 어떤 시의성이라기보다 이 문제를 정부가 주도하려는 노력은 엿보인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것이 의회든 입법 권력이든 사법 권력이든 독립성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노력하는 자세를 폄훼하고 싶지 않다.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노동문제 개선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컸던 과오가 박근혜 자체였다면, 촛불혁명기를 넘어선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거악(巨惡)은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체제에서 모든 특혜를 거머쥔 재벌을 꼽을 수 있다. 정부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 청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재벌개혁은 바로 노동과 직결된 시대적 사안이다. 노동존중 공약 실행이 지체되고 있는데 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진정으로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없다는 얘긴가.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야시절 워낙 올곧게 해온 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재벌개혁에 100% 동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인지 힘을 비축해서 2보 전진하겠다는 것인지 가닥이 보이지 않는다. 사법부도 재벌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지난번 진경준 검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이 죄가 되느냐는 거다. 재벌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노동자에게 가혹하다. 빵 한 개 훔쳤다고 실형을 때리는 현실을 우리도 겪고 있다. 수감돼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의 죄명은 도로교통법과 집시법 위반이다. 그때 나는 조합원으로서 같이 시위대에 있었고, 한 위원장과 똑같이 도로교통법과 집시법 위반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벌금 50만 원을 때렸고, 한 위원장에겐 실형 3년을 때렸다. 형평성에 너무 어긋난다. 우리나라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2회로 이어집니다.>

 

김명환 위원장은…

1965년 경기도 평택 출신
1991년 철도청 서울동차사무소 용산기관차 검수원
1993년 용산기관차 교선부장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 교육부장
1997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사무차장
2002년 민주노총 공공연맹 조직실장
2004년 청량리차량사무소 철도노조 교육국장
2006년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2013년 제25대 철도노조 위원장
2017년 중앙노동자위원회 노동자위원
2017년 12월 제9대 민주노총위원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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