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8.03.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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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진수의 '요즘 시 읽기' - 프롤로그 : 죽지 않은 시

 

죽지 않은 시가 나을까, 죽지 않는 시가 나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죽지 않‘은’ 시라고 적었다. 적고 나니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뭔가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근성을 갖는, 쉽게 말하자면 불멸하는 힘으로서의 시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꼭 시라는 것이 주체적으로 소멸해가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오롯이 살아남는 자를 축복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길 기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헛된 판타지 같은 것. 그런 것을 지워버리는 일은 분명 섭섭한 일일 수 있지만, 분명 마음 한 구석에서는 시원한 기분이 든다. 시는 우연히 죽지 않은 것이지, 스스로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지 않은 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죽지 않은 시를 읽어 나가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시가 죽지 않았는지를 지켜보고, 죽어버린 시와 죽지 않은 시를 번갈아 바라보고자 한다. 결국엔 시의 끄트머리에 죽음이 왜 맞닿아 있는지 아주 우연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 백석, 김수영, 그리고 이상을 마지막으로 죽은 시인들을 돌아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은 꽤나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사실 돌아보고자 하면 일일이 살펴봐야 할 시인들이 한둘이 아닐 뿐만 아니라, 벌써 죽고 오로지 시만을 남긴 사람들의 시를 읽는다는 것에는 늘 무게감이 따랐다. 그것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내 손 위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꼭 내 주변에 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환각을 준다. 중요한 것은 별이 이미 떨어졌다는 것이다. 떨어진 별은 다시 오를 수 없다. 나는 차갑게 식은 시들을 하나씩 읽으며 시인을 봤다. 별똥별의 꼬리를 봤다. 시인이라는 잔상은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언제나 죽음에서 헤엄치고 있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모든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연못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모든 시들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식어버린 시들은 형체도 잡히지 않고 시인의 잔상만을 남긴다는 것. 시인이 가지는 프레임과 이미지가 모든 시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인들을 교과서에 남기고, 떨어진 별이라고 조각이라도 주워 고이 보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뒀다. 그리고 새로운 글은 살아있는 시인과 살아있는 시를 겨냥하고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어버린 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생명력? 활력? 새빨간 혈관과 입술? 맑은 눈망울과 자유로이 움직이는 손과 발? 육체가 살아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시의 살아있음은 무엇인가? 어떤 시는 죽고 어떤 시는 살아있을까? 나는 전혀 모르는 의미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곤 했다. 그 언어의 무게는 상당하다. 따라서 나는 우선 살아있는 시인을 포기했다. 시인이 살아있다면 그 시인이 앞으로 살아갈 생이나 여태껏 살아왔던 생, 지금 살고 있는 생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몫은 살아있는 시인에게 맡겨둘 일이다. 나는 살아있는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수식을 덧붙여 그를 설명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경솔한 언어의 무게에 짓눌리느니 차라리 모르는 것은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직 살아있는 시만이 남는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가 살아있음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생명체도 아닌 글자, 그 글자들이 모여 이룬 시가 과연 생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의 가장 크나큰 숙제가 된다. 앞으로의 시들을 읽으며 우리가 느끼고 판단해야 할 부분은 그것의 역동이다. 이를테면 시는 스스로 일렁이는가. 또는 시로부터 우리는 어떤 움직임을 받는가. 만약 시가 살아있다면 우리의 예민한 감각들은 그 모든 생의 조짐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벼려야 한다. 시의 뭉툭한 연과 행을 찬찬히 훑어 그것의 역동을 검사할 것이다. 감각의 날이 설 때 우리는 드디어 시를 읽는다, 라고 한다. 온갖 각주와 해설이 달려있지 않고도 시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를 읽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고르는 작업이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의 글에서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될 것이다. 시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을 노래하고, 죽었음에도 살아있기를 희망하고 바란다. 시가 가지는 모순은 그러한 경계를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한다. 우리는 그 모순을 따라 살아있음과 죽음, 두 영역을 왔다갔다 할 것이다. 더 많은 시들을 향유하고 그 가운데 살아있는 시를 골라내, 미약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생동감을 공유할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시를 마주하는 자세다. 살아있는 우리는 누구든 살아있는 시를 마주할 자격이 있다. 생은 생동을 마주할 자격이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생은 두근거리는 시들을 비추어보는 역할도 하게 된다. 우리의 생이 누군가의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을 잊고 잠시 우리의, 우리가 소유한 시라고 생각해보자. 시인이 비로소 시의 주인이 되길 포기하는 순간, 시는 살아난다. 살아나서 우리에게 걸어온다.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는 생각보다 얕다. 우리는 건너가 죽음의 손을 잡을 수 있다. 시의 모습이란 그 맞잡은 손과 같은 것이다. 모순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죽음과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나의 감각 안에 담아낼 수 있다.

▲ 시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을 노래하고, 죽었음에도 살아있기를 희망하고 바란다.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다. 시의 세계는 늘 평탄치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감각의 우연에 우리는 우리를 내몰아야 한다. ‘살아있는 시’가 아닌 ‘죽지 않은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렇다. 우리의 감각은 늘 일정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 감각의 우연, 혹은 커다란 파도가 모래밭을 휩쓸며 써내려간 시가 늘 일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은 시이다. 시는 불안정하고 매번 흔들려야 한다. 그렇기에 시의 생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죽지 않은 시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우연성에 공감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그처럼 흔들리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죽지 않은 시는 울타리를 넘어서 죽지 않은 세계, 죽지 않은 영혼, 심지어는 불멸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반드시 불멸을 이루리라는 집착과 근성이 아닌, 우연의 눈길로 타오르는 불멸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불멸을 의심한다. 흔들리는 생 위에 불멸이 군림할 수 있을까. 이에 시들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살펴보자. 천천히 음미하면서 시를 맞이하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자.

결국 지난 연재에서 죽어버린 시인들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껍데기 아래로 덮여있던 생을 끄집어낼 때가 되었다. 시란 단순히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누군가의 세계를 엿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세계를 다시 짓는 것이 시 읽기의 본질일 수 있다. 그런 형이상학적이고 다가가기엔 꽤나 까다로운 본질을 슬쩍 만져보려면 시를 생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생이 시가 되고, 그 시가 다시 여러 생이 되는. 그게 죽지 않은 시를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굳이 그런 재미를 느끼지 않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오히려 거부하는 것이 더 정신 건강에는 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생의 신비에 감탄할 수 있다면, 시의 탄생이 경이롭게 느껴질 수 있다면, 시키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시를 읽으려 들 것이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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